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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 블랙넛에 면죄부를 줄 순 없지만...

쇼미더머니의 승리, 앞으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

등록|2015.08.27 09:55 수정|2015.08.27 09:55
(프로그램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쇼미더머니의 승리다. 내 관전평은 그랬다. 그 중심에는 물론 '블랙넛'이 있었다. 내 '촉'으로는 만약 1번의 경선이 더 있었다면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는 룰을 깰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착한편' 논객들은 초반부터 블랙넛의 인성을 문제 삼았다. '일베'스러운 블랙넛을 쇼미더머니가 잘 활용하고 있다며, 그가 과거에 했던 저속한 가사가 담긴 랩과 공연에서 보여주는 저질 퍼포먼스에 분개했다.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쇼미더머니의 승리다. 처음부터 기획되진 않았겠지만, 쇼미더머니는 블랙넛을 악동 캐릭터로 몰고 가는 것을 방기, 혹은 유도하다가 그의 고단했던 과거를 통해 '인간 김대웅'을 이해하도록 내러티브를 구성했고, 그것은 진정 판을 뒤집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YG등딱지' 뗀다던 송민호는 태양의 후광 아래 이겼지만 작아 보였다. 반면 블랙넛은 인간 드라마를 완성하고, 그간의 비호감 캐릭터를 털고 하차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쇼미더머니

블랙넛의 후회와 찌질한 랩에는 진정성이 있다. 그간 썼던 저속한 가사들을 향한 비난에 대해 아이돌 스타처럼 즉각 사과하는 치밀함과 신속함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징징대지 않고 찌질했던 자신을,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그런 생각을 음악으로 전달한다.

난 여전히 그가 탐탁지 않다. 가사를 절어서 탈락한 피타입, MC 메타, 하다못해 힙합의 가오를 말하다 아쉽게 하차한 릴보이에 비해 그의 철학?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랩은 참 훌륭하다. 플로우를 타는 감각, 딜리버리, 무엇보다 에너지 넘치는 다른 래퍼들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능력, 집중력이 남다르다. 욕하면서도 음악에 고개를 흔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나처럼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많은 비판자들이 앞으로도 생각해볼 지점들이 있다. 블랙넛을 비판하던 담론, 이른바 여성혐오와 막장을 즐기는 시스템을 가족주의를 통해 '쥐어짜는 감동'으로 얼버무리려 하는 것이 쇼미더머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찌들었고 힙합 정신을 무색케 하는 쇼미더머니가 오히려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호소력 있는 내러티브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앞에서 논객들은 무력해졌다. 왜냐면 그 시스템이 김대웅이라는 개인을 논객들보다 더 깊이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 비평이 유효하던 시기가 있었다. 텍스트만 가지고 떠들던, 그래야 했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담론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텍스트 너머의 발화자, 담론의 주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을 '보게' 만들었다. 네티즌과 사이버수사대, SNS, CCTV 등을 통해 손쉽게 이슈가 된 발화자, 콘텐츠 생산자의 신상, 과거와 현재, 일상 그 모두를 알 수 있다.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혹자는 블랙넛을 두고 '쓰레기 랩이나 내뱉는, 인성에 문제 있는 놈'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우린 한 개인을 우리의 담론, 진영, 바른 삶과 행동이라고 규정짓는 사고 등을 통해 어떤 한 인간의 결과물을 판단하고 비평하고 결론짓는다. SNS가 생겨난 이후로는 섬광과 같은 속도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저주한다.

정의와 사회참여를 외치는 진보교수의 자녀는 해외유학을 나가 있다. 사교육을 비판하는 집단은 모두 사교육으로 인서울 대학을 나온 인재들이다. 자비와 사랑을 노래하는 개신교 목사들은 비싼 차를 몰고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그 부를 세습하고 성추행을 일삼는데도 건재하다. 반면 블랙넛은 지옥 같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끄적인 쓰레기 같은 가사를 20대에 읊었다는 이유로 그는 회복 불가 수준의 사이코 취급을 받는다.

물론 블랙넛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릎팍도사>나 <힐링캠프>에 나와서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려던 연예인들은 이미 정점에 있었던 '가진 자'였다. 인생이 고단했던 20대의 젊은 래퍼를 까려면 최소한의 형평성은 맞춰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최소한 나는 블랙넛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판단은 조금 더 유보하고 싶다. 당장 인성을 거론하기 전에, 몇 년은 더 기다려주고 싶다. 블랙넛 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개인이 뱉어낸 말과 행동에 대해 너무 명확한 구획과 판단이 가혹하리만큼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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