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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 휘둘리지 말아야지'... 쉽지가 않네요

[초보 학부모 이야기 시즌 2 ⑨] 학원을 위한 학원까지 등장

등록|2015.09.03 14:11 수정|2015.09.03 14:11
8월 28일, 드디어 개학입니다. 7월 23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 달하고도 닷새 되는 기간 동안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방학! 그런데 정말 아이들에게도 정말 휴식 기간이었으며 맘껏 놀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까요?

대다수의 초등학생 역시 방학이라고 우리 어릴 때처럼 집에서 마냥 놀 수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사교육의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방학이란,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달리게 하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방학, 올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

드디어 개학 입니다.여름 방학이 끝나고 집을 나서는 첫째 아들 ⓒ 김승한

한편 우리같은 맞벌이 부부에게는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우리 부부는 유치원과 태권도장이 쉬는 2주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회사로 출근했습니다. 직원들 눈치도 보이고 밥도 따로 챙겨줘야 하고. 우리도 아이들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2주간의 유치원과 태권도장 방학이 끝나고 나서는, 아내가 매일 점심시간마다 집에 갔습니다. 아이들 점심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서입니다. 더운 여름이라 음식을 거실에 차려놓고 출근하는 게 신경 쓰였기 때문입니다. 방학이 끝나니 이 일도 이제 끝입니다.

맞벌이 부부들에게 아이들 방학이 다가오면 걱정이 앞섭니다. 방과 후 학교와 학원을 보낸다 하더라도 점심 식사가 문제고요, 학원마저 쉬는 기간에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벌이를 하자니 빠듯한 살림에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긴 여름 방학, 초등학교 아이들도 놀러다니기 보다는 본격적인 학원 출퇴근에 이어 해외 어학연수까지. 정말 바쁩니다. 학기 중에 비해 오롯이 하루 전체 시간을 사용할 수 있어서 사교육 시장에서는 방학 한두 달 전부터 각종 프로그램을 내세워 광고를 합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단기 해외연수입니다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영어권 국가도 있지만, 영어를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쪽으로도 많이 가고 있습니다. 인도 역시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점점 유학생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금액은 나라별, 프로그램별로 차이가 있지만, 방학을 이용해 단기 연수를 선호하는 부모님들이 많다는 것은 역시 '영어'에 대한 염려입니다. 제 주위에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연수를 다녀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은 학생들만 보내도 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엔 엄마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 어학 연수의 성과는, 누라 뭐래도 공부를 하는 학생의 의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흥미가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부모의 의지만으로 따라온 아이들에게는 이중 삼중의 고통이 될 뿐입니다. 언어를 배우려 왔다가 오히려 언어의 장벽으로 우울감과 향수병으로 연수를 가지 아니함만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그리 여유 있는 집안이 아니라면 방학 때마다 기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 또한 문제입니다.

유명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새끼 학원'까지 등장

해외 어학연수보다 심각한 것은 방학을 이용한 본격적인 선행 학습입니다. 8월 31일자 <한수진의 SBS 전망대>를 보면 사교육을 주도하는 학원들의 선행학습과 이를 뒷받침하는 '새끼 학원'에 대한 자세한 인터뷰가 나와 있습니다.

선행 상품 판매가 심하다고 제보된 13개 학원의 온라인 광고를 보면,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평균적으로 3.2년의 선행학습을 광고하고 있는 걸로 조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평균 3.2년이라면 초등학교 6학년에게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의 선행 학습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별로 놀랄 일은 아닙니다. 대학 자체가 취업학원으로 전락해 버린 현재, 대학입시 위주로 고등학교마저 서열화 되어 있고 이 정점엔 외고나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있습니다. 이들 많은 학원들은 영재학교나 과학고를 대비하는 학생과 부모들에게 초등학교 2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인을 주고 있는 겁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격을 형성하고 부모의 그늘에서 인성을 키워가야 할 나이에 우리 아이들은 벌써 경쟁이 치열한 교육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초등학생이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취약한 교육제도는 사교육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나는 사교육에 휘둘리지 않으리라'생각했던 학부모들마저 듣고 보는 것들이 경쟁적인 교육 열풍인지라 공교육의 짙은 그늘은 사교육을 멀리하기 힘듭니다.

보통 가수나 탤런트 등 연예인으로 데뷔를 하기 위해서 소속사에 들어갑니다. SM이나 JYP 같은 곳이죠. 이런 소속사에서는 연예인 데뷔를 위해 연기나 보컬 외에도 외국어나 악기 연주 등 다양한 능력을 키워주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교육으로 유명한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새끼 학원'이 있답니다. 일류 대학 입학률이 높은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시키는 유명 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다니는 하위 개념의 학원인 셈입니다. 영재학교 같은 경우엔 영재교육 시행령에 의해 대학 교과과정 수준의 심화 교육을 운영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이미 중학교 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쳐야 하니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수준의 수업을 한다는 겁니다.

아주 소수의 영재들은 이 과정을 소화할 수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은 이런 지나친 선행학습으로 오히려 학습 흥미도가 저하되고, 그렇게 되면 교사들 역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그렇다고 선행과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 위주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초등​학교 앞에 영어, 수학, 줄넘기 학원까지...

초등학교 앞에 널린 학원들초등학교는 하나인데 정문을 따라 영어, 수학 학원은 기본이고 줄넘기, 미술학원 등만 해도 수십 개입니다. ⓒ 김승한


우리 집을 나서면 줄넘기 학원이 두 군데 있습니다. 태권도 학원에서도 줄넘기를 따로 가르칩니다. 줄넘기를 가르치는 이유는 아이들의 체력 향상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급수를 매기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학교에서 줄넘기를 시켰던 취지는,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체력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줄넘기를 잘하는 순서대로 급수를 매기고 학년 평가에 반영이 되다 보니 줄넘기를 가르치는 학원이 등장을 한 겁니다. 

저는 이런 사교육 광풍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가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모든 학교 교육 과정의 뒤에는 사교육이 단단히 버티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한 곳만 있으면 수십 개의 예체능 학원부터 영어, 수학 학원이 먹고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태교'라는 형태의 교육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두 살이 되면 책을 읽어주고 글자를 접하게 합니다. 서너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어 본격적인 교육을 시킵니다. 초등학교 과정의 선행학습이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저녁시간까지 학원과 공부방을 전전하다 집에 들어옵니다.

학습 능력에는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공부를 좋아하고 상위 학습도 힘들지 않게 따라가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어린이들은 그 소수와의 격차를 줄이고자 코흘리개 나이부터 머리를 싸매고 공부에 매여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을 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비합리성을 인정하지만, 저 조차도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사교육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행태를 비판하고 들춰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작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 드는 무기력함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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