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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까지 차고 넘친 아산 신정호

[여행] 산자수명의 절경 아산 신정호를 찾다

등록|2015.09.30 11:36 수정|2015.09.30 11:36

▲ 신정호의 풍경 ⓒ 홍경석


나고 자란 고향 천안을 떠나 아산(온양온천)으로 간 건 10대 말 즈음이다. 숙부님께서 호텔 사업을 시작하시면서 지배인으로 간 것이다. 당시나 지금 역시도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까닭에 툭하면 신정호(마산 저수지)를 찾았다.

그리곤 친구와 함께 드넓은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신정호를 바라보면서 술을 마셨다. 그러노라면 그림 같은 절경(?景)이 마음속으로 성큼 들어오면서 답답했던 마음마저 탁 풀렸다. 아울러 용서하기 힘들었던 이들에 대한 관용까지 허락하는 힘까지 부여했다.

하지만 그동안엔 뭐가 그리도 바빴던지 당최 신정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제 숙모님의 기일을 맞아 다시 아산을 찾았다. 제사를 지낸 후 1박하고 숙부님의 차에 올라 신정호를 찾았다.

40년 만에 찾아도 힐링이 되는 이곳


숙모님의 타계 이후 날마다 탁 트인 신정호라도 찾지 않으면 마음을 정박하기 어렵다는 숙부님의 안타까움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거의 40년 만에 다시 찾은 신정호는 주변 경관마저 훌륭하게 가꿔져 있어 산책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힐링(healing)의 여지까지 차고 넘쳤다.

과거부터 신정호의 물 위엔 근사한 집을 지어 '수정궁'이란 간판으로 술과 음식을 팔았었다. 한데 그 건물이 여전하여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물안개로 피어올랐다.

"작은아버지, 저 '수정궁'의 예전 사장님이 작은아버지 친구 분이시죠?"
"맞어, 저걸 운영할 당시 돈을 그야말로 가마니로 쓸어 담았지. 지금은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볼 수 없지만…."

늙을수록 더욱 필요한 게 경제적 여유와 막역한 친구이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어렵사리 살아오면서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삶의 짐을 살짝 풀어놓고 여유롭게 친구를 만나 술 한 잔에 속을 나누고 정까지 나누면서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외국으로 여행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많다는 건 분명 더욱 빛나는 삶이 될 터이니까.

또한, 대저 술이란 건 신정호처럼 풍광까지 근사한 곳에서 절친한 친구와 술잔을 나눠야 비로소 잘 마셨다는 평가를 듣는 법이다. 그런데도 '수정궁'의 전성기 시절에도 그곳을 감히 찾지 못했던 까닭은 그 시설물의 업주가 숙부님의 친구분이셨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이 있기로서니 친구의 조카 되는 놈이 와서 기고만장하게 술을 마신다면 단박 눈에 띄게 건방져 보일 거라는 자격지심이 발동한 때문이었기에 나는 신정호의 물가에서만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신정호를 나와 숙부님께 작별인사를 드린 후 온양온천의 구 번화가를 거쳐 온양온천역으로 나왔다. 과거 낭창낭창하게 번창했던 커다란 중국집과 나이트클럽 등은 하지만 진즉 간판마저 바꿔 달고 생소한 제목으로 나를 대하고 있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아 적이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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