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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뽑히는 개들, 용납해야 할까

공혈견 학대 논란... 해당 업체 "동물복지 위배한 적 없다"

등록|2015.10.10 20:35 수정|2015.10.11 17:44

▲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 사육환경. 개들이 비좁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어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 케어


'링컨 6-에코'라는 이름의 남성이 있다. 동료들과 함께 외부와 격리된 공간에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이 환경재앙으로 오염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링컨 6-에코와 동료들은 식사메뉴, 인간관계를 비롯하여 삶의 모든 요소를 통제받으며 살아간다.

링컨 6-에코가 이런 삶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아일랜드'에 가게 될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지구상에서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장소이다. 누구나 낙원과도 같은 이곳에 가기를 꿈꾼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링컨 6-에코는 아일랜드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는 아일랜드에 가기로 돼있는 동료가 수술실에서 장기를 적출당한 후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자신과 동료들이 복제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식할 장기·피부를 제공할 용도로 사육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영화 <아일랜드>의 이야기로서, 이 영화는 인류의 질병치료·수명연장을 위한 연구와 관련된 윤리 문제를 잘 그려냈다. 그런데 영화 속 복제인간과 같은 존재가 실제로 있다. 바로 '공혈견'이다. 복제인간이 장기·피부를 위해 사육되듯이, 공혈견은 혈액을 위해 사육된다.

'뜬장'에서 '잔반' 먹는 공혈견

▲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10월 1일,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 사육환경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 케어


공혈견이란 심각한 출혈이나 빈혈 등으로 수혈을 요하는 개에게 혈액을 공급해주는 개를 말한다. 자체 공혈견을 보유한 일부 대학동물병원과 개인 병원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개들을 위한 혈액은 한국동물혈액은행이라는 민간 기업이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지난 10월 1일,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축산 담당 공무원과 함께 강원도에 있는 이 업체에 대한 강제조사를 실시했고,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 충격적인 실태를 폭로했다. 

케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동물혈액은행에는 약 300마리의 공혈견이 이른바 '뜬장'이라고 하는, 바닥이 철망인 사육장에 살고 있었다. 바닥에는 나무판 하나 깔려있지 않아 발을 딛기가 불편해보였다.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물이 먹이로 제공됐고, 물그릇에는 녹조가 껴있었다.

일부 개들은 비좁은 사육장에서 뱅글뱅글 도는 행동을 보였다. 이것은 비좁고 단조로운 환경에 갇혀 사는 동물에게 흔히 나타나는 이상증세로 '정형행동'이라고 한다. 케어는 피부 상태가 좋지 않거나 나이가 매우 많아 보이는 개들도 있었다고 했다.

현장 조사 후 케어는 비위생적인 환경, 부적절한 채혈방식, 방역문제 등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케어 홈페이지에 공지돼 있다.

국내에는 공혈견 사육과 혈액 공급에 관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이런 업체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 이에 케어는 정부에 문제 해결을 위한 관련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리고 한국동물혈액은행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폐업할 것을 요구했다.

수의사 단체에는 한국동물혈액은행에 대한 불매를 촉구했다. 그리고 반려인들에게 각자 이용하는 동물병원에 한국동물혈액은행에 대한 불매를 요청할 것과, 수혈을 받을 경우 반드시 혈액의 출처를 확인하라고 권고했다. 지난 7일, 케어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케어 "헌혈시스템 도입하자"

녹조가 낀 물그릇공혈견들은 겉보기에도 위생과 거리가 먼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 케어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반드시 제기할 질문이 있다. '공혈견이라는 존재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이다. 공혈견 사육은 인간에게 선택받은 개들을 위해 다른 개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위해 복제인간을 희생시키는 <아일랜드>의 설정과 다르지 않다.

고객의 불치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해서 사람과 똑같은 속성을 지닌 복제인간을 사육하고 장기를 빼앗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동물에게는 그런 행위를 용인해도 되는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남긴다.

케어는 헌혈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건강한 개를 반려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통해 혈액을 공급하자는 것이다. 비록 반려인의 결정에 따른 것이지만, 헌혈을 한 개들에게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무료 건강검진이나 병원진료비 할인, 나중에 수혈이 필요하게 될 경우 가장 먼저 받을 수 있는 혜택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케어는 이렇게 공급된 혈액이 오남용 되지 않도록 비영리기관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의사의 의견을 물었다. 평화와 생명이 함께하는 동물병원의 박종무 원장은 헌혈시스템에 대한 긍정적 검토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헌혈시스템이 구축된다 해도 그것은 개들의 자발적 참여가 아닌 보호자의 결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는 남게 된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자신의 개를 헌혈견으로 제공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보호자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람에게는 이미 헌혈시스템이 존재하지만 혈액공급은 항상 부족한 상태다. 사람의 경우도 이런데 보호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또한 충분한 혈액 공급을 위해 체구가 큰 개들이 공혈견으로 쓰이는데 반해, 국내 반려견은 대부분 체구가 작은 종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헌혈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고, 동물병원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안정적인 혈액공급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박 원장은 당분간 공혈견이라는 존재를 일부 용인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공혈견의 복지를 가장 우선시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공혈견에게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지 동물명예감시원이 감시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동물 혈액원을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했다.

한국동물혈액은행 "동물복지 위배되지 않는다"

뜬장뜬장은 배설물이 철망 사이를 통과하게 돼있다. 사육장 청소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개식용 농장에서 흔히 사용된다. ⓒ 케어


한국동물혈액은행의 입장을 알아보기 위해 김희영 한국동물혈액은행 대표수의사를 인터뷰했다. 지난 6일 서면 인터뷰를 보냈고 7일 답변을 받았다.

- 현재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사육중인 공혈견은 모두 몇 마리인가?
"약 300마리다. 이 중 8살을 초과하여 공혈 임무가 끝난 52마리 개들은 혈액 공여를 하지 않고 기초적인 사육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약 50마리의 개들은 예비 공혈견으로서 채혈 전이거나 휴식이 필요한 상태다. 따라서 200마리의 공혈견이 실질적인 공여 역할을 하고 있다."

- 개들을 뜬장에서 사육하는 것은 동물복지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한 한국동물혈액은행의 입장을 알고 싶다.
"미국 농림부의 동물복지규약에는 개·고양이를 철망 바닥(뜬장)에서 사육하는 것에 관한 여러 가지 규정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닥에 철망을 사용할 경우 발이 빠지지 않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뜬장에서 기르는 것이 동물복지에 위배된다는 것은 이러한 규정을 바탕으로 했을 때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공혈견의 다리는 빠지지 않고 배설물만 통과시키는 촘촘한 철망 형태를 취하고 있어 미국 농림부 동물복지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들에게는 정기적으로 넓은 공간이나 사육장 바깥에서 운동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가, 아니면 일상적으로 뜬장에 가둬두는가?
"미국 농림부 동물복지규약에는 개가 자유롭게 활동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최소 사육장 크기가 규정돼 있다. 가령 90㎝의 체구(코끝에서 항문까지의 측면 길이)를 가진 동물은 90㎝×90㎝=8100㎠의 바닥면적을 필요로 한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 중 90㎝의 체구를 가진 동물은 100㎝×120㎝ = 12000㎠의 사육장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미국 농림부 동물복지규약이 정한 것보다 약 1.5배 크기로 동물복지규정에 부합한다. 이전 뉴스에서 제기된 것과 달리, 이는 공혈견의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 크기다.

한편 미국 농림부 동물복지규약은 뜬장에 생활하는 개를 위해 특별히 운동 기간을 정해놓지 않았다. 다만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는 공혈견을 채혈 후 15-20분 정도 운동하거나 걷게 한다."

- 녹조가 낀 채로 식수가 방치돼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것은 위생상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귀사의 입장이나 개선방안은 무엇인가?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는 모든 식기를 매일 청소하도록 돼있다. 식수에 녹조가 껴있다는 뉴스를 뉴질랜드 출장 중 접하고 나 역시 매우 놀랐다. 이에 대해 해명에 앞서 사과를 드린다.

공혈견에게 공급하는 물로 지하수와 산에서 내려오는 물 두 가지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 이틀이 지나면 그릇에 녹조가 생긴다. 청결을 위해 그릇을 원칙대로 1일 1회 청소할 것이다. 또한 고성군청 환경과에 주기적인 수질 검사를 요청해뒀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 한국동물혈액은행은 공혈견들에게 닭 부산물과 잔반을 재활용한 음식물을 먹이로 공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닭 부산물과 음식물은 어디서 공급받고 있나?
"군부대 음식물을 이용한다. 군부대 음식물은 일반 식당 음식물과 달리 염도 농도가 개에게 추천되는 일일 소금양인 1% 이하로 잘 유지되는 편이다. 음식물이 습식 사료화(음식물 수거 후 30분 동안 끓이는 과정)된 후에는 수분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건조 사료를 섞어서 공급한다."

- 닭 부산물과 음식물을 재활용하는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쓰레기로 버려질 것들을 사용한다는 차원에서 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에서 반려견에게 이런 것을 먹이는 가정은 거의 없다. 이런 방식은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지 않는 개식용 농장에서나 일반적인 관행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초기에는 일반 사육농가와 달리 전면 사료를 이용하여 급식했다. 그러나 체중감소와 저단백혈증이 발생하여 습식 사료화한 음식물을 급여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동물복지 측면과 오늘날 사료가 상당히 고급화된 점을 고려하여 급여 방식을 전환하려고 한다."

- 닭 부산물과 음식물 재활용은 공혈견에게 위생문제와 더불어 영양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사람이 먹는 음식은 염분이 많아서 개에게 좋지 않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한국동물혈액은행의 입장은?
"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은 건강이 최우선시 돼야 한다. 만약 음식물 급여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면 초창기에 공혈견으로 활약하여 은퇴한 13살 공혈견이 동물혈액은행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정의 음식물이 개에게 일으키는 가장 큰 문제점은 염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물을 수거하여 30분 동안 끓이는 과정을 거친 후 염도를 측정한다. 염도가 1% 이상인 경우 건조 사료와 수분을 첨가하여 1% 이하로 맞춰 급여를 해왔다.

이런 방법에서 동물의 건강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물복지의 측면에서 사료 등을 급여하는 방법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 닭 부산물과 잔반을 재활용한 음식물을 먹이로 공급받는 공혈견 ⓒ 케어


- 공혈견은 주기적으로 채혈을 당하기 때문에 더 양질의 먹이를 공급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한국동물혈액은행의 입장은 무엇인가?
"미국 수혈의학 지침에는 4주마다 채혈을 하는 개에게는 특이 영양 공급이 필요하지 않다고 기술돼 있다. 다만, 3주마다 채혈이 이뤄질 경우 특이 영양식을 공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질문에서 '양질의 먹이'가 특별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혈액검사 시 정상적인 혈액수치를 보이는 개는 건강상태가 정상이며 영양상 문제가 없음을 뜻한다. 우리는 공혈견의 나이·체력·체중·혈액검사 등을 감안하여 5-8주 간격으로 채혈을 하고 있다. 건강을 양호하게 유지하는 상태라면, 주기적으로 채혈을 할 경우 더 양질의 먹이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수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 동물보호단체는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들이 보신탕으로 재활용된다는 문제를 제기했는데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라면, 공혈견으로서 쓰임을 다한 개들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나?
"보신탕으로 활용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8살을 초과한 공혈견에게는 채혈을 금지한다. 공혈견으로서 은퇴한 52마리의 개들이 현재 채혈을 하지 않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18살 이상이 되면 자연수명을 다하여 죽는 공혈견들이 생길 것을 감안하여 묘지를 만들기 위해 근처에 작은 산을 매입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동물은 폐기물로 분리되어 매립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 한국동물혈액은행 홈페이지에는 고양이 혈액공급을 시작했다는 공지가 있다. 현재 공혈묘로 사육되는 고양이는 몇 마리인가?
"몇 마리로 시작은 했지만 수요가 많지 않다. 아마도 고양이를 기르는 반려인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문화가 조성된 것 같아 우리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 고양이 혈액은 동물병원에서 기르는 고양이, 환묘 외에 반려인이 기르는 다른 고양이로부터 얻거나, 애묘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헌혈묘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기자말). 

- 고양이는 개보다 훨씬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동물이라 집단사육이 권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공혈묘의 집단사육에서는 더 큰 복지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이에 대한 귀사의 입장은?
"집단사육의 형태로 가기 전에 자발적인 헌혈 문화가 활성화되기를 우리도 바라고 있다."

▲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 사육장 ⓒ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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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 사육 실태 동영상 ⓒ 케어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자사의 사육환경이 동물복지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공혈견을 보호하는 법은 없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이 근거로 댄 미국의 법조차도 동물로 이윤을 취하는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 양심에 물어보자. 내 사랑하는 반려견을 위 사진·영상과 같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지.

영화 <아일랜드>의 복제인간이 인간이 아닌 '상품' 취급을 받는 이유는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 아닌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공혈견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다. 공혈견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우리 사회는 성숙한 반려문화로 진보할 수도, 이기적인 애완문화로 퇴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아이가 귀한만큼 다른 아이도 귀하다"는 상식이 동물에게 예외일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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