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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싸운 이주노조 투쟁, 마침내 승리하다

등록|2015.09.15 10:43 수정|2015.09.15 10:43

▲ 서울고용노동청 앞 이주노조의 농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 이주노조 박진우


금으로부터 10여년 전, 고용허가제의 국회 통과로 대다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추방이 이뤄졌다.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 다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기도 했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도 적지 않았다.

바로 그때 2003년 11월 명동성당에 전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것이었다. 381일간 이뤄진 농성 투쟁은 비록 승리로 끝나진 못했지만, 그 이듬해 2005년 4월 서울·경기·인천 이주 노동자 노동조합이라는 한국 최초의 이주노동자 독자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계기가 됐다.

2005년 창립된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이주노동자가 가입할 수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조합원이 대다수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여권 번호, 사업장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이 포함된 조합원 명부를 제출할 것을 노동조합에 요구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어갈 경우 단속을 하기 위한 명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주노조에서는 이를 거부했고 노동부는 노조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이후 10년간 1심 노동부 승소, 2심 이주노조 승소를 거쳐 대법원에서 무려 8년간의 계류 끝에 지난 2015년 6월 25일 전원합의체 선고가 있었다. 마침내 이주노조 합법화의 문이 열린 것이다. 판결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서울지방노동청)가 부담한다...(중략) 따라서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인지 여부나 취업자격의 유무에 따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는 없다...(중략) 같은 취지에서 원심은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고가 이와 다른 전제에서 단지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자격 유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그 보완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주노조에서는 바로 서울지방노동청에 방문해서 10년간 바뀐 임원 명단과 이주노동조합 규약을 제출했다. 노동부에서 곧 노조필증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노동부에서는 차일피일하면서 이주노조의 노조필증 교부를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7월 7일 노동부에서는 노동조합 설립신고사항 보완 요구라는 이름으로 이주노동조합에 공문을 보내왔다. 주요한 내용은 노조법 제2조 제4호 '마목'에 주로 정치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노동조합 결격 사유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어 이주노조의 규약상 단속 추방 반대, 이주 노동자 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연수제도 폐지 등을 활동 목적 또는 사업 내용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위 사유에 해당할 소지가 있는 바 노조법에 부합하도록 규약을 보완하라는 것이었다.

▲ 이주노조 설립 필증 교부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주노조 박진우


이후 이주노조에서는 수차례 논의를 통해 지난 7월 19일 임시총회를 거쳐 수정된 규약에 대해 노동부에 제출했지만 노동부에서는 7월 23일 노동조합설립신고 2차 보완 요구 공문을 보내왔다. 공문의 주요 내용은 지난 7월 19일 개최된 이주노조 임시총회에 대한 재적 조합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 또는 열람할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과 개정된 이주노조 규약에 있는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노동허가제 쟁취'가 여전히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활동이 노조 설립의 주목적임을 명시한것이기 때문에 수정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주노조에서는 이미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당연히 나와야할 노조필증이 이렇게 지연되는 것 자체가 부당할 뿐 아니라 노조의 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약을 노동부가 정치 운동 운운하면서 재차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주노조는 10년 전 명동성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박탈하는 모든 억압과 차별에 맞서 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주노조에서는 지난 7월 27일 11시 서울노동청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이후 이주노조 설립필증 촉구를 위한 농성 투쟁을 시작했다.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네팔, 방글라데시,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브라질, 부르키나파소, 뉴질랜드 등 전 세계에서 이주노조의 합법화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연대하러 온 이주민들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 방문이 이어졌다.

매일 저녁 문화제때는 그야말로 세계 노래 자랑 대회가 열렸고 무반주로 각 나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도 추면서 연일 즐거운 투쟁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 서울지방노동청장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청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면담을 거부했다. 고심 끝에 이주노조에서는 10년의 투쟁을 마무리짓고 합법화된 노동조합으로 나아가기 위해 8월 16일 2차 임시총회를 열었고 규약을 일부 수정해 노동부에 제출했다.

마침내 2015년 8월 20일 오전 11시 15분 서울고용노동청은 이주노조 설립필증을 교부했다. 드디어 지난 10년하고도 4개월간 끌어왔던 이주노조 합법화 투쟁이 이주노조의 승리로 마무리짓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서 투쟁하다가 단속 추방된 초대 위원장 아노아르 동지를 비롯한 수많은 동지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이 순간에 정말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하지만 이주노조 농성투쟁을 통해서 전국에서 휴가를 반납하고 달려온 이주노동자들과 수많은 연대 단위 동지들의 축하가 종일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투쟁을 했다면 이제는 정말로 합법화 이후의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합법화 필증이 교부된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낭독한 기자회견문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갈음하고자 한다.

이제 시간은 우리 편이 되었다. 이주노동조합 합법화는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날수록 이주노조는 더욱 더 확대될것이며 우리의 힘은 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임금체불과 폭력, 폭언, 성폭행 등 만연한 인권과 노동권 탄압에 노출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노예사슬을 끊어내는 것이 이주노동조합의 임무가 될 것이다. 국적, 피부색, 성별, 비자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조합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 발돋움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노예의 쇠사슬이며 우리가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박진우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사무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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