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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TV 보는 성삼왕, 여기서 탄생했다

[유럽 패키지 여행 ③ 독일, 오스트리아-3] 쾰른 성당

등록|2015.09.07 15:01 수정|2015.09.07 16:08
쾰른 성당에 가면 성삼왕 금동관을 보라

▲ 쾰른 성당 ⓒ 이상기


독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모두 40가지다. 그 중 쾰른 성당은 건축양식, 역사성, 높이와 크기 등에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쾰른 성당은 중세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서쪽에 있는 두 개의 탑이 정말 웅장하고, 내외부의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도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 성당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연 60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매일 2만 명 정도가 성당을 방문하는 셈이다. 우리가 성당을 찾은 날은 수요일인데도 성당 안이 사람들로 꽉 찼다. 성당 입구는 서쪽에 있다. 서쪽에는 문이 세 개 있다. 오른쪽 문이 성당의 주보성인인 베드로 문이다. 왼쪽 문은 1200년 전후 성삼왕 유골함이 안치된 다음부터 성삼왕 문으로 불린다. 출입구는 가운데 문으로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

▲ 성삼왕 금동관(다윗면) ⓒ 이상기


그럼 성삼왕 유골이 어떻게 이곳 쾰른 성당까지 오게 되었을까? 전설에 따르면 성삼왕의 유골은 로마 시대인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몇년 후 그 유골이 황제를 통해 밀라노 주교인 에우스토르기우스(Eustorgius)에게 전달되었다. 그래서 성삼왕 유골은 밀라노 성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성로마황제인 프리드리히 바바롯사가 1162년 밀라노를 점령했고, 황제를 보필하던 수상이자 쾰른 대주교인 라이날트 폰 닷셀(Rainald von Dassel)이 1164년 황제로부터 이 유골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 해 성삼왕의 유골은 쾰른으로 옮겨졌고, 1190년에서 1215년 사이 금 세공사인 페르둔(Nikolaus von Verdun)이 만든 금동관에 모셔진 거로 알려졌다. 성삼왕 유골이 들어있는 금동관은 1948년 이후 현재의 자리인 제대 뒤 가장 신성한 곳에 있다.

내부를 완벽하게 한 바퀴 돌다

▲ 쾰른 성당 평면도 ⓒ 이상기


성당 서쪽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면 성당 현관이 나온다. 이곳은 성당에 들어가기 전 준비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신자 석이 나온다. 신자 석 남쪽과 북쪽 창에는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남쪽 창에는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1세가 1842년 기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모두 다섯 개로 1) 세례자 요한의 설교 2) 목동과 성삼왕의 경배 3)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4) 성령감림 5) 스테파노의 순교다. 그 중 두 번째 그림이 성삼왕과 관련이 있다.

북쪽 창에는 1507~1509년 사이에 기증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이곳에 있는 5개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1) 예수 수난 2) 성 베드로 이야기 3) 목동들의 경배 4) 성삼왕의 경배 5) 마리아가 천성화관을 받음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는 네 번째 그림이 성삼왕과 관련이 있다. 남쪽과 북쪽 성삼왕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남쪽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현이 좀 더 정교하고 자연스러워졌음을 알 수 있다.

▲ 바이에른 스테인드글라스: 성삼왕의 경배 ⓒ 이상기


색감도 남쪽의 그림이 훨씬 더 밝고 화려하다. 상대적으로 북쪽의 그림은 채도가 높다. 그리고 그림 아랫부분에는 각각 4명의 예언자와 성인이 그려져 있다. 남쪽 그림에는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이 있다. 그림 밑에는 이들 이름이 분명하게 쓰여 있다. 이에 비해 북쪽 그림에는 신약성서의 성인 베드로, 마리아, 엘리자베트, 크리스토포루스가 있다.

신자 석을 지나 아내와 나는 제단 석을 감싸고 있는 회랑으로 들어선다. 회랑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모두 9개의 경당이 타원형을 이루어 제단 석을 둘러싸고 있다. 이들 경당 중 좀 더 유명한 것이 마리아 경당, 성삼왕 경당, 십자가 경당이다.

마리아 경당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그림이 그려진 제대가 있다. 성삼왕 경당에는 1322년부터 유골함이 모셔졌다고 한다. 그리고 십자가 경당에는 게로(Gerokreuz) 십자가가 있다. 여기서 게로는 10세기 후반 이 십자가를 주문한 쾰른 대주교의 이름이다.

▲ 성삼왕 금동관: 솔로몬면 ⓒ 이상기


그러나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성삼왕 유골을 모신 금동관이다. 이 금동관은 제단석의 가장 안쪽에 모셔져 있다. 겉에는 쇠창살로 차단했고, 안쪽에는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일반사람들은 접근할 수가 없다. 그나마 회랑으로 들어와 금동관을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곳에서는 금동관의 양쪽 측면과 후면을 볼 수 있다.

나는 먼저 금동관의 남쪽 측면 즉 다윗(David) 면을 살펴본다. 이곳에는 다윗, 예레미아, 모세 등 7명의 선지자 조각이 있다. 북쪽 측면은 솔로몬(Solomon) 면으로 솔로몬, 에제키엘, 하박국 등 7명의 선지자가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후면은 상중하 세 부분으로 나눠 부조되어 있다. 아래 하단에는 예수가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 등이 부조되어 있다.

▲ 정면에서 바라 본 성삼왕 금동관 ⓒ 이상기


그 위 가운데에는 성삼왕의 유골을 이곳으로 가지고 온 닷셀 주교의 상반신이 부조되어 있다. 그리고 상단에는 왕관을 쓴 예수가 순교자 펠릭스(Felix von Afrika)와 나보르(Nabor)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이것을 바로 위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내려다보고 있다. 금동관은 이러한 부조를 통해 구약의 선지자, 신약의 선지자이자 구세주인 예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나는 경당을 나오면서 성삼왕 금동관의 정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이라 부조의 내용을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다. 자료를 보니 상단에는 두 명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재림하는 심판자 예수가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아래 하단에는 예수를 안은 마리아가 성삼왕의 경배를 받는 장면, 예수가 요단 강에서 세례받는 장면이 부조된 것으로 나와 있다.

종탑에 올라가 시내를 조망하다

▲ 베드로 종 ⓒ 이상기


성당을 나온 우리는 이제 남쪽 문을 통해 종탑으로 올라간다. 입구에 보니 탑의 높이, 계단 수, 탑에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이 기록되어 있다. 쾰른 성당 종탑의 높이는 157m이다. 이것은 울름 성당의 종탑(161m)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다. 계단은 533개가 있으며, 100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없고, 입장 요금도 없다.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종실(鐘室: Glockenstube)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리는 베드로 종을 보면서 잠시 쉬어간다. 여기서부터는 철제 사다리를 통해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사다리를 타고 잠깐 올라가니 금방 100m 높이에 이른다. 이곳 전망대는 사방으로 한 바퀴 돌면서 쾰른 시내를 조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폭은 두 사람이 겨우 비킬 수 있을 정도로 좁다. 그리고 밖으로 철망이 쳐 있다.

▲ 호엔촐레른 철교와 라인강 ⓒ 이상기


먼저 동북쪽으로 흐르는 라인 강을 조망한다. 동물원 다리(Zoobrücke) 건너 박람회장 지붕이 보인다. 그리고 동쪽으로 호엔촐레른다리(Hohenzolernbrücke)를 건너 동쪽 도이츠(Deutz) 시가가 보인다. 호엔촐레른 다리는 기차가 다니는 철교로 웅장하고 멋있다. 또 성당 바로 아래로 유명한 발라프-리하르츠/루트비히 미술관이 보인다. 이들 미술관은 중세부터 현대까지 유럽의 중요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1989년 이곳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다리파'로 대변되는 표현주의 미술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또한 백남준의 '성삼왕'이라는 작품도 있다. 비디오 아트의 초기작품으로, 나무로 만든 성삼왕이 흑백 TV를 보고 있다.

백남준은 1956년 독일의 뮌헨대학교로 유학해 음악학을 공부했고, 이어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의 볼프강 포르트너(Wolfgang Fortner)에게서 작곡을 공부했다. 그리고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쾰른에 있는 서부 독일방송(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과 함께 일했다.

▲ 발라프-리하르츠/루드비히 미술관 ⓒ 이상기


백남준이 유명해진 것은 1960년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작품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에튀드' 발표회장에서였다. 그곳에서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내는 퍼포먼스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는 1960년대 초반 플룩수스(Fluxus) 멤버로 활동하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는 실험적인 예술을 시도했고, 결국 TV와 비디오를 가지고 작업하는 비디오 아트를 선보였다.

쾰른 성당의 남쪽으로는 쾰른 도심이 자리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쾰른대학교가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신시가지가 보인다. 이곳에는 TV 송신탑과 미디어 파크가 있다. 쾰른은 과거와 현재, 자연과 도시, 전통과 첨단,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비교적 잘 결합하고 있는 도시다. 그러한 사실은 이곳 전망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성당 광장의 파스텔화 ⓒ 이상기


종탑에서 내려온 우리는 잠깐 성당 포럼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이곳 영상실에서는 성당을 소개하는 20분짜리 영상물을 상연한다. 이곳에서는 또 쾰른 성당 및 쾰른 시내 다른 성당을 안내받을 수 있다. 영적 프로그램으로 성직자와 영적 대화가 가능하고, 교회일치 운동을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문화 프로그램으로는 교양과 지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자료와 매체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그것에는 참여하질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성당 앞 광장에서는 젊은이들이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연주하고 있다. 파스텔로 그리는 그림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 또 바이올린, 튜바, 아코디언으로 이루어진 6인조 밴드의 연주 솜씨도 상당하다. 이곳 성당 광장 남쪽에는 로마-게르만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1974년 3월 로마 시대 저택 터 위에 현재의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 로마시대 성곽 북문 ⓒ 이상기


이곳에 가면 로마 시대부터 현재까지 독일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로마 시대 쾰른 성곽의 북문,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아그리피나 흉상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콘스탄누스 시대 쾰른의 모습도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보려면 최소 2시간 정도 관람을 해야 한다. 역시 포기다. 그 대신 돔 광장에 설치된 로마시대 성곽 북문(복제품)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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