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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검정·합격시켜놓고 이제 와서 북한 베꼈다니?"

<한국사> 집필자들 ‘매도·망언’ 교육부에 법적 대응하기로

등록|2015.10.11 11:13 수정|2015.10.11 16:51

▲ 교육부가 북한 서적에서 베꼈다고 주장한 비상교육의 <한국사> 교과서 346쪽. 이 책은 역사 사료를 보여준 뒤 "실제로 소련은 인민 위원회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려는 입장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 비상교육


[2신: 11일 오후 4시 50분]
"자기들이 검정·합격시켜놓고 이제 와서 북한 베꼈다니?"

'<한국사> 교과서가 북한 교과서를 베꼈다'는 식의 보고서를 만들어 새누리당에 건넨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 관계자들이 집필자들에 의해 고소당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오후 교학사를 뺀 7개 출판사 집필자들의 모임인 고교<한국사>집필자협의회(아래 한필협)은 긴급 성명을 내어 "'북한교과서 일부를 보는 것 같다'는 등의 왜곡·매도·망언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면서 "사실을 왜곡해 집필자를 폄하하는 처사가 계속된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역사교육지원팀이 '북한 교과서를 발췌한 출판사'로 지목한 비상교육과 천재교육 집필자 가운데 한 교수는 이날 법적 대응을 위한 법리 검토를 변호사에게 맡겼다.

이 교수는 "북한 교과서를 베꼈다고 한 교육부의 보고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면서 "자신들이 검정 합격을 시켜줘서 2년 동안 학생들이 배운 교과서에 대해 이처럼 공격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한필협은 보도자료에서 "교과서 집필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검정에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역사학계의 주요 견해를 중심으로 공정하게 교과서를 집필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점을 정부 여당이 안다면 결코 검정 교과서를 매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웅진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등 역사교육 4단체도 성명을 내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교육을 정치에 예속시키고,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처사"라면서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신: 11일 오전 11시 13분]
교육부 '종북' 매도에 화난 필진들 "새누리 수족노릇"

교육부가 올해 추석 직전 새누리당에 건네준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 보고서의 실체가 일부 드러나면서 <한국사> 교과서 필진들이 정면 대응에 나섰다. 이 보고서를 만든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은 보고서 내용에 대해 함구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관련기사 : '색깔론' 보고서는 교육부 '역사지원팀' 작품).

'맥아더 포고문' 적은 게 북 서적 베끼기?

11일 교과서 필진들은 교육부가 자신들이 합격시킨 <한국사>에 대한 '종북 몰이'를 시도한 점에 주목해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공동 규탄 성명서를 내는 한편, 이 보고서를 만든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9일 이 보고서를 입수한 <국민일보>는 "교육부가 비상교육과 천재교육이 낸 <한국사> 교과서에서 북한 서적을 출처로 기술된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을 가려내 여당 의원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종북'으로 규정해 국정화 명분으로 삼으려는 포석이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북한 서적 베끼기의 사례로 든 해방 직후 소련 치스차코프 포고문과 미국 맥아더 포고령은 남한 책에도 많이 실린 공식 문서였다. 또한 교육부가 1983년 북에서 나온 <현대조선역사>를 발췌했다고 주장한 "미국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국내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라는 교과서 글귀도 지나친 해석이란 지적이다. 이 내용은 이미 1970년대 이후 한국 역사서적 상당수에 실린 주류 사학계의 통념이기 때문이다.

천재교육에서 낸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역사콘텐츠학과)는 지난 10일까지 '페이스북'에 3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에서 역사교과서 집필자로 산다는 것은'이란 원고지 35매 분량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주 교수는 "이런 문건(한국사 교과서 분석 보고서)을 뉴라이트나 여당 쪽에서 쓴 것이 아니라 교육부 관료가 썼다는 것은 충격"이라면서 "그들이 지적한 부분은 그동안 교과서에 상식적으로 쓰여 온 것이다. 우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북한의 서적에도 나오면 무조건 출처로 삼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이어 주 교수는 "요망한 관료들 때문에 교육부가 (새누리당) 수족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바로 역사 교과서 시비에 총대를 메고 (교육부에서) 나쁜 짓을 했던 자들이 출세하는 것을 보고 뒤따라 해 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 교수는 "정말 대한민국에서 역사 교과서의 집필자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노릇이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면서 "이 보고서를 작성한 교육부 담당자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오후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김동원 학교정책실장은 "(보고서는)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역사교육지원팀장에게 자료를 요구했고, 팀원들이 2∼3일 소요해서 작성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나와 장차관의 결재를 받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 현행 중고교 <역사> 교과서. ⓒ 윤근혁


지난 해 1월부터 국정교과서 추진 방안을 연구해온 역사교육지원팀의 직원은 10여 명이다. 문제의 보고서는 이 팀을 이끌고 있는 김연석 팀장이 추석 직전 강 의원실에 직접 들고 가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 의원들도 지난 8일 국감에서 10시간에 걸쳐 이 보고서에 대한 마라톤 요구를 했지만, 전달받지 못했다. 

비상교육에서 낸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도면회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과)도 지난 9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정부 여당이 어떻게 이렇게 무식하게 역사학자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가"라면서 "현행 검정 교과서는 교육부 집필기준에 맞춰 집필됐고, 심지어 집필자의 의사에 반해 교육부 명령대로 수정까지 거쳤다"고 지적했다.

주진오 교수 "출세하기 위해 나쁜 짓, 법적 책임 묻겠다"

지난 2013년 교육부의 위탁을 받은 교육부 직속기관인 국사편찬위는 해당 내용이 담긴 8종의 고교<한국사> 교과서를 검정한 뒤 합격 통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자신들이 합격시켜 이미 고교생들이 2년 동안 배운 교과서를 놓고 '종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0일 오후 역사교육지원팀의 해명을 듣기 위해 김 팀장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도 남겼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이 부서의 다른 직원도 입을 다물었다. 교육부는 <국민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해명자료를 내지 못했다.

교육부는 새누리당에 비밀리에 보낸 보고서의 내용이 특정 언론에 보도되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를 공표한 것이 아닌데도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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