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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꽃도 구분 못하는 나라, 정상은 아닐 것입니다

최종규 선생 글에 대한 재반박 기사 2

등록|2015.09.06 12:15 수정|2015.09.07 09:44
<표준국어대사전> 에 '등대풀'이란 게 있습니다.

등대풀일본말 등대풀(燈臺草, 도다이구사)를 번역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국립국어원


이 꽃은 일본말 "등대풀(燈臺草, 도다이구사)"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1937년에 나온 < 조선식물향명집>에 있는 것을 국가기관이 올해로 78년간 손 안 대고 그대로 써 오고 있는 것이지요. 참으로 오랫동안 고이고이 간직해온 이름입니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 들과 뫼에 자라는 풀꽃이름은 상당수가 1937년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풀꽃이름을 살펴보면 참으로 희한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등대풀과 같이 꽃이름에 풀자를 붙이는 버릇 말입니다. 이것은 일본말을 그대로 옮겨서 생긴 일입니다. 풀과 꽃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런데도 일본사람들은 풀과 꽃을 구분 못하고 꽃을 '풀'이라하지요. 그것을 우리는 또 1자 1획도 바꾸지 않고 '등대풀'로 옮겨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제가 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등대풀, 131쪽'에서 원래 이 말의 등대는 바닷가의 등대가 아니라 일본 옛말인 '등잔'을 뜻하는 것이며 만일 그때 정확하게 번역했다면 '등잔꽃'이 맞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저의 주장은 이것을 오역했다는 것에만 있지 않으며(겸사 이것도 지적) 더 좋은 것은 "우리가 우리 눈으로 이름을 붙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풀꽃이름과 더불어 또 하나의 지적은 풀꽃 풀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만 해도 등대풀을 "산형화서니 삭과"니 하는 일본말로 풀꽃을 풀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기가 막힌 풀이가 수두룩합니다.

2011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든 <한반도 고유종 총람>의 '울릉장구채(울릉대나물)'를 볼까요?

다년생초본으로 높이는 50센티까지 자란다. 뿌리는 목질화 되어 있고 줄기는 곧게 서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털은 없다. 앞은 선형으로 크기는 6~9 × 0.7~1.0센티이며, 엽두는 점첨두이고, 엽병이 거의 발달하지 않는다. 원추화서로 정단과 엽액에 달린다. 소화경은 0.4~1.5센티이고, 악편은 종모양으로 끝이 5개로 갈라지며, 10개의 맥이 있다. 꽃잎은 5개이고, 끝이 2개로 갈라지며, 흰색이다. 수술은 10개이고, 자방은 3개로 구분되며, 화주는 3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이며 종자는 신장모양으로 매우 작다. 꽃은 6~8월에 피며 울릉도 해안가 바위 절벽에 분포한다. 분포, 울릉도

울릉장구채《한반도 고유종 총람》, 국립생물자원관, 2011, 울릉장구채 풀이 ⓒ 국립생물자원관

거의 모든 풀꽃 풀이가 이런 지경입니다. 이렇게 일본말 투성이로 우리 풀꽃을 풀이해야 옳은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에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서 이 부분도 조금 짚었습니다. 사실 더 강력하게 국가기관에 따지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일제 침략의 역사를 털어내지 못하고 아직도 일본말을 번역한 풀꽃이름을 그대로 쓰고 또 그 풀이조차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 이 책을 쓴 것입니다. <조선식물향명집, 1937>은 그런 과정에서 하나의 예로 든 것일 뿐 이 책을 비난하거나 옹호하거나 하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그런데 최종규 선생은 제가 마치 이 책을 비난한 것처럼 말하면서 이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주문을 하셨습니다. 백번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이 책을 수십, 수백 번 밑줄을 치고 읽으면서 샅샅이 일본말과 조선말(당시 표기)을 견주고 "우리 풀꽃이름이 생긴 과정"을 살펴보았다면 선생처럼 '옹호'의 마음만이 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백번 물러서서 이분들의 땀과 노고를 깎아 내렸다고 칩시다. 그렇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지금까지 그 이름을 보존해주고 있으니까요. <조선식물향명집>을 만든 이들의 공로는 1937년 이래 2015년 현재까지 78년간 산림청 <국가표준식물목록>,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따위에서 고이 보존하여 기리고 있지 않습니까? 등대풀도 그렇고 칼송이풀도 그렇고 개불알풀도 그렇고 말입니다. 78년간 이 분들의 공로를 인정해오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제가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서 지적한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대관절 얼마나 많은 풀꽃이 일본말에서 나왔으며, 또 그 풀이는 또 얼마나 많은 일본말로 오염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국가 기관처럼 수많은 인재를 데리고 있지도 못하여 그 많은 풀꽃이름을 샅샅이 조사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염되어 있는 우리 풀꽃이름과 풀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기에 제가 전공하는 일본어를 무기로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놓은 1922년 <조선식물명휘>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을 뒤져 겨우 문제 제기 형식으로 내놓은 책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입니다.

이런 것을 조금 밝혔다고 해서 나라의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라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을 비롯한 책에서 일본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풀꽃이름을 손보지 않고 78년 동안 금과옥조로 모셔오고 있는 현실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지각 있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칼송이풀일본말 왜장도를 번역한 칼송이풀 ⓒ 이윤옥


칼송이풀산림청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나오는 국명(칼송이풀), 일본명 나기나타시오가마(ナギナタシオガ)에서 온 말이며 출처는 1920년 토쿄라고 써 있고 학명에는 나카이(Nakai, 나키이다케노신)이름이 들어있다. ⓒ 이윤옥


"엄마, 칼송이풀은 '꽃'처럼 생겼는데 왜 칼송이 '풀'이라고 해요?" 라고 우리의 사랑스런 아들딸이 물으면 "그건  일본말을 번역해서 그렇단다"라고 말해주시렵니까?

"선생님, 복주머니처럼 생겼는데 왜 개불알풀이라고 해요?" 라고 묻는 학생에게, "일본말을 번역해서 써서 그렇단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까?

개불알풀일본말 이누노후구리를 번역한 개불알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국립국어원


궁색해서 일본말을 번역해서 쓰더라도 '풀'을 '꽃'으로라도 바꿀 것이지…….

광복 70년이 되도록 우리 풀꽃이름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없다는 것은 풀꽃이름에 관한 대중 서적(일부 학자와 의식 있는 분들이 지은 도감 속의 풀이 따위를 싸잡아 말하는 것은 아님) 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껏 대중을 위해 나온 책이라고는 제가 샅샅이 도서관에서 뒤져보니 '아름다운 우리 풀꽃' 같은 책이 전부였습니다. 과문한 탓이라면 용서를 구합니다.

한국말을 배우는 일본인 가운데 한국의 풀꽃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한국의 풀꽃이름은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 많네요' 라는 말입니다. 물론 저는 이때 아름다운 우리 풀꽃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지만 씁쓸함은 숨길 수 없습니다. 혹 이런 저의 이야기를 듣고 최종규 선생께서 튤립은 튤립이라 하고, 에델바이스는 에델바이스라 하는데 일본 풀꽃이름 좀 번역해서 썼다기로서니 뭘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냐라고는 안 하시겠지요?

이참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우리 풀꽃 만세' 하고 지내온 세월을 반성하고 누군가 전문가들이 나서서 팔을 걷어붙이고 왜색 이름의 우리 풀꽃이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낱낱이 밝혀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알아먹기 어렵게 되어 있는 일본말 투성이 말로 풀이한 것도 하루 속히 손을 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적어 보여 안타깝습니다. 

최종규 선생께서는 이 분야에 전문가인 듯합니다. 저의 하찮은 책의 잘못을 짚을 시간이 있다면 국가기관의 형편없는 '우리 풀꽃이름에 관한 관심과 풀이 부분에 대해' 화살을 날려 주십시오. 저 혼자서는 역부족이거든요. 손을 잡고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은 그런 마음으로 쓴 것입니다. 금도 순도가 100%가 아닐진대 사사로운 잘못이 왜 없겠습니까? 잘못이 있다면 고쳐 나가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지향하는 바에는 관심이 없이 <조선식물향명집>을 옹호하면서 '토대'니 '참조'니 하는 말을 오해하고 있다는 둥 재탕, 삼탕으로 책을 쓴 의도를 곡해하시면 '우리 풀꽃을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저도 우리말글을 사랑하며 우리 풀꽃을 아끼거든요.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 인물과사상사


최종규 선생이 <조선식물향명집>을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신다면 이 책에 나오는 풀꽃이름만 뽑아서 <아름다운 우리말 풀꽃> 책을 내주십시오.

선생의 글 댓글에 어떤 분이 <민족정기를 해치는 매국 행위다>라고 했더군요. 민족정기란 왜색이름으로 얼룩진 사실을 덮어 버리고 '아름다운 우리 풀꽃 타령'만 하는 게 민족정기 일 수는 없습니다.

올해는 광복 70년입니다. 피와 눈물로 되찾은 우리 땅입니다. 이 땅에 불순물로 남아 있는 왜색 일색의 풀꽃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외친 가늘고 연약한 지은이의 외침을 부디 왜곡하지는 마십시오.

이제라도 더러운 것은 더럽다고 하고 새로 고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기리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최종규 선생의 두 번에 걸친 자상한 지적 고맙습니다. 부족한 부분, 잘못된 부분에 대한  것이 있으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할 말은 많지만 선생의 '우리 풀꽃을 사랑하는 넘치는 사랑과 애국정신'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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