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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여론조사 만능론인가?

[이슈분석] 김무성-청와대 설전, 왜?... 정당 자율권 침해 지적도

등록|2015.10.02 09:56 수정|2015.10.02 09:56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9월 30일 여야 대표가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 활용 국민공천제'를 청와대 관계자가 조목조목 비판한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여당 대표를 모욕하면 되겠느냐, 오늘까지만 참겠다"고 경고했다. ⓒ 남소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의 법제화를 놓고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하려는 청와대와 이를 차단하려는 김무성 대표의 대결이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이 포함된 정부여당의 권력 실세들의 다툼에 다소 가려져 있지만,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혁신위원회가 제기한 이 제도를 놓고 언제든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안심번호 국민공천'이 어떤 제도인지, 그 효과는 무엇인지, 문제점은 없는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번 양당 대표의 합의는 그동안 각 정당이 '각자 알아서' 해오던 공천방식을 법률적으로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 그동안 한국정치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때문에 권력 투쟁 이면에 숨어 있는 제도의 본질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은 결국 오픈프라이머리

김무성 대표는 지난 9월 2일 내년 총선 룰과 관련해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라고 선언했다. 그 정도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큰 힘을 쏟았다. 새누리당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라는 현수막을 전국 곳곳에 걸었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야당에 맞불을 놓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당대표 합의가 결국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실패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평가다.

오픈프라이머리는 말 그대로 정당의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예비선거(프라이머리)를 일반 대중에게까지 개방(오픈)한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일부 주가 당 후보 선출에 당원뿐 아니라 무소속 유권자나 다른 정당 가입자에게도 투표할 수 있는 자격을 개방한 것에서 시작됐다. 보통 미국에서 시행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시민들이 투표소에서 직접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김 대표가 처음 주장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꼭 그것만이 오픈프라이머리라고는 할 수 없다. 미국식 전면적인 오픈프라이머리는 아니더라도 사실 한국정치는 그동안 여야 할 것 없이 일정하게 오픈프라이머리 요소를 공천에 가미해 왔다. 여론조사를 경선에 반영하는 것도 그러하다. '오픈'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안심번호 국민공천' 역시 휴대전화 투표로 이뤄지는 오픈프라이머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전에 투표를 하겠다고 신청한 유권자들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되는 방식이라면 오픈프라이머리라고 부르기 어렵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혁신위원회가 제시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각 지역구별로 300명에서 1000명 가량의 선거인단을 모집해 실시하는 것이다. 그 경우 오픈프라이머리의 성격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런 방식을 '클로즈드 프라이머리(Closed primary)'라고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사전에 선거인단을 정하지 않고, 각 선거구별로 1만 명에서 3만 명까지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오픈프라이머리의 성격이 강화되지만 실시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민공천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당의 국고보조금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예산이 아닌 후보자 개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김무성 대표는 지난 9월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자는 취지에서 당론으로 채택한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의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한 방안으로 새로운 안을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이 계속 오픈프라이머리를 할 수 있다고 해 문 대표와 만나겠다고 예고했고, 추석 연휴 중에 만나 협의를 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양당 대표의 합의가 어찌됐던 '오픈프라이머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치개혁이라며 없앤 지구당은 왜 다시 등장했나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9월 28일 낮 부산 롯데호텔에서 전격적으로 만났다. 추석을 맞아 부산을 찾은 두 대표가 총선과 관련한 오찬회동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끊임없이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고, 곧 제도화까지 눈앞에까지 두게 된 것은 그동안 각 정당이 해온 공천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천헌금, 계파갈등, 부정경선, 금품선거, 당원동원 등 공천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조리가 '하향식 공천제도'의 부작용으로 지적돼 왔다. 하향식 공천제도는 과거 '총재'의 권한을 가진 당 대표가 자신의 의지대로 공천권을 휘두른 것을 말한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는 대안이라는 게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다. 그러나 오픈프라이머리 역시 문제점이 있다. 특히 현역 정치인과 정치 신인이 경쟁할 경우 인지도에서 앞서는 현역 정치인이 유리하다는 점이 크게 지적받는다. 또 지지정당과 관계없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상대 당의 약한 후보를 뽑는 '역선택'의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이 제도가 현재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맞는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2004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정치개혁' 논의가 이뤄졌다. 지금은 공천제도가 도마에 올랐다면 그 당시에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으로 '돈 안 쓰는 정치'가 화두였다. 정치인으로 변신하기 전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변호사 시절 제기한 지구당 폐지(정당법 개정)와 정치자금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서도 이러한 정치개혁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한나라당도 찬성하면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지구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때다. 지구당이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며 소위 '돈 먹는 하마'라는 지적과 온갖 청탁을 비롯한 부정부패가 지구당을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구당이 또 하나의 기득권 권력으로 지역에 자리 잡는 것도 문제였다. 여론은 지구당을 폐지하자는 쪽으로 기울었고 현실이 됐다.

그 결과 정치권의 '검은 돈'은 줄어든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지구당 폐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개정의 영향이 더 컸다.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선거자금도 득표율에 따라 환급되면서 자금운용이 투명해졌다. 하지만 지구당 폐지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정당의 지역 기반을 약화 시킨 것이다. 주민들과 정당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하던 진보정당은 직격탄을 맞았다.

결과적으로 '지구당 폐지'는 실패한 '정치개혁' 사례로 꼽힌다.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치후퇴'라는 것이다. 지난 2월 중앙선관위가 '지구당 부활' 의견을 국회에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다수 학자들 역시 "지구당이 문제라면 운영 부분을 규제했어야지 폐지한 건 옳지 않았다"(강원택 서울대 교수)라며 "법적 조직으로 부활해 지구당이 사용하는 정치자금을 선관위가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조성조 한신대 교수)라고 말한다.

"정치를 테크놀로지에 맡기는 최악의 제도"

이번 양당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의 제도화가 지구당 폐지와 같은 '정치 후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휴대폰 프라이머리 도입은 민주적 정당활동을 여론조사로 대체하려는 발상"이라며 "휴대폰 프라이머리가 도입된다면 과거 잘못된 정치개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지구당 폐지' 2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놀고 먹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당의 공천제도를 법제화 하는 것 자체가 위헌의 요소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태곤 의제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양당 대표의 합의가 실제로 법제화가 된다면 정당의 자율권 침해라는 점에서 위헌의 요소가 있다"라며 "당장 정의당에게 오픈프라이머리를 강제할 수 있을까? 만약 신당이 창당한다면 그 정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진행할 여건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윤 실장은 또 "지금 논의되는 것은, 유권자가 찾아오는 방식(인바운드)이 아니라 정당이 전화를 걸어 찾아가는 방식(아웃바운드)이다, 그것은 여론조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의 정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이 될 것인지 지지자 중심의 정당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지금은 두 가지 요소를 섞어 놓고 있다. 하향식 공천이 문제라면 의원과 당 대표의 특권을 배제하고 당원을 강화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박상훈 정치학 박사는 "정치를 테크놀로지에 맡기는 최악의 제도"라고 비판했다. 박 박사는 "'안심번호를 도입해 국민에게 공천권을 준다'는 말 자체가 기술적으로 완벽한 방법인 것처럼 이야기 되고 있는데, 이것은 민주주의를 테크놀로지에 매달리게 하는 행위"라며 "이런 식이면 계파도, 정당도, 정치에 관련된 어떤 조직도 필요 없고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여론조사로 뽑으면 된다, 결과적으로 전체주의와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향식 공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국민에게 맡기는 것만이 상향식이 아니다"라며 "그 당에서 교육도 받고 성장하고 신뢰를 받게 된 좋은 사람이 후보가 돼서 국회의원도 되고 정부도 이끌게 되는 게 민주주의의 상향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하면 상향식이고 당원이 하면 상향식이 아니라는 건 황당한 주장"이라며 "그 과정을 정당이 책임지고 국민은 어느 정당이 올바르게 했는지 선택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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