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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과 트랜스젠더의 관계? 부산시 공무원의 '희한한' 보고서

[단독] 외유성 연수 뒤 여기저기 짜깁기한 보고서 내놓아

등록|2015.08.26 20:32 수정|2015.08.26 21:48

▲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자료사진) ⓒ 연합뉴스


"교황의 세력이 얼마나 컸었는지 실감이 간다. 호사스럽다 못해 사치의 극을 달리는 성당의 물품들이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지난 6월 유럽으로 7박 9일간 해외체험연수를 다녀온 부산시 공무원들은 바티칸을 방문한 뒤 이런 소감을 보고서에 남겼다. 2014년 11월 비슷한 일정으로 바티칸을 방문한 연수팀의 보고서에도 같은 내용이 발견된다. 2013년 이탈리아를 다녀온 연수팀의 보고서 내용 역시 같다. 모두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보고서만 보자면 부산시 공무원들은 3년째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기분을 느끼며 혀를 내둘렀던 셈이다. 단지 우연이었을까. <오마이뉴스>는 외유가 의심되는 최근 1년 사이 부산시 공무원들의 해외체험연수 결과보고서를 확인했다.

취재 결과 보고서 상당수가 인터넷 블로그나 여행사 사이트, 국내 언론의 기사를 짜깁기한 수준이었다. 10년도 넘은 보고서의 오타까지 그대로 베낀 사례가 있는가 하면 애초 밝힌 목적과는 달리 관광지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채워진 보고서도 있다. 이는 수억 원의 혈세 낭비는 물론 때에 따라 허위 공문서 작성 등 법적 시비까지 불러올 수 있다.

오타까지 긁어온 보고서... 읽어보기는 했을까?

올해 6월 서유럽으로 '유럽의 영유아 복지정책 제도 및 보육현장 체험'을 하겠다며 떠난 공무원들의 연수결과 보고서는 2004년 작성된 보건복지부 인구가정심의관실의 보고서 중 프랑스의 보육정책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심지어 오타까지 그대로였다. 보건복지부 보고서에는 '수면실'을 '수명실', '마지막'을 '마지만'으로 잘못 표기했는데, 부산시의 보고서는 오타까지도 같았다. 작성 후 보고서를 읽어봤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 해외 연수를 다녀온 부산시 공무원들이 작성한 보고서. ⓒ 정민규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과거 자료를 퍼오는 데 급급하다 보니 통계 역시 퍼올 당시의 수치에 멈춰있다. 지난 6월 보고서 중 영국의 랜드쉐어를 소개한 내용은 2010년에 작성된 국내 사이트의 자료를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고서에는 해당 웹사이트의 가입자가 2010년 9월에 맞춰 5만 4800명이라 소개되어 있다. 확인 결과 해당 사이트 가입자는 2015년 8월 기준으로 7만 5천 명이 넘었다.

2015년 6월 '서유럽 주요국의 물 관리 현황 및 상수도 시설을 탐방하여 부산 상수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겠다며 떠났던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소속 공무원들의 보고서 중 '방문지 수집 자료'는 실상 '인터넷 수집 자료' 수준이다. 프랑스 물 산업을 소개하는 부분은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리포트 사이트에 나와 있는 내용과 언론 기사를 퍼온 내용으로 채워졌다.

태국 수돗물 알아보러 간다더니 '트랜스젠더 쇼' 관람

지난 6월 태국으로 연수를 떠난 공무원들이 체험하겠다고 밝힌 것은 '태국의 (수돗물) 음용 실태 파악'. 이를 통해 부산 수돗물의 생산기술 우수성을 입증하겠다는 것이 주요 연수 목적이었지만 일정은 한 여행사가 짜준 관광 일정을 그대로 따랐다. 이들은 3박 5일간 휴양지에서 트랜스젠더 쇼 관람, 파인애플 농장 관광, 사원 구경 등을 하고 돌아왔다.

이 연수 경비는 혈세 320만 원으로 충당했다. 공무원들은 이 돈을 들여 간 태국에서 '수돗물은 음용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보고서에 기록했다. 참고로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의 방콕 편 중 식수 부분을 설명한 대목의 머리말은 'Don't drink tap water'(수돗물을 먹지 마시오) 이다.

부산시가 밝힌 자료를 보면 공무원들은 외유를 떠나는 데 건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5천 5백만 원까지 쓴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배낭여행 형식의 연수로만 한 해 평균 30팀(120명)이 떠나고 여기에는 2억 원 가량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 각종 연수를 포함하면 그 액수는 더욱 늘어난다.

물론 낭비되기 쉬운 예산이 쓰이는 만큼 심사 기준은 있다. 국외여행 심사 및 허가기준은 "국외여행 이외의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거나 중요도가 낮은 여행을 억제하고 국익에 직접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여행을 우선 허가"하도록 되어있다. 관련 법에 따라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아래 심사위)도 꾸려야 한다.

공무원으로만 꾸려진 심사위..."조례 개정해야"

부산시의 경우 이 심사위가 오롯이 공무원들 손에 맡겨져 있다. 부산시는 '공무국외여행 규정'을 통해 심사위를 꾸린다. 부산시 행정자치국장이 위원장을 맡고 감사담당관, 예산담당관, 경제정책과장, 도시계획과장, 총무과장, 국제협력과장, 사회복지과장 등 8명이 심사를 담당한다. 규정에 따라 분기마다 정기회도 개최하게 되어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부산시는 보고서가 허술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심사위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부산시 인사담당관실 관계자는 "(심사위가) 공무원들로만 채워져 있는 게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수시로 연수와 출장을 가기 때문에 심사위를 매번 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대신 부산시 측은 "배낭여행 (해외 연수)을 알차게 하라는 공문상의 지시만 했지 결과는 못 챙겨봤다"면서 "여행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꼼꼼히 살펴보겠다"고만 밝혔다.

▲ 부산광역시청 ⓒ 정민규


반면 서울시의 사정은 다르다. 서울은 올해 5월부터 7명의 심사위원 중 3명을 외부 위원으로 꾸리게끔 '서울특별시 공무국외여행 조례'를 바꿔 시행하고 있다. 별도로 뽑는 해외 교육훈련은 50팀 중 절반을 공개경쟁으로 선발한다. 선발을 위한 발표회에도 외부 위원이 참여한다.

일부 지자체가 이처럼 조례까지 개정해 투명성을 높이는 데에는 고질적인 외유 시비를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가 있다. 일례로 지난 5월 인천에서는 해외 연수를 다녀온 구의원들이 보고서를 허투루 작성했다는 논란이 일자 시민단체가 의원 전원을 검찰에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검찰은 현재 허위공문서 작성 등을 놓고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이 때문에 부산시도 적극적인 심사와 조례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부산시의회 전진영 의원은 "공무원들이 시민의 세금으로 수혜를 누리면서도 그 의무는 다하지 않고있다"면서 "향후 행정사무감사에서 이 문제를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또 전 의원은 "미비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례 개정을 통해서라도 시정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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