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울메트로를 다시 고발하려는 이유
사람이 죽었는데 '원청'은 책임이 없다? 다시 고발을 준비하며
▲ 지난 8월 29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정비직원이 지하철과 안전문 사이에 끼이는 사고가 나 삼성역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 지하철 내선 열차 운행이 일시 중단됐었다. 사진은 사고 현장 주변. ⓒ 연합뉴스
번화한 강남역 플랫폼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 토요일의 강남역은 인산인해 그 자체다. 지하철은 2~3분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운행되고, 사람들은 꽉 들어차 있다. 한 번이라도 주말에 강남역에 나가본 사람은 안다. 그곳이 얼마나 북적거리는 쇼핑의 거리인지.
주말에도 일해야 했던 28살의 노동자는 강남역으로 외출 나온 인파를 헤집고 스크린도어를 열고 홀로 적막한 선로로 들어갔다. 시속 60km의 지하철이 다가오는 순간, 그는 마지막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 8월 29일 저녁 7시 27분에 강남역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는 하청노동자였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지위였다. 그가, "매뉴얼대로 해야 하니 바쁘지만 못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했다면 과연 그의 직장 생활은 계속되었을까? "일단 기다려보겠습니다"라고 했으면 그에게 누구도 닦달하지 않았을까? 스크린도어가 고장 나서 열차의 문도 안 열리는 급박한 와중에, 그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
규정은 "스크린도어 수리는 야간에만", 실제 근무환경은?
▲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관리 노동자 현황서울메트로는 일하는 매뉴얼에 2명이 팀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용역 계약서에서 부터 1명당 관리자는 1.58명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현실과 매뉴얼은 전혀 다른데, 매뉴얼을 안지켜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라 책임을 몰아가고 있다. ⓒ 노동건강연대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하루 평균, 한 역당 8.1번의 고장이 일어난다(2015년 기준, 서울메트로 자료). 안전문을 수리하는 하청노동자에게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줬더라면, 아니 지하철 위험 관리 시스템으로 그를 체계적으로 일을 시키고 보호해 줬더라면. 아마도 당시 사망한 노동자는 이틀 후 무사히 휴가를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내년 1월엔 계획대로 결혼도 했을 것이다. 1년 남짓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에서 일을 했던 그가 죽지 않았다면 만들었을 평범한 삶과 미래를 추모한다.
지난 2013년 1월, 38세의 또 다른 노동자가 죽었다. 그는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중이었다. 당시 오전 11시쯤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수리는 원칙적으로 밤에만 하게 되어 있는데, 업체에서 그걸 어기고 낮에 수리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같은 일을 하던 노동자의 증언은 달랐다. "밤낮없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할 일이 생기고 낮에 작업하는 일이 많다"며 "어디에서도 특별히 낮에 근무하지 말라는 말을 전달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열차 운행이 끝난 야간에만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도록 규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의도적인 자살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결국,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일관된 안전관리는 없었다. 중요한 업무를 외부 업체에 넘겨버리고는,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해버린 서울 공공교통의 중심 '서울메트로'였다.
이번 사고에는 어땠을까? 서울메트로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고 했다. 2인 1조인데 규정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고, 스크린도어의 유지·보수·관리는 하청업체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으므로 서울메트로는 잘못이 없다고 했다.
이상했다. 스크린도어는 지하철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러 들어와서, 스크린도어의 문이 열려야만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야 하는 사람들은 스크린도어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내릴 수가 없다. 그 중요한 시설이 거대한 지하철과 한몸이 아니라는 서울메트로의 주장을,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노동자 사망에 책임 없다는 서울메트로, 고발했습니다
▲ 철도/지하철 외주용역 하청노동자 사망 사고 통계. ⓒ 노동건강연대
2013년 사고 당시, 보도된 뉴스를 접했다. 그때에도 이상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노동자가 하청노동자라는 사실이 이상했고,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데 지하철역에서 그 사실을 모른다는 말도 이상했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서울메트로가 책임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서울메트로를 고발(산업안전보건법 23조 안전조치· 29도 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 조치 위반)했다. 공기업 최초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공기업의 하청노동자 사망은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잘못이 있다고 누구도 묻지 않았다.
당시 쟁점은, 서울메트로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인가'였다. 사람이 죽었는데, 유일한 법인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니.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는 '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제1항에는 "같은 장소에서 행하여지는 사업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의 사업주는 그가 사용하는 근로자와 그의 수급인이 사용하는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에 생기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업의 적용 제외 규정으로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건설업, 1차 제조업 등 8개 업종에만 그 부분을 한정하고 있었다. 고발을 위해서는 서울메트로의 등기부 등본과 사업영역의 분류코드, 한국표준산업분류 등을 검토해 책임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최근 4년간 철도 지하철로 사망한 노동자가 23명이다. 이들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럼 누가 졌던 것일까? 참고로 지난 2014년 1월 1일에 법이 개정되어 현재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만 사용하는 사업을 제외한 전 사업'으로 확대 적용되었다.
결국 38살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원청인 서울메트로 대표이사는 혐의가 없었다. 검사는 깔끔했다. '혐의없음' 통지서 달랑 한 장이었다. 사람이 죽었지만 죄가 없다고 했다. 고발을 한 우리는 한국에 처음 기업살인법 도입을 주장한 노동건강연대였다. "산재 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외쳐왔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위험관리를 소홀히 한 기업에 책임을 묻자고 했다.
1995년 9월, 미국에서 삼성중공업에 92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 일어났다. 괌 국제공항 공사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1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한국은 어떠한가?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24조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혹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지난 2012년 LG화학 청주공장에서 8명의 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하고 3명의 노동자가 크게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법원에선 LG화학에 3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담당자 3명에 대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것도 원청 노동자 사망에 한해서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할 경우에는 어떨까?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1항 및 3항에서 도급사업에서의 안전·보건 조치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이 최대 1천만 원이다. 원청의 공간에서 하청노동자가 아무리 위험하게 일을 해도, 사측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돈은 최대 1천만 원이다. 대기업이 사고가 나면 아무리 대국민 사과를 하고 머리를 조아려도, 관련 법상 책임은 그렇다.
최근 늘어난 하청노동자 사고... 노동자 보호 체계 필요
최근 급격하게 늘고 있는 하청노동자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법원에서도 그 사망에 대한 직접 책임이 아닌, 그 공간을 관리하는 원청의 책임을 물어 처벌을 하는 실정이다. 책임은 두 가지 다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점점 약한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최근 죽고 다치는 사람 대다수가 하청노동자들이다. 제발 사람 좀 살리자고, 처벌도 강하게 하고 산재 사망 세계 1위에 걸맞은 예방체계도 갖추자고 말해왔다.
물론 법원도, 검찰도 꼼짝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늘 그래왔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의 이면에도 기업의 무책임함에 대한 무처벌과 외주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청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원청은 책임이 없다"는 말은, 일하다가 사망하는 무수한 사람을 접하며 겪은 일이기도 했다. 무책임한 원청의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검찰, 법원의 처분 결과도 많이 받아본 터였다.
그러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다는 기사에 달리는 "하청노동자가 무슨 힘이 있느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하청 노동자면 을 중에도 을을을이다!"하는 수많은 댓글.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제도를 만들고,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세상을 사람들은 안다.
그런 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할 체계를 잘 만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죽을지도 모를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도. 그런데 며칠 전(지난 3일 저녁 11시 10분) 또 한 명의 28살 노동자가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가 추락했다. 현재 의식불명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교통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 중요한 안전과 연결된 일을 외부업체에 통째로 맡겼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하다. 하청노동자가 죽어도 원청에 책임이 없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도 오싹하다. 요즘은 주변을 돌아보면 너도나도 하청 노동자다. 계속 묻고 또 물어야 노동자를 지킬 수 있다. 이에 우리는 다시 고발을 준비한다.
"2015년 9월, 정부에 다시 묻는다. 여전히 서울메트로는 죄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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