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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바안>과 <비거 스플래쉬> : 음악으로 거듭나기

[BIFF 리뷰] 인도영화의 힘, 그리고 매혹적인 이야기꾼의 결합

등록|2015.10.02 22:49 수정|2015.10.02 22:49

'주바안' 주인공들, "개막작 선정 감사합니다"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주바안> 기자회견에서 모제즈 싱 감독(사진 왼쪽부터)과 배우 사라 제인 디아스, 비키 카우샬, 라가브 차나나, 샤안 비아스 프로듀서, 야슈토시 파탁 음악감독, 구니트 몽가 프로듀서가 포토타임을 마친 뒤 두손을 모으며 감사를 표시하고 있다. 개막작인 <주바안>은 인도에서 능력 있는 독립영화제작자로 주목 받는 모제즈 상 감독 데뷔작이며 인도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구니트 몽기가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삶의 진정한 가치와 자아를 찾아나서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뤘다. ⓒ 유성호


부산 국제영화제 찾은 <비거 스플래쉬> 주역들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영화 <비거 스플래쉬> 기자간담회에서 감독 루쿠 구아다니노(왼쪽부터)와 배우 틸다 스윈튼, 편집감독 월터 파사노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올해 부산을 찾는 관객이라면 영화 <주바안>과 <비거 스플래쉬>를 지나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틸다 스윈튼이 전면에 나선 작품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위 요소를 제외한다면 일반 관객 입장에선 다소 낯설 수 있다. <주바안>이 할리우드에 비견해 인도 거대 영화 산업의 맥을 잇는 볼리우드 영화라지만, 우리 관객과 정서적 거리는 멀다. 탄탄한 이야기와 캐릭터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영화 중간마다 춤과 노래가 등장하는 인도 영화는 분명 선택지에서 빠지기 일쑤였다.

<비거 스플래쉬>도 마찬가지다. 베니스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세계가 인정했다고 하지만, 이야기 구조보다는 우연성에 기대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업 방식은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다.

1일과 2일 각각 언론 시사를 통해 첫 공개된 두 작품의 평가 또한 그래서 엇갈린다.

[주바안] 막장 속에 숨겨진 신과의 대화

▲ 영화 <주바안>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먼저 <주바안>. 유년 시절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더듬게 된 딜셰르(비키 카우샬 분)는 성공을 꿈꾸며 고향을 등진다. 대도시에서 거대 자본가의 비호를 받으며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삶에 접근한 것 같지만, 정작 마음은 공허하다. 자신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이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자신을 신뢰하는 자본가의 능력을 믿고 직진할 것인가, 불안한 외줄타기를 그만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에 딜셰르는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행복을 향해 달려 나간다.

겉으로 보면 <주바안>은 국내 아침드라마에서 쉽게 볼 법한 '막장 코드'를 갖고 있다. 딜셰르를 시기하는 자본가의 아들이 실은 친자가 아니라는 설정, 그에게 거친 폭력과 음해를 일삼는 주변 인물들. 흔히 말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전형이다. 제3세계 영화에서 무언가 환기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하기 딱 좋다.

혼란에 빠진 딜셰르를 구원한 건 종교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노래였다. 동시에 영화의 호오를 고민할 관객들을 구원할만한 것도 역시 음악이다. 흔히 인도 영화의 특징을 설명하는 단어인 '마살라 영화'(Masala Movie, 춤과 노래 등 다양한 요소가 담긴 영화. 여러 재료가 섞인 인도 향신료를 빗댄 말-기자 주)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제작자인 구니트 몽가, 샤안 비아즈 PD는 탈 마살라를 주창하며 이야기의 설득력을 강조해온 신세대 영화인들이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닌 내용이다. 전통 인도 음악에 일렉트로니카를 가미한 영화 음악과 전통 인도 군무에 현대 무용을 덧댄 춤은 다소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매력적으로 바꿔놓기 충분하다. 자아를 찾아가는 딜셰르를 쫓다보면 어느새 현재 인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음악과 춤의 경향을 가늠하게 된다.

참, 영화 제목의 의미? 주인공 이름도 아니고 어떤 지명도 아니다. 목소리, 혀, 의사소통 등 여러 의미를 가진 단어가 '주바안'이다. 제목 자체가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비거 스플래쉬] 엉킨 인간관계? 문제는 록음악이야!

▲ 영화 <비거 스플래쉬>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제목


그에 비해 <비거 스플래쉬>는 보다 퇴폐적이다. 록스타 마리안(틸다 스윈튼 분)과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분)이 지중해로 휴가를 떠났지만, 우연을 가장한 채 이들에게 다가온 마리안의 옛 연인 해리(랄프 파인즈 분)와 그의 딸(다코타 존슨 분)이 망쳐놓는다.

우정이 된 사랑, 그리고 은연중에 남편에게 접근하는 어린 소녀. 충분히 막장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사건의 흐름은 대부분이 예상한 대로다. 마약과 떼어놓을 수 없는 록, 정부와 부적절한 관계 등이 영화 전반에 흐르며 관객들의 전두엽을 자극한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능력이 돋보이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예상 가능한 이야기를 각 인물의 시점으로 분할해놓고 관객으로 하여금 추리하게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유혹하는 소녀는 있지만 남녀가 관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를 100프로 신뢰하는 모습을 묘사하다가도 뱀과 파리, 무덤 등 상징적인 장면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일말의 불안감이 들게 해놓았다.

영리한 전략을 감추는 건 훌륭한 영화 음악이다. 롤링 스톤즈의 대표곡이라든가 그간 여러 영화에 쓰여왔던 해리 닐슨의 '점프 인투더 파이어(jump into the fire)'를 변주해 혼을 빼놓는다.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음악과 관련한 직업을 가졌다는 점도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인다.

주제는 서로 다르지만 <주바안>과 <비거 스플래쉬>가 갖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바로 음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노렸다는 점.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크다. 이 또한 부산영화제만의 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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