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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는 40, 50대 월급 깎겠다는 것

말만 믿지 말고 역사를 살피고 상상해 보자

등록|2015.09.06 13:56 수정|2015.09.06 13:56

▲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제대로 거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7월 4일 서울에서 열린 '공공-금융노동자 투쟁 결의대회' 때 모습. ⓒ 강연배


정부는 본격적인 노동개혁에 앞선 신호탄으로 임금피크제라는 포를 쏘고 있다. '쪼기' 전에 '약을 치는' 모양새다. 기업의 호응이 잇따르는 걸 보면 사전 조율도 있었던가 보다.

그런데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거지? 아니 그 전에 임금 피크란 게 누구를 위한 피크인 거지?

임금 상한선을 두고 기존에 들어가던 노동 비용을 줄이고 여기서 아낀 돈을 신규 인력 채용에 투자한다는 게 정부가 말하는 임금피크제의 골자다. 이게 상생인가? 난 아니라고 본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고 자칫 노동착취로 변질될 위험한 정책이다.

임금피크제의 핵심은 임금피크다. 임금의 상한선을 정해두고 노동자의 임금이 그것에 다다르면 그 이상은 안 주겠다는 거다. 그럼 이 임금 피크는 어느 시점으로 잡아야 할까?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정년임박이어야 할 터다.

요즘 정년 퇴직이 어딨나... 중간급 임금 삭감 겨냥한 임금피크

그런데 요즘 정년 퇴직했다는 사람 본 적 있나? 난 십 수 년 전이 끝이다. 내 주위만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정년이란 말은 공무원이나 교사들이나 쓰는 은어가 된 지 오래다. 일반 직장에서 정년? 그게 다 뭔가?

그럼 정년도 안 지켜지는 회사에서 정년 이후까지 돈을 써서 사람을 붙잡는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질 않는다. 그렇다고 설마 임금피크를 신입사원 임금으로 하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그건 대놓고 노동착취를 하겠다는 소리인데 아무리 밀어붙이기식의 정부 정책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는 임금피크의 기준점은 어디인가? 신입사원과 정년(형식상으로는 있으니까)의 어디 중간쯤일 테고 현재의 임금체계보다 1인당 고용비용이 줄어드는 혹은 아낄 수 있는 어느 이른 지점(시점)이 될 것이다. 그래야 돈을 남길 수 있고 그 돈으로 신규 인력인 청년을 고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말은 기존 직장인들의 임금이 깎인다는 의미다. 윗돌 빼서 아랫돌 막겠다는 거다. 다른 부문에 들어가던 비용을 고용창출을 위해 투자하는 게 아닌 이상 고용에 들어가는 비용의 전용에 불과하다.

그래 좋다. 쥐꼬리라도 있는 게 나으니 통장에 잔고 좀 있는 40, 50대 직장인의 임금을 깎아 신규채용을 늘린다니 아주 선하게 봐서 공동체 발전을 위한 나눔으로 이해해 주기로 하자.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기업이 공돈 앞에서 선해질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정부가 기업이 돈을 남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돈이 생기게 됐다. 그런데 그 돈을 신규 고용 창출로 직결되는 건 누가 보장을 하나?

취지가 좋으니 손뼉 치고 지켜봐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기업 왈 "기존 사원의 임금을 쥐어짠 피 같은 돈으로 신규 고용창출하겠습니다" 하면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기업이란 조직의 생리가 뭔가? 돈 남기는 거다. 그런데 그 조직에 "돈을 남기게는 해 줄 테지만 다른 데 쓰면 안 되고 고용창출해야 돼"라고 해봐야 그 실천의지를 누가 믿겠냔 말이다.

우리 사회가 불신사회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간 기업이 보여준 행태가 어땠는가? 상생? 인권? 고용창출?  청와대 면담이나 법원 앞에서는 수도 없이 그러겠다고 했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건 어마어마한 기업 보유고 아니던가? 그런 역사가 있으니 임금피크제를 바르게 실천하겠다는 기업의 선한 의지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에 돈을 남길 방도를 열어주었다면 그 돈을 선하게 쓰게 할 강제를 해야 마땅하고 그건 방도를 열겠다는 정부가 해야 옳다. 그런데 기업을 강제하겠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건 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가? 어떻게 양치기 소년의 말을 또 믿을 수가 있나?

이런 상황에서 정부나 국회에 법을 제고하라거나 정책을 재고하라는 탄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정부의 길과 우리의 길이 어긋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자식에게 뭐라 말할까, 나처럼 속지는 말라고 할밖에

다만, 상상해본다. 이대로의 임금피크제가 악하게 작동되는 미래의 세상을. 40대 중반이 되어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쓸 돈이 줄어드니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들어갈 돈도 줄인다. 있는 집 자식은 외국 유학이니 뭐니 해외로 나가지만 우리 자식은 학원도 변변하게 다니지 못한다. 백수 당첨확률 100%다.

화가 나서 기업에 청년 고용 늘리라고 요구했더니 글로벌 마켓이 위축되어 신규 투자 어렵고 고용 확대는 불가피하게 잠시 보류하겠다고 한다. 분하지만 나는 힘이 없다. 언론도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뉴스를 내보내지만 그 뉴스 뒤에는 기업 이미지 광고가 물결친다.

만약 정말 그런 세상이라면 자식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 그저 참고 살아라? 거리로 뛰쳐나가 투쟁해라? 이민 가라? 답이 뭘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속지는 말라고 말해주겠다. 부디 그런 말하는 세상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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