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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눈물 "나 죽으면 저 놈 어떻게 하나요?"

[소년의 눈물 12화] 증오심 녹이는 실패한 사랑, 미혼모 돕는 따뜻한 손길들

등록|2015.09.30 13:16 수정|2015.09.30 14:04

▲ 서대문형무소. 담장보다 높고 막막한 것은 버려진 인생입니다. ⓒ 조호진




※ 기사에 등장하는 소년소녀와 아기 이름은 가명입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 18일, <소년의 눈물>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한 연쇄방화범 소년을 면회하러 서울 남부교도소에 다녀왔습니다. 그새 스물한 살 청년이 됐습니다. 원호(가명)는 2012년 방화사건 이후에도 보호관찰법 위반과 자동차 절도, 오토바이 절도 등으로 소년원과 구치소를 드나들었습니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는 비행(飛行)하지 못합니다. 날개가 꺾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행(非行) 소년이 됩니다. 날개 꺾인 원호는 초등학생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열네 살부터 가출과 노숙생활을 시작했고, 술값을 벌기 위해 앵벌이하다 알코올에 중독됐습니다. 술에 취하면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는 원호를 어떻게 하면 치유하고, 살릴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3하10 ××××

원호의 수인번호입니다. 원호 면회는 주변의 도움으로 특별면회를 했습니다. 1평 남짓의 좁은 공간과 유리에 가로 막힌 일반면회와 달리 특별면회는 넉넉한 공간에서 손도 잡고 눈빛도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원호와의 인연이 4년째입니다. 그래서인지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어도 가만히 있습니다. 안아줄 때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안겼습니다.

무정한 사회가 양산한 '사회적 자폐증', 기다리겠습니다

▲ 2012년 겨울, 6호처분 받은 원호가 생활하던 대전효광원에 면회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면회에 동행한 김민하, 원호, 조호진, 원호 할아버지. ⓒ 조호진


동물은 버려져도 생존하지만 사람은 돌봄과 양육을 통해 성장합니다. 양육과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사회적 자폐증'을 앓습니다. 이 자폐증은 상호 교감과 관계 형성에 실패하는 병입니다. 이 병은 무정(無情)한 사회가 양산한 사회적 질병인데도 우리 사회는 부적응자로 낙인찍고 책임은 회피합니다. 사회적 자폐증을 앓고 있는 원호에게 물었습니다.

- 안에서 뭐하고 지내니?
"봉투작업하고 소지(교도소 심부름꾼이란 뜻의 일본어)하면서 지내요!"

- 봉투작업?
"한 장 접으면 7원이에요."

- 언제 나오니?
"11월말 아니면 내년 1월에 나가요."

- 나오면 무엇 할 거니?
"공익 받아야 해요!"

뇌경색 환자인 원호 할아버지는 저를 보면 "내가 죽으면 저 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면서 눈물짓습니다. 원호의 유일한 보호자인 팔순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노인연금 20만 원에서 10만 원을 떼어내 영치금으로 넣어주거나 불편한 몸으로 면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면 제게 연락합니다.

원호 할아버지에게 원호를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술만 마시면 사고치고, 달아나고, 떠도는 병을 제가 무슨 재주로 고치겠습니까. 영혼이 헛헛한 원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참고, 기다리고, 안아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치금 넣어주고 안아주고 헤어졌습니다.

추석 쇠러 상경한 솜이네 "혼자 출산할 때 가장 서러웠어요"

▲ 추석을 쇠러 상경한 솜이네와 함께 추석 이틀 날, 덕수궁으로 행복 촬영하러 갔습니다. ⓒ 조호진


6화의 주인공 숙희(22)가 17개월 된 솜이를 안고 27일 추석에 귀경했습니다. 솜이는 한 동안 낯을 가렸습니다. 지난 2월 설을 같이 쇤 뒤에 4월에는 돌잔치, 5월에는 롯데월드에 함께 갔지만 4개월가량 못 봐서인지 낯설어 했습니다. 그리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아기 친화력 7단 정도 되거든요.

서울 오느라 피곤한 숙희와 음식 준비에 지친 아내는 점심상을 물린 뒤에 잠들었습니다. 솜이를 안고 집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아기 재우는 데는 옛날이야기와 노래가 최고, 섬집아기 등의 자장가가 많은데 하필이면 그 노래를 불렀는지 참내...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솜이는 옛날노래 '유정천리'를 들으며 제 품에서 잠들었습니다.

슈퍼문이 남산 위에 떴습니다. 아내와 숙희, 솜이를 데리고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태워주겠다고 했더니 숙희가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남산타워 일대는 자동차와 인파로 혼잡을 이루었습니다. 한강시민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솜이를 한강고수부지에 풀어 놓자 아기 다람쥐로 변했습니다. 넘어질 듯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넘어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달음박질하는 아기 다람쥐.

숙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장 서러웠을 때가 언제냐고 묻자 "아기를 낳으러 산부인과에 혼자 갔을 때"라고 했습니다. 어린데도 아기를 잘 키우는 것 같다고 하자 "보육원에서 지내던 중학생 때부터 보육원 아기들을 돌봤다"고 했고 "모르는 육아정보는 인터넷에서 얻는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이 똑똑하긴 하지만 엄마처럼 애틋한 정까진 주지 못 하잖아?"라고 물었더니 "그건 그래요!"라며 서러움을 감추었습니다.

알바하다 잘리고, 일자리 찾아 전전하고... 숙희보다 한 살 연하인 솜이 아빠는 공장에 취직했답니다. 야근 등 잔업수당까지 합치면 200만 원 남짓 번답니다. 한숨 돌렸답니다. 적금도 들었답니다. 소년원 출원생인 남동생 민철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답니다. 밀린 벌금을 완납했으니 이젠 수배자가 아니랍니다. 조카 솜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등 삼촌노릇을 제법 한답니다. 분유와 쌀이 떨어져 동동 거리던 솜이네에게 작은 사랑을 나누었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로망인 가족의 고궁 나들이, 한복 입은 솜이와 찾은 덕수궁

▲ 한복에 걸려 넘어진 솜이가 짜증을 부리고 있습니다. ⓒ 조호진


한복 차려 입은 가족의 고궁 나들이는 숙희의 로망입니다. 해본 사람에겐 로망은커녕 귀찮은 일일 수 있지만 해보지 못한 사람, 해볼 수 없는 사람에겐 아득한 로망입니다. 그래서 솜이 한복을 챙겨 오라고 했습니다.

추석 다음날, 솜이에게 한복을 입혀서 덕수궁에 갔습니다. 행복을 촬영하러 갔습니다. 저는 솜이네 전속 사진사입니다. 사진 찍을 때마다 청초한 소녀를 봅니다. 부모 잘 만났으면 소녀의 청초한 꿈을 키웠을 숙희... 숙희에겐 청초한 꿈보다 짙은 외로움이 더 많이 찍힙니다. 버려진 꽃에게서 풍기는 진한 외로움이 솜이에겐 유전되질 않기를 빕니다.

덕수궁 중화전과 준명전 등지에서 행복 화보 촬영을 마친 뒤에 함흥냉면과 왕만두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헤어질 시간입니다. 1박2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핏줄이면 그랬을까? 하루 더 쉬었다 가라고 했을 텐데... 헤어짐이 아쉬운 듯 손짓하는 솜이네에게 미안했습니다.

지난 설에 이어 추석에도 시골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솜이네 뿐 아니라 미혼모 분유와 기저귀 등을 그러모으는 일이 추가됐습니다. 늙고 병든 노모는 한가위 보름달을 혼자 봤을 겁니다. 안양 장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여든 셋 장모님은 서운타고 하십니다. 좋은 일을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불효자입니다. 4개월간의 대장정 <소년의 눈물>을 마치면 두 분 어머니께 밀린 효도를 다해야겠습니다. 

글을 읽고 울고 또 울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깜짝 놀랐지?>라는 제목의 입체형 놀이책에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 조호진


"글을 읽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힘든 시기이지만 주변에 용바마와 같은
좋은 아빠가 계시니 용기 잃지 마시고 멋지게 이겨내세요.
아직은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걸 잊지 마시고요."


소년의 눈물 11화, 소년원 출신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읽은 엄마(유미)가 아기 책과 장난감을 보내면서 부친 쪽지 글입니다. 세상에 이런 분유가 다 있네요. 세상에 이런 기저귀는 처음 봅니다. 살다 살다 이런 책과 옷가지 선물을 처음 봅니다. 포근하고 따뜻한 이웃들 덕분에 올해 한가위 보름달은 두리둥실 떴습니다.

두 아들의 엄마인 분당 전수진님, 다음달 11일 결혼하는 초등학교 교사 복길연샘, 분유 끊을 때까지 한 아기를 후원하겠다는 이기백님, 기저귀 1박스와 분유 6통을 보내준 정승돈님, 분유 3통과 비오타민을 보내준 조규원님, 유모차를 보내주기로 한 전남 광주의 황정원님, 딸 두 명을 키운다는 핸드폰 끝 번호 3549님,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매월 3만 원을 돕겠다는 5998님, 친구 아기(한지용) 이름으로 기부한 2520님, 분유 값을 후원한 정재훈님, 전미정님, 김희정님, 심이성님, 이봉주님, 정찬용님, 현명숙님, 채사병님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9월 25일,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사무실에 30대 남성 두 분이 카트에 분유 16박스(1박스에 분유 3통)를 싣고 왔습니다. 후원자의 이름을 물었더니 사장님이 익명으로 전달하라고 했다며 함구했습니다. 사장님이 IT업체를 운영하는 아기 아빠라는 정도만 귀띔해주었습니다. 생색낼 일이 아니라면서 분유를 매달 돕고 싶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밝혔습니다.

이밖에 법무부 소년담당 사무관인 용바마를 통해 용바마의 지인이 700만 원, KT&G직원모임이 300만 원을 미혼모 분유 값으로 후원하기로 했답니다. 정식품에선 이유식을 매월 80박스 후원하기로 했답니다. 용바마는 이렇게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과 '(재)한국소년보호협회 사회정착기금 통장'으로 분유와 기저귀, 후원금을 보내주셔서 아이들에게 귀한 선물을 할 수 있는 행복한 한가위가 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천사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실패하겠지만, 증오심을 녹일 것입니다

▲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사무실에 미혼모 돕기 분유와 기저귀, 동화책, 장난감, 옷가지 등이 도착했습니다. ⓒ 조호진


막장 인생을 끝내려고 합니다. 혼자 죽긴 억울합니다. 버린 부모와 짓밟은 세상에 복수하고 싶습니다. 휘발유 통을 들고 방화 장소를 찾고, 누군가 찌르기 위해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누군가 납치하기 위해 범행 계획을 세웁니다. 인생 끝장을 앞두고 최후의 필름을 돌리는데 눈물이 솟구칩니다. 버려진 자신을 안아주고, 용서해주고, 눈물을 닦아준 사람들...

"그분들은 나를 사랑했었어. 내가 그렇게 잘못해도 용서해주고 기다려주었는데 박차고 뛰쳐나와서 시궁창 인생을 살다 이렇게 됐어. 그래 나도 사랑받은 적이 있었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최후의 선택...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적이 있으므로 증오의 라이터 불은 꺼지고, 누군가 찌르려던 칼자루를 버리게 되고, 누군가 납치하려던 계획은 중단될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은 적 없는 범죄자의 성공한 범행은 뉴스에 보도되고, 범죄통계에 기록되지만 누군가의 실패한 사랑 때문에 미수에 그친 범죄는 뉴스와 통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닦아준 소년의 눈물이 실패한 증오 범죄의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나눠준 분유와 기저귀, 책과 옷에 담긴 작은 사랑이 아이를 미혼모 엄마 품에서 자라게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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