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 타고 부산영화제 찾은 김꽃비, 여배우 맞아?
[BIFF 인터뷰] <똥파리> 속 거침없는 여고생, <호텔룸>에서 사랑과 욕망을 표현하다
▲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지 2년. 이젠 가고 싶은 국내 여행지는 대부분 바이크로 소화하는 김꽃비다. 심지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초청을 받은 그는 2일간 바이크를 타고 부산을 찾았다. 촬영을 위해 입고 있던 드레스를 벗고 바이크복을 입고 나왔다. ⓒ 유성호
배우 김꽃비에게는 '실력파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린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이 여배우를 두고 많은 이들은 영화 <똥파리>(2008) 속 거침없는 여고생 연희로만 기억할 법하다. 그 이후로도 스무 편 넘게 단·장편 영화를 찍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부터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작품을 들고 꾸준히 이곳을 찾았다.
올해 싱가포르 출신 에릭 쿠 감독의 영화 <호텔룸>을 통해 김꽃비에 대한 기억을 갱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침 영화제 관련 행사에 참여한 직후인 지난 5일 김꽃비를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야외로 나가니 그의 바이크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SNS상에서 김꽃비의 별칭은 '바이크 전도사'. "영화제에 참석하려고 이틀간 바이크를 몰고 왔다. 돌아갈 때도 타고 갈 거다"라며 웃던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이틀간 바이크 타고 부산으로 가져온 19금 작품
▲ 티셔츠 앞뒤로 적힌 수상한 문구. 한 팬이 김꽃비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이 문구는 영화 <매드 맥스>의 눅스가 던진 대사를 패러디 한 것이다. 본래 대사는 "임모탄(공동체 지도자이자 절대자로 추앙받는 인물)님이 날 보셨어!"다. ⓒ 유성호
▲ 영화 <호텔룸>은 부산국제영화제 자막팀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한 작품이기도 하다. ⓒ 봉주영
이 반응에 그가 자신의 전작을 읊어준다. "오히려 영화 <창피해>(2010)라는 작품이 성적 코드가 더 강하지 않았나"며 "성적 요소를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일단 등장인물의 복잡한 심리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104분 분량의 작품에서 김꽃비는 최우식과 함께 영화 중후반부에 등장한다. 연인과 친구 사이에서 헷갈려 하는 두 남녀가 함께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유쾌하게 들여다본다는 설정이다. "남녀가 정말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 등을 생각하며 준비했다"고 그가 설명했다.
"성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다룬 건데, 성을 좋아한다고 나쁜 건 아니잖나. 해외 감독님과의 작업도 처음은 아니기에 그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다만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한국말로 대화해도 의도가 잘 전달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외국어는 오죽할까. 반대로 말이 안 통해도 뜻이 파악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작업이란 게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 과정이라 그렇다. 영화라는 공용어를 쓰는 셈이지.
대본이 본래 영어였고, 이후 한국어로 된 걸 받았는데 번역체라 좀 어색하더라. 상황에 맞는 자연스런 대사나 반응, 행동 등이 다 각본에서 나오는 건데 그게 걸렸다. 대본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우식씨와 고쳐보겠다며 종종 만나 연습했다. 덕분에 JYP 사무실(최우식의 소속사)도 가보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만기일 앞둔 적금들
▲ 영화 <호텔룸>에서 김꽃비는 애인과의 이별을 잊고자 동성 친구와 함께 싱가포르로 여행 온 한 여성을 연기했다. 이성을 대하는 태도와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나름 여러 고민을 했다고 한다. 썸남썸녀 사이에 흔히 하는 말. "친구로서 널 잃고 싶지 않아"에 담긴 속 마음은 "널 좋아하지 않아"일까. 긴 분량은 아니지만 <호텔룸>엔 두 남녀의 엇갈리는 심리가 담겨있었다. ⓒ 유성호
<호텔룸> 말고도 영화 <거짓말>, 단편 <4학년 보경이> 등이 공식 극장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근 1~2년 전에 찍은 것들이다. "작품을 찍어놓으면 좀 늦게 개봉되는 징크스"가 있단다. 마치 적금을 들어놓고 만기를 기다리는 심정이겠다고 하니 크게 웃는다. 이중 <거짓말>이 오는 10월 29일 개봉을 확정한 상황이다.
"이후 작품 행보에 대해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이미 찍어 놓은 걸 말해야 할지, 지금 찍고 있는 걸 말해야 할지 헷갈린다. 일단 지금 찍고 있는 작품은 있다. <츠모구모노>라고 화지(한국의 한지 같은 종이)를 만드는 장인과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만나 우정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이런 흐름에 특별히 조급함을 느끼진 않는다. 어릴 땐 훨씬 안 조급했는데 요즘은 가끔씩 '이렇게 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도 프리랜서인 만큼 일이 있을 땐 한없이 바쁘고, 없을 땐 한없이 쉬게 되더라. 아, 일본영화 말고 최근 < SBS스폐셜 >도 찍었다. 바이크를 타고 한 마을을 찾아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다. 10월 18일에 방송한다(웃음)."
▲ 김꽃비는 2011년 제17회 부산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한진중공업 해고자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작업복을 입고 등장했다. 또한 제주 강정마을을 응원하는 의미의 프래카드를 들었다. 여배우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파격적인 행보였다. 사진는 당시 모습이다. 맨 왼쪽이 김꽃비이고, 같이 들고 있는 사람은 김조광수 감독(가운데)과 여균동 감독(오른쪽)이다. ⓒ 오마이뉴스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에 비해 그가 조급함이 덜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봤다. 제빵, 수영, 요가, 그리고 바이크까지. 삶의 여백을 하고 싶어 하는 일로 충실하게 채우고 있어서가 아닐까. 바이크가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안전장구를 갖추고, 제대로 배운 채 시작한다면 위험하지 않다"며 "위험한 걸 위험하게 타놓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서 좀 억울하다"고 답했다. 그만큼 자신이 택한 활동에 애착이 큰 편이었다.
이어 지난 2011년 제16회 부산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 당시 작업복을 입고 한진중공업 해고자 및 제주 강정마을을 응원했던 걸 복기시켰다. "영화제 자리이기에 파급력도 있는 만큼 적절히 활용할 필요는 있다"는 그의 소신이 돌아왔다.
"사회 문제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탓할 것도 아니고, 참여한다고 우쭐거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과하면 물론 안되지만 시의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거지. 올해 개막식에 참여했다면(김꽃비는 개막식 다음날에 부산에 도착했다 - 기자 주) 세월호 퍼포먼스를 했을지도 모른다. 김의성 선배는 노란리본 배지를 달고 다니시더라.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충실한 편이다. 삶이 좀 풍요롭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배우라는 직업은 내 삶을 채우는 많은 것들 중 하나다. 재밌고 또 계속 잘해내고 싶지만, 그렇다고 이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배우라는 직업이 내 삶을 끌어내리려 하거나 고통을 준다면 좋아하지 않았겠지. 지금까진 삶을 즐겁게 해주는 것 중 하나다. 이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고. 만약 더이상 연기가 즐겁지 않다면 놓을 수 있다. 혹은 내가 더 이상 배우를 못하게 될 수도 있지. 놔야 할 때 못 놓는다면 그게 불행이지 않나."
자신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진지하면서도 담백하게 삶을 대하는 이 태도가 팬들로 하여금 더욱 김꽃비에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닌지. 톱스타는 아니라 할지라도 김꽃비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충성도가 꽤 높은 편이다.
이런 은근한 그의 매력이 뭔지 더 궁금해졌다고? 영화 <질투는 나의 힘>(김꽃비의 영화 데뷔작), <삼거리 극장>, <똥파리>부터 복습하자. 그리고 그의 SNS를 살펴보자. 불식간에 김꽃비에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촬영한 작품들이 대부분 1, 2년 뒤에 개봉하곤 한다던 그에게 '적금을 든 기분이겠다'니 환하게 웃는다. 2년전 찍은 영화 <거짓말>이 오는 10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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