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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살짝 뜯어 고쳐도 다 알아보는 이유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78] 작은 변화 알아채는 두뇌 해마 부위 탓

등록|2015.09.05 20:17 수정|2015.09.05 20:17
"누구더라, 가만있자. 건넛마을 영숙이 딸이지? 야~, 너무 많이 변해서 시내에서 만났다면 몰라봤을 거 같다."

매년 추석 즈음, 고향을 방문하면 알 듯 모를 듯한 사람들과 조우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크게 달라진 모습에, 누구인지 잘 알아보지 못하고 헷갈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생전 처음 본 사람인데도 알고 있는 그 누군가를 빼닮은 탓에 누구누구의 자녀 혹은 형제 등으로 추정할 때도 있다.

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까? 얼핏 생각하면 알면 알고, 모르면 몰라야 하는데,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일이 왜 생기는 걸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중간쯤 되는 모호한 상태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장소만 하더라도, 어딘가 낯이 익은 곳들이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처음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일들이 생기는 건, 우리 두뇌의 복잡한 작동 방식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의 두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위 가운데 하나가 '해마'이다. 해마는 뇌의 측두엽, 즉 관자놀이 부근 뇌 영역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생김새가 바닷속에 사는 생물 해마를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불린다. 해마는 기억 처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전모가 속속들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실험 등에 따르면, 해마에 손상이 가해지면 인간은 과거의 기억 즉 장기 기억을 잃는다는 사실 정도는 밝혀졌다.

톱니 융기 부위와 CA3 부위의 경쟁

▲ ⓒ pixbay


그렇다면, 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기억은 해마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최근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이는 단순히 기억력이 좋고 나쁘고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즉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한번 본 사람을 끝까지 잘 알아보고,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 듯, 보지 않은 듯한 기억 현상은 해마 속에 있는 최소한 두 개의 특정 부위가 서로 경쟁을 한 결과 빚어진 현상이라는 게 최신 연구결과이다. 두 개 부위란 다름 아닌 해마의 '톱니 융기 부위'(dentate gyrus)와 'CA3' 부위로 이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고수'하기 때문에 본 듯, 보지 않은 듯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톱니 융기 부위는 뇌에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즉 사람이 어떤 사물을 목격하거나 할 경우 이를 자동적으로 '새로운' 정보로 인식한다. 다소 과장되게 단순화하면, 매일 보는 아내 혹은 남편이나 자식도 톱니 융기 부위는 새로운 사람으로 일단은 인식한다는 뜻이다.

반면 CA3는 기존의 정보와 비교해 그 차이를 최소화하는 일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아내가 헤어 스타일을 약간만 바꿨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남편의 톱니 융기 부위는 일단 새로운 사람으로 아내를 판단한다. 하지만 동시에 CA3는 헤어 스타일의 미미한 변화에 불과할 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아내임을 확인한다.   

CA3의 이런 작동방식을 감안하면, 본 듯 보지 않은 듯한 사물 혹은 사람은 CA3의 인식범위 경계를 넘어설 듯 말 듯한 기억의 대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실제 처음 대하는 사물 혹은 상황이지만, 마치 과거에 경험해 본 듯한 경우가 있다. 이른바 데자뷔다. 학자들은 데자뷔 역시 CA3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CA3는 오묘하기 짝이 없는 인간 두뇌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부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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