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숙이고 '하사품 강탈'? 사대외교의 진실
[서평]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
▲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 책표지. ⓒ 소라주
7대 세조가 애초 받은 묘호는 신종? 세자시절에만 얌전했다는 예종이 세조로 추승했다? 성종은 사사건건 신하들의 잔소리를 들었고, 그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뜻을 굽혀야 할 때가 많았다? 애초 선종이란 묘호를 받았던 선조, 어떻게 '조'자가 들어간 묘호를 받았을까? 중국에서 출발한 과거제도, 서양의 오늘날 시험제도 혹은 수행평가의 롤 모델이 되다?
유약한 왕으로만 알려진 정종, 실은 21년간 이성계를 도와 전장에 나갔던 용감무쌍한 무인이다? 이성계에 원한을 품은 두 사람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역적의 자손이 건국한 나라가 된 조선의 정통성 회복을 위해 200년 넘게 왜곡의 기록과 싸우다? 태종 때 코끼리를 유배하다? 출산 휴가를 100일이나 준 왕이 있었다?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소라주 펴냄), 그 대략의 내용이다. 이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역사책이란 지레짐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책은 조선 건국 전인 고려 말부터 제14대 선조 승하까지, 왕을 중심으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조선의 역사와 문화, 풍습 등을 들려준다.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대외교'의 실상
많은 사람들이 조공을 일방적으로 퍼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조공품을 받은 황제는 그에 상응하는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품을 하사해야만 했습니다. 이건 유교적인 자존심 문제지요. 때문에 통념과는 달리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고려는 송나라에 조공을 할 때 미리 하사품 목록을 적어올 정도로 악착같이 이득을 취하려고 했지요. 솔직히 말해 강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당시 송나라가 거란 세력에 눌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송나라의 정치가 소동파가 "맥적(고려를 낮춰 부르는 말)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 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에서.
책을 통해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위에 인용한 조선의 사대외교와, 중국과 200여 년에 걸쳐 싸워 결국 이겼다는 외교 분쟁, 종계변무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조선이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나라라고 알고 있었던 터라, 저자의 '강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실속을 챙긴 고려의 하사품 목록이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사대는 과연 약소국에게 불리하기만 했을까? 책에 의하면 조선은 한 술 더 떠, 명나라가 3년에 한 번만 오라는데도 1년에 세 번 가겠다고 주장할 정도로, 중국 진시황 때부터 시작된 중국과의 사대외교로 많은 실속들을 챙겼다고 한다. 심지어 함경도 관찰사가 명나라 사신의 조공요구를 거절하기도 할 정도로 중국이 강할 때는 수그리고, 중국이 약할 때는 배짱부리는 식의 사대외교로 실리를 취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대외교가 언제나 유리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명나라의 흥무제나 영락제, 선덕제 등처럼 엄청난 양의 조공을 요구하거나 처녀들을 요구해 조선을 파탄과 비탄에 빠지게 한 중국의 황제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일제식민사관의 영향"
그런데 분명한 것은 고구려나 발해도 조공을 바치거나 당나라의 책봉을 받는 형태로, 그리고 한때 중앙아시아의 '깡패'였던 티무르 제국도 스스로 조공을 바치거나 신하국임을 자처하며 중국을 사대의 예로 섬기는 등 중국 주변의 수많은 나라들이 사대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사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일제식민사관의 영향이 큽니다. 식민사학자들은 조선후기의 타락한 모습을 한국사 전반의 특징으로 규정하고 한국사 전체가 중국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는 '타율성론'을 주장했지요.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인 다카하시 도루는 3ˑ1운동으로 중국 사대주의에서 미국 사대주의로 전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고요.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며 추구한 것이 노골적인 아시아 배척과 열성적인 유렵열강 모방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결코 일본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요. 거기다가 일본은 나라 시대나 헤이안 시대 때 견수사나 견당사를 보내며 명백하게 중국의 신하임을 자처했고, 이런 과정에서 신라의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중국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다만 섬나라의 특성상 낙후된 항해술로는 지속적인 조공 외교를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즉, 일본은 사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에서.
그럼에도 왜 조선만 유독 오늘날 우리에게 사대주의가 팽배한 나라로 부각되었을까? 출간 당시 36만 독자가 소식을 받았다는 카카오스토리 채널(SNS) '5분 한국사'에 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엮었다는 책은 사대의 다양한 면을 들려줌으로써 사대외교, 그 진실을 알게 한다.
필자도 '5분 한국사' 36만 독자 그중 한 사람이다. '5분 한국사'를 구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어느 날.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 책을 펼쳐 읽을 수 없을 때마다 읽곤 했다가 지난 5월부턴 '관심친구'로 등록해두고 글을 올렸다는 알림이 뜨자마자 찾아 읽곤 했다. 조선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줘 역사 상식을 쌓는 즐거움이 컸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대중들은 그 어떤 왕조보다 조선 왕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내용들이 상당한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된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런 역사적 사실들이 통념으로 자리 잡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그리고 '역사는 외우는 것 밖에 답이 없다'는 식의 잘못된 교육과 인식으로 역사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이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를 쉽고 바르게 알게 하고자 카카오스토리 채널 '5분 한국사'를 시작했다고.
묘호와 사대외교, 종계변무 편만 읽어도 저자의 이 말에 공감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묘호에 대해서 그간 참 많은 책들이 상식처럼 다뤘는지라 어지간히 읽었고, 그래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존의 책들에서 접하지 못한 사실들을 접했기 때문이다. 때문일까.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이 정말 많은 것들을 다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시대별로 들려주기 때문에 역사의 줄기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유 없이 36만 독자일까. 이런 이 책의 균형 있는 시각의 역사를 접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조선의 왕 이야기·상>(박문국) | 소라주 | 2015-09-07 | 1만 3800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