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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사진과 시로 만나는 세계의 도시 5] 인도 함피

등록|2015.10.12 11:40 수정|2015.10.12 14:21
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 비밀스럽고, 성스러운(?) 인도 내륙의 도시 함피. ⓒ 홍성식


▲ 폐허가 된 함피의 풍광. 힌두제국과 이슬람제국의 전쟁 탓이다. 결국 세상 불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종교다. ⓒ 홍성식


▲ 1400년 전 왕이 탔다는 석조마차. 실제로 보면 그 섬세함과 느껴지는 무게감에 기가 질린다. 함피 비탈라사원 내부에 있다. ⓒ 홍성식


▲ 비루팍샤사원 안에서 코로 여행객의 머리를 쓰다듬는 잔재주를 보이며 푼돈을 구걸하는 코끼리. 측은했다. ⓒ 홍성식


▲ 명멸했던 왕조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함피에서 만난 인도 아이들의 눈동자는 맑았고, 웃음은 더없이 선했다. ⓒ 홍성식


소리가 되지 못한 노래

제국은 제국을 배척했다
비자야나가르 왕조의 하누만
무슬림 영주의 혀를 자르고
모하메드를 욕보였다
일어선 무슬림연합국
복수는 가혹했다
힌두의 신들은 목이 잘렸고
개도 금덩이를 물고 다니던 도시는 폐허가 됐다

1400년 전 왕들은
300마리 백마가 끄는 석조 마차를 탔다한다
비탈라사원의 돌기둥에 귀를 대면
부침과 명멸을 거듭했던 함피의 비명이 들려
신성한 도시에선 술도 숨어 마셔야한다
거대한 바위 위로 비산하는 햇살
눈은 부시고, 밤은 오지 않을 것 같아

제3제국을 경험한 할아비의 피 탓일까
스물한 살 독일 소녀는
낯선 동양인 사내에게 거침이 없다
일찍 죽은 제 오빠를 닮았다나
아리안의 피가 섞이지 않은 난
과장된 제스처로 웃을밖에 도리가 없고

비루팍샤사원 거대한 첨탑 너머로
핏빛 태양이 떨어진다
덩치에 맞지 않게 잔재주로 푼돈 구걸하던
코끼리도 지쳐 제 집으로 돌아가는
이국의 밤은 언제나 두렵거나 설레는 법
인도산 맥주는 이름조차 철학적이라 '물총새'다

게으른 사내들은
낯짝에 묻은 흙도 털어내지 않고
비밀스런 술집을 향하는데
제 사는 곳을 도읍으로 정했던
왕들의 이름은 이미 그들의 관심 바깥에 있다
그 밤, 독일 소녀는 사탕수수 럼에 취해
쓰러진 바람벽 위 빛나는 별을
당신이 노래해 달라 칭얼댔다

그 탓이었을 게다
제국의 폐허에서 갈증 참으며 잠든 밤
까무룩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극의 재료만으론
어떤 노래도 소리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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