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면 그때부터 느그가 담가 먹어라"
엄마가 보낸 상자, 그 속엔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상혁아, 내일 버스로 김치랑 한 박스 보낼라고 헌디 터미널 가서 찾을 수 있겄냐?"
아버지의 전화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나절이 다 지나도록 부쳤다는 말씀이 없었다. 다시 확인 전화를 드렸다.
"아, 광주 느그 누나가 여그 온다고 해서 강남터미널로 안 부치고 느그집 근처 동서울로 부치라고 했응게 쫌 기다리믄 연락 올 것이다."
내 고향 함평에는 우리 집 근처인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없다. 마침 광주 사는 큰 누나가 고향 집에 들렀는데 내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찾아오려면 번거로울 것 같아 누나 편에서 동서울행 버스에 실어 보내신다는 말씀이다.
부쳐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시니 '이런 게 부모님 마음인가?' 싶어 갑자기 코끝이 찡해져 왔다.
OO고속화물 광주 14:00 출발 동서울 18:20 도착
No : 1234XXX 수령 시 신분증 지참
'띵동' 소리와 함께 도착한 문자 메시지 하나. 시간에 맞춰 동서울 버스 터미널 xx고속 탁송화물 수취하는 곳으로 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무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박스는 초록 노끈으로 묶여 있었고 옆면에는 함평 단호박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큼지막하게 쓰인 내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 상자는 "끙"하고 힘을 써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다. 트렁크에 실어 고이 모셔와 집에서 상자를 열었다. 엄마는 김치를 보내기도 한참 전에 전화로 주의사항을 전해주셨다.
"아야 상혁아, 느그 집사람한테 열무김치는 바로 냉장고에 넣지 말고, 바깥에다가 내놨다가 뽀글뽀글 올라오믄 그때 냉장고에 넣으라고 해라이."
"네에, 잘 먹을게요."
가위로 노끈을 끊어내고 상자를 열어젖혔다.
엄마의 정성으로 가득 찬 상자
맨 위에는 신문지로 여러 겹 싸여있는 차가운 것이 있었다. 채 녹지 않은 고등어 두 손. 온갖 좋은 물건이 널려 있을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곳에 자리 잡고 산 지 20년이나 되는 당신 아들이 고등어 한 손도 못 사 먹을까 봐 보내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저 좋은 것 보이면 먹이고 싶어하는 마음. 자식을 낳아보니 나도 이제 알고 있는 그 마음. 바로 그 마음으로 보내셨을 것이다.
묵직한 고등어는 배를 반으로 다시 갈라 비닐백에 나누어 싸서, 냉동실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았다. 냉장고에 쌓인 것은 고등어가 아니라 엄마의 자식 사랑하는 그 마음이었다. 고등어를 꺼내고 남은 상자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었다. 검은 비닐 입구를 살짝 젖혔다.
줄기 끝에 밭 흙이 촉촉이 묻어있는 부추는 오늘 이른 새벽에 거둬들인 게 분명했다. 가뜩이나 땀이 많은 엄마. 목에 수건 하나 두르고, 해도 뜨기 훨씬 전에 집을 나서서 한참이나 허리 숙여 갈무리해 오셨을 터이다.
1남 3녀를 두셨지만 내가 중학교 1학년, 갓 어린 티를 벗을 무렵에 다 키워놓은 큰딸을 교통사고로 황망히 잃으셨던 엄마. 다 큰 자식 하나를 가슴에 묻은 엄마는 누나를 잃은 뒤부터 유난히 더 우리들에게 정성을 다하셨던 것 같다.
재래식 부엌이 일하기 불편하다고 누나들 시집갈 때까지 부엌에서 설거지며 속옷빨래 한 번 시킨 적 없는 엄마셨다.
봄 양파작업철, 늦은 오후 돌아온 엄마의 작업 가방 속 땀에 전 수건 옆에는 항상 보름달 빵이 있었다. 새참에 먹으라고 나눠준 빵을 자식들 갖다 주려고 남겨 왔다는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우리에게 김치 담가볼 기회조차 주지 않으신다.
"엄마, 힘드니까 김치 그만 담그세요."
"나 죽으면 그때부터 느그가 담가 먹어라."
또 다른 신문지에 쌓인 것을 열어보니 노지 깻잎이 한 무더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에 노지 깻잎치고는 뻣뻣하지도 않아 깻잎 김치 담그기에 제격일 것 같았다. 한 장씩 깨끗이 씻어 차곡차곡 쌓고 급하게 양념장을 만들어 깻잎 김치를 담갔다. 넉넉히 만든다고 추가로 양념장을 한 번 더 만들었는데도 깻잎은 그리 많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내리사랑, 난 자신이 없다
세 살배기 아들 한울이 머리통만한 크기의 호박과 그 반쯤 되는 호박은, 함께 온 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된장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가지는 좀 많으니 이웃과 나눠야 할 것 같다. 전화통화 중에 지나가는 말로 참기름 떨어져 간다고 했더니, 가볍게 흘려듣지 않으시고 보내주신 '진짜 참기름' 두 병.
마지막, 하얀 봉지에 입구가 새지 않게 노끈으로 꽉 묶인 것은 엄마가 주의사항까지 전해주신 바로 열무김치.
무더위에 입맛 없을 때는 찬물에 밥 말아서 열무김치 살짝 얹어 먹으면 그만이다. 봉지를 열자 '나 전라도에서 왔어라우' 하듯이 진한 젓갈 냄새가 풍겼다. 고춧가루며 마늘, 깨, 매실청, 젓갈 등등 자식에게 무작정 퍼주듯, 양념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담근 전라도 김치를 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버스 타고 오는 사이에 살짝 익었는지 코끝을 간질이는 맛있는 김치 냄새가 솔솔. 어느새 손이 열무김치를 향해 움직였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급히 한입 가득히 넣어 씹어본다.
'아, 엄마... 아내가 엄마의 이 맛을 지켜갈 수 있을까요?'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으라고 아내를 닦달해야 하나보다.
드디어 상자를 다 비워내고 정리를 마쳤다. 상자는 비워졌지만, 냉장고와 내 마음은 꽉 채워졌다.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부모님이 내게 주신 만큼 내 자식들에게도 사랑을 물려줄 수 있을까? 난 자신이 없다.
아버지의 전화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나절이 다 지나도록 부쳤다는 말씀이 없었다. 다시 확인 전화를 드렸다.
"아, 광주 느그 누나가 여그 온다고 해서 강남터미널로 안 부치고 느그집 근처 동서울로 부치라고 했응게 쫌 기다리믄 연락 올 것이다."
내 고향 함평에는 우리 집 근처인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없다. 마침 광주 사는 큰 누나가 고향 집에 들렀는데 내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찾아오려면 번거로울 것 같아 누나 편에서 동서울행 버스에 실어 보내신다는 말씀이다.
부쳐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시니 '이런 게 부모님 마음인가?' 싶어 갑자기 코끝이 찡해져 왔다.
OO고속화물 광주 14:00 출발 동서울 18:20 도착
No : 1234XXX 수령 시 신분증 지참
'띵동' 소리와 함께 도착한 문자 메시지 하나. 시간에 맞춰 동서울 버스 터미널 xx고속 탁송화물 수취하는 곳으로 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무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박스는 초록 노끈으로 묶여 있었고 옆면에는 함평 단호박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큼지막하게 쓰인 내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 상자는 "끙"하고 힘을 써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다. 트렁크에 실어 고이 모셔와 집에서 상자를 열었다. 엄마는 김치를 보내기도 한참 전에 전화로 주의사항을 전해주셨다.
"아야 상혁아, 느그 집사람한테 열무김치는 바로 냉장고에 넣지 말고, 바깥에다가 내놨다가 뽀글뽀글 올라오믄 그때 냉장고에 넣으라고 해라이."
"네에, 잘 먹을게요."
가위로 노끈을 끊어내고 상자를 열어젖혔다.
엄마의 정성으로 가득 찬 상자
▲ 빈틈없이 채워진 상자부추, 깻잎, 기름병, 김치가 보입니다. ⓒ 정상혁
맨 위에는 신문지로 여러 겹 싸여있는 차가운 것이 있었다. 채 녹지 않은 고등어 두 손. 온갖 좋은 물건이 널려 있을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곳에 자리 잡고 산 지 20년이나 되는 당신 아들이 고등어 한 손도 못 사 먹을까 봐 보내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저 좋은 것 보이면 먹이고 싶어하는 마음. 자식을 낳아보니 나도 이제 알고 있는 그 마음. 바로 그 마음으로 보내셨을 것이다.
묵직한 고등어는 배를 반으로 다시 갈라 비닐백에 나누어 싸서, 냉동실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았다. 냉장고에 쌓인 것은 고등어가 아니라 엄마의 자식 사랑하는 그 마음이었다. 고등어를 꺼내고 남은 상자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었다. 검은 비닐 입구를 살짝 젖혔다.
▲ 부추물기가 촉촉하고 젖은 흙을 보니 새벽에 뜯어오신 듯합니다. ⓒ 정상혁
줄기 끝에 밭 흙이 촉촉이 묻어있는 부추는 오늘 이른 새벽에 거둬들인 게 분명했다. 가뜩이나 땀이 많은 엄마. 목에 수건 하나 두르고, 해도 뜨기 훨씬 전에 집을 나서서 한참이나 허리 숙여 갈무리해 오셨을 터이다.
1남 3녀를 두셨지만 내가 중학교 1학년, 갓 어린 티를 벗을 무렵에 다 키워놓은 큰딸을 교통사고로 황망히 잃으셨던 엄마. 다 큰 자식 하나를 가슴에 묻은 엄마는 누나를 잃은 뒤부터 유난히 더 우리들에게 정성을 다하셨던 것 같다.
재래식 부엌이 일하기 불편하다고 누나들 시집갈 때까지 부엌에서 설거지며 속옷빨래 한 번 시킨 적 없는 엄마셨다.
봄 양파작업철, 늦은 오후 돌아온 엄마의 작업 가방 속 땀에 전 수건 옆에는 항상 보름달 빵이 있었다. 새참에 먹으라고 나눠준 빵을 자식들 갖다 주려고 남겨 왔다는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우리에게 김치 담가볼 기회조차 주지 않으신다.
"엄마, 힘드니까 김치 그만 담그세요."
"나 죽으면 그때부터 느그가 담가 먹어라."
또 다른 신문지에 쌓인 것을 열어보니 노지 깻잎이 한 무더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에 노지 깻잎치고는 뻣뻣하지도 않아 깻잎 김치 담그기에 제격일 것 같았다. 한 장씩 깨끗이 씻어 차곡차곡 쌓고 급하게 양념장을 만들어 깻잎 김치를 담갔다. 넉넉히 만든다고 추가로 양념장을 한 번 더 만들었는데도 깻잎은 그리 많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내리사랑, 난 자신이 없다
▲ 아래를 열어보니호박과 가지, 고추가 있습니다. ⓒ 정상혁
세 살배기 아들 한울이 머리통만한 크기의 호박과 그 반쯤 되는 호박은, 함께 온 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된장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가지는 좀 많으니 이웃과 나눠야 할 것 같다. 전화통화 중에 지나가는 말로 참기름 떨어져 간다고 했더니, 가볍게 흘려듣지 않으시고 보내주신 '진짜 참기름' 두 병.
마지막, 하얀 봉지에 입구가 새지 않게 노끈으로 꽉 묶인 것은 엄마가 주의사항까지 전해주신 바로 열무김치.
▲ 열무김치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는 바로 엄마표 김치! ⓒ 정상혁
무더위에 입맛 없을 때는 찬물에 밥 말아서 열무김치 살짝 얹어 먹으면 그만이다. 봉지를 열자 '나 전라도에서 왔어라우' 하듯이 진한 젓갈 냄새가 풍겼다. 고춧가루며 마늘, 깨, 매실청, 젓갈 등등 자식에게 무작정 퍼주듯, 양념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담근 전라도 김치를 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버스 타고 오는 사이에 살짝 익었는지 코끝을 간질이는 맛있는 김치 냄새가 솔솔. 어느새 손이 열무김치를 향해 움직였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급히 한입 가득히 넣어 씹어본다.
'아, 엄마... 아내가 엄마의 이 맛을 지켜갈 수 있을까요?'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으라고 아내를 닦달해야 하나보다.
드디어 상자를 다 비워내고 정리를 마쳤다. 상자는 비워졌지만, 냉장고와 내 마음은 꽉 채워졌다.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부모님이 내게 주신 만큼 내 자식들에게도 사랑을 물려줄 수 있을까? 난 자신이 없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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