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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이래 최대 위기, 폴크스바겐 문제차량 1100만대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충격, 전 세계 '일파만파'

등록|2015.09.23 08:29 수정|2015.09.23 10:33

▲ '배출가스 눈속임'에 따른 대규모 리콜 명령과 판매 중단이라는 대형 악재로 21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 폴크스바겐의 주가가 18.60% 폭락했다. 사진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소재 한 폴크스바겐 대리점 모습. ⓒ 연합뉴스


세계 판매량 2위, 유럽 판매량 1위의 독일 자동차 메이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최근 미국 환경 당국의 대기오염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배출가스를 조작한 혐의가 드러났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폴크스바겐이 지난 2009년부터 6년간 미국에서 판매한 48만2000대의 디젤 차량에 배출가스를 저감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차량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EPA는 이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전 차량의 리콜을 명령했다. 리콜 대상 차량은 2009~2015년형 제타, 비틀, 골프와 2014~2015년형 파사트 등 폴크스바겐을 대표하는 차량이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이 전 세계적으로 1100만 대의 차량에 이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고 인정하면서 더 큰 충격을 던진 것이다.

독일 <슈피겔>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22일(현지시각) "이번 사건의 내부 조사 결과, 당초 공개된 규모보다 훨씬 많은 1100만 대의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라고 발표했다.

마르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소비자와 대중의 신뢰를 깨뜨려 매우 유감"이라며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시 신뢰를 얻겠다"고 사과했다. 폴크스바겐은 미국 내 디젤 차량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는 이번 사태가 기계 오작동이나 결함이 아닌 의도적 범죄(criminal)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수사 결과에 따라 과징금이나 판매 중단을 넘어 폴크스바겐 경영진이 미국 법정에 서야 할 수도 있다.

'잘나가는' 폴크스바겐, 왜 '꼼수'를 썼나?

▲ '배출가스 눈속임'에 따른 대규모 리콜 명령과 판매 중단이라는 대형 악재로 21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증시에서 폴크스바겐의 주가가 18.60% 폭락했다. 워싱턴DC 환경청 본부 입구의 EPA 로고. ⓒ 연합뉴스


1937년 독일 국민을 위해 저렴하고 가격과 뛰어난 성능을 겸비한 자동차를 만들라는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독일어로 '국민차(volkswagen)'라는 의미로 설립된 폴크스바겐은 폴크스바겐, 아우디,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포르셰 등 12개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로 성장했다.

일본 도요타와 함께 세계 1위를 놓고 다투는 폴크스바겐이 배출가스를 조작하는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리자 전 세계 자동차 업체는 거센 후폭풍을 우려하며 초긴장 상태다. 뛰어난 성능과 안전한 자동차로 명성이 높은 폴크스바겐이 이 같은 무리수를 둔 것은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폴크스바겐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공략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주유소 휘발유가 리터당 700원 수준으로 저렴한 미국에서는 디젤 엔진이 강점인 폴크스바겐이 유독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미국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메이커를 따라잡기 위해 새롭게 개발한 친환경 디젤 엔진을 내세웠다. 가솔린 엔진만큼 출력이 좋으면서도 기름을 적게 쓰고 배출가스도 깨끗하다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의 디젤 차량이 EPA의 환경 규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장착하자 출력이 떨어지고 기름도 많이 들자, 테스트 주행할 때만 배출가스를 저감하고, 평소 주행할 때는 저감 장치가 꺼지도록 하는 특별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눈속임'을 한 것이다.

바퀴만 움직일 때는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켜지고, 평소 주행할 때처럼 핸들(조향장치)이 함께 움직이면 저감장치가 자동으로 꺼지는 방식이다. EPA는 폴크스바겐이 테스트 주행에서 배출가스를 조작해 유해물질 배출량을 평소 주행보다 40분의 1로 줄였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폴크스바겐은 최근 수년간 미국 시장 판매량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최근 EPA로부터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모든 것이 수포가 되고, 독일 최고 자동차 업체의 위상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폴크스바겐 스캔들, '기술 강국' 독일에 먹칠?

이번 사태로 폴크스바겐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와 비난에 직면했다. EPA 조사 결과에 따라 폴스크바겐은 최대 180억 달러(약 21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벌금이 전부가 아니다. 폴크스바겐 주가는 21일 전날 대비 18.6% 떨어지며 7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불과 하루 만에 시가총액 가운데 141억 유로(약 18조5천억 원)이 사라진 것이다. 22일에도 폴크스바겐 주가는 14.95% 하락하며 이틀 연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슈피겔>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이번 사태를 대비해 3분기 기준으로 65억 유로(약 8조6천억 원)를 유보해 뒀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태 추이에 따라 소비자와 주주로부터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크고, 폴크스바겐의 브랜드 가치 추락과 판매량 급감에 따른 유·무형적 손실은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사태는 폴크스바겐을 넘어 독일 자동차 업체, 기술력과 신뢰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독일 제조업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독일 자동차 업체 메르세데스 벤츠의 지주회사 다임러와 BMW의 주가도 동반 하락한 것이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의 복잡성과 심각성을 고려할 때 철저하고 투명한 진상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폴크스바겐은 완전한 투명성을 통해 이번 사태를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 6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오는 2100년까지 화석연료 시대를 끝낼 것이라고 발표하며 독일의 강력한 환경 보호 정책을 내세웠던 메르켈 총리로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하지만 사태의 파장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도 자국에서 판매된 폴크스바겐 차량의 특별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더 나아가 유럽연합(EU) 차원의 대대적인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일단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폴크스바겐이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미국과 독일 정부도 조사에 나섰다"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EU가 폴크스바겐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하고 특별한 조치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EU 집행위원회는 "폴크스바겐과 독일 정부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규정을 더욱 개선하고 강화한 새로운 배출가스 시험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라고 밝혀 자동차 환경 오염 규제 방식의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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