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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 석굴, 보는 사람도 '아슬아슬'

[버스와 기차로 간 서역기행 5] 천수(天水), 맥적굴

등록|2015.09.25 13:29 수정|2015.09.25 13:29

▲ 맥적산의 잔도와 마애불 ⓒ 서종규


▲ 천수시 중앙에 흐르는 하천을 막아 놓은 보 ⓒ 서종규


서안을 벗어나 고속도로 약 320km 달려서 도착한 곳이 천수다. 서안을 출발할 때는 8차선이던 고속도로가 100km 정도 지나가니 4차선으로 바뀐다. 정말 시원하게 닦인 신서역길이다. 고속도로 양쪽에 즐비하던 아파트 숲은 옥수수밭과 포도밭 등으로 바뀌어 푸르다.

천수 인구는 약 120만 명 정도이며, 해발고도 1300m 감숙성에서 3번째 큰 도시로 대부분 한족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천수는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채소를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과일로는 복숭아 재배가 많다고 한다. 강우량은 연 580mm 정도이고, 기온은 여름에 약 30 ~32도 정도이고, 겨울엔 0 ~ –8도 정도라고 한다. 특산물은 호두라고 한다.

도시의 형성이 독특하다. 도시 양 옆에 산이 있어서 그런지 도시 중앙에 6차선 도로가 쭉 뻗어 있고, 그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상가와 가옥들이 배치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중앙 도로를 중심으로 길쭉하게 뻗어져 있는 도시다. 도시는 현대화된 도시로 아파트 등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지만 중국의 여느 도시와 느낌이 비슷하다. 도시를 흐르는 하천이 보이기는 한데 건천이다.

길게 늘어진 길을 따라 도시로 깊숙이 들어가자 두 갈레로 갈라지는데, 오른쪽 길을 타고 가니 가운데 도시를 흐르는 건천에 보를 막아 물이 가득 차 있다. 보는 두 군데 막아 놓았다. 천수는 진나라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라고 한다.

▲ 보릿짚을 쌓아 올린 듯한 맥적산 ⓒ 서종규


▲ 맥적굴 입구를 점령한 견과류 판매점 ⓒ 서종규


천수가 서역기행의 중요한 탐방지가 된 것은 맥적산에 있는 석굴 때문이다. 천수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가면 보릿짚을 쌓아올린 것 같은 모양의 산이 하나 나오는데, 붉을 색을 띤 절벽이다. 이곳 절벽에 석굴이 있다.

천수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가니 붉은 절벽으로 된 산이 눈에 들어 온다. 이 절벽에 중국 특유의 잔도를 내고 석굴을 파고 불상을 안치한 이곳은 4세기경에 파기 시작하여 청나라 때까지 1500여 년 동안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당나라 때에는 이곳에서 300여 명의 승려가 수행할 정도로 번창하였다고 한다.

1961년 중국 국가중점 문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가 1984년에 잔도를 정비하고 개방하였다고 한다. 이곳엔 194개의 석굴이 있고, 약 7000여 점의 불상과 불화가 있다고 한다. 불상의 크기는 16m가 되는 큰 것도 있고 10cm 정도 작은 것도 있다고 한다.

주차장에 내려서 셔틀차인 전기차에 오른다. 중국 사람들은 전기차라고 하지 않고 배터리차라고 한다. 5분 정도 올라가서 내리니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 계단 등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따리나 소쿠리에 호두며 잣이며 각종 견과류를 올려놓고 사라고 외친다.

천수의 특산물이 호두라고 한다. 호두는 먹는 호두도 있고, 손에 쥐고 놀이하는 호두도 있다. 까지 않은 잣송이 몇 개씩 놓아 놓고, 그 밑에 잣을 부어 놓았다. 잣은 다시 껍질을 벗겨야 되는데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의 알맹이를 팔고 있다.

▲ 맥적산 절벽에 있는 대불 마애불 ⓒ 서종규


▲ 맥적굴을 철망으로 막아 놓은 보호막 ⓒ 서종규


절벽 위에 버티고 선 마애불

맥적굴 절벽을 한 바퀴 돌려면 약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밀려 있어서 더디게 나아간다. 눈 위에 거대한 마애불 세 분이 버티고 있다. 좁은 잔도의 계단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니 석굴 대부분에 불상이 안치돼 있다. 그리고 많은 석굴들이 철망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불상들은 대부분 철망 속에 안치된 불상들이다.

동굴에 있는 불상들의 모습이 각각 다른데 이것은 시대에 따라 불상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채색된 모습들도 대단하다. 지금부터 약 1600여 년 전의 그림들이 그 많은 세월동안 절벽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불상을 어떻게 만들어 설치했는지 그 생생한 흔적들이 있다. 돌로 불상을 조각하다가 중단하여 다 만들지 못한 불상이 있는가 하면, 석벽 거대 마애불은 만들어 놓은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 속이 노출되어 있다.

마애불 세 분씩 벽 오른 쪽과 왼쪽에 거대하게 붙어 있다. 멀리서도 눈에 띄게 거대하여 경외감마저 든다. 잔도를 타고 오르면서 발 아래서 보니 발가락 하나만 해도 어른 주먹보다 크다.

이 마애불 세분은 온전한 형태의 불상이 아니라 훼손된 모습 그대로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불상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보이는데, 우선 뼈대를 나무로 만들어 벽에 구멍을 뚫어 박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원석을 사용하여 윤곽을 잡고 흙으로 불상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겉에 석고를 씌워 채색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불상들은 훼손 되었는지 아니면 조성하다가 그만 둔 것인지 몰라도 바위로 형태만 남아있는 것도 있다. 아마도 이 바위 형태에 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불상의 형태를 만들고 겉은 석고로 완성한 것 같다. 그리고 채색을 하였을 것이다.

▲ 맥적산 아슬아슬한 잔도 ⓒ 서종규


▲ 절벽에 있는 절 시무사 ⓒ 서종규


"100m 절벽에 놓인 잔도, 만든 사람이 대단합니다"

잔도를 타고 위로 오르니 더욱 아찔하다. 매우 좁은 잔도에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절벽에서 멀리 앞을 보니 푸른 산들의 모양이 부드럽게 솟아 있는데, 일부러 아래쪽을 내려다보지 않아야 한다.

현지 가이드 조선족 임광산씨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이 절벽을 오르기가 너무 두렵습니다.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절벽이 저에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손님 중에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이 중간에서 포기하지도 못하고 쩔쩔 매는 것을 가끔 보는데 100m 정도의 절벽에 놓인 이 잔도를 만든 사람들은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석굴은 그 높은 절벽 위에 '시무사'라는 절까지 지어져 있었는데, 현재도 돌로 된 기둥과 천장의 그림 석굴안의 불상, 현판과 사천왕상 등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불교 그림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절벽에 어떻게 절 건축물까지 설치했는지 그들의 노력이 대단하다.

▲ 오래되어 훼손된 마애불, 불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엿볼 수 있다. ⓒ 서종규


▲ 맥적굴 안에 안치된 불상들 ⓒ 서종규


사실 중국의 석굴은 바위 절벽에 굴을 파고 그곳에 불상을 모셔 놓고, 불교 그림을 그려놓은 곳이다. 중국의 4대 석굴이라고 하면 돈황의 막고굴, 소림사의 용문석굴, 산서 홍강석굴 그리고 이곳 맥적굴이라고 한다.

이번 서역기행에서 탐방한 석굴은 천수 맥적굴, 황하 병령사 석굴, 돈황 막고굴, 투루판 베제크리크 석굴 등 모두 네 곳이나 된다. 이곳도 모두 바위 절벽에 굴을 파고, 그 굴에 불상을 모셔 놓고 그림을 그려 놓은 곳들이다.

참 신기한 것은 중국의 불교가 우리나라처럼 사찰 중심이 아닌 석굴 중심일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부터 석굴이 많았다고 한다. 즉 세상과 단절하기 쉬운 석굴이 수행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를 구하기 힘든 사막지형이라든지, 석굴을 파기 쉬운 사암이나 화산암이라든지 풍토상으로도 사찰 건물보다는 석굴을 파기 쉬운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서역길에 계속 이어져 있는 석굴은 서역을 가는 도중 중요한 불교의 수행지다.

이 맥적산은 당나라 때부터 불교의 전래 통로가 되었던 곳이었고,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화산 강력암으로 되어 있어서 굴을 파기에 좋은 바위라고 한다. 그래서 서역으로 출발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불심으로 이겨내려고 석굴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지금 석벽들은 풍화를 막기 위해 벽을 강화하는 작업을 해 놓았다.

내려오는 발길이 후들후들 떨린다. 그러나 석굴과 안치된 불상, 불화가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힘들게 잔도를 내고, 그곳에 굴을 파고, 정성을 다하여 불상을 모시며, 그림을 그렸던 1500여 년 전의 사람들, 그들의 신앙과 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

▲ 맥적굴 안에 있는 불상들 ⓒ 서종규


덧붙이는 글 7. 29(수)부터 8.6(목)까지 9일 동안 풀꽃산악회 회원 20명은 혜초여행사의 기획으로 신서역길의 중국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신서역기행은 서안에서 천수까지 320km를 버스로 약 5시간, 천수에서 난주까지 33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난주에서 가욕관까지 740km를 기차로 약 8시간, 가욕관에서 돈황까지 40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돈황에서 유원가지 120km를 버스로 2시간, 유원에서 선선까지 620km를 기차로 약 9시간, 선선에서 투루판까지 약 150km를 버스로 약 3시간, 투루판에서 우루무치까지 190km를 버스로 약 3시간이 걸리는 총 2800km의 대장정입니다.
‘버스와 기차로 간 서역기행’은 총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1) 사막을 가로지르는 신서역기행, (2) 서안(西安), 당나라의 흔적, (3) 진시황과 병마용, (4) 화청지 양귀비에 대한 기억, (5) 천수, 맥적굴, (6) 난주, 황하와 유가협댐, (7) 만리장성의 시작, 가욕관, (8) 돈황 석굴 막고굴, (9) 사라진 왕국 고창고성과 교하고성, (10) 투루판, 사막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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