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모나지 않아, 광주시민 닮은 산"
[무등산자락 탐방 9] 신라 고승이 수도했다는 '천년고찰' 의상봉 탐방
▲ 11 ⓒ 문운주
무등산, 나에게는 추억의 산이다. 배고픈 다리, 배부른 다리, 산장, 원효계곡 등 애환이 깃든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특히 증심사 계곡은 여름이면 갈 수 있는 나의 유일한 피서지였다. 너덜겅 약수터에서 약수를 떠 나르던 추억도 산이 준 크나큰 선물이다.
비가 그치고 물안개가 산허리를 휘감는다. 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사뿐히 내려왔다. 무등산을 탐방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정상 개방 날과 겹쳤다. 군부대가 자리하여 평소에는 오르기가 쉽지 않아 전국에서 몰려든 산악인들로 북새통이다. 원효사를 거쳐 의상봉을 다녀오기로 한 달 전부터 약속된 터라 장소, 날짜 변경이 쉽지 않다.
무등산 원효사는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한 절이라 전한다. 정상 길 우측에 숨은 듯 위치하여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산처럼 절을 거쳐 가거나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한다면 자주 들렀을 텐데, 아쉬움이다. 천년 고찰을 자주 대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서다.
지난 10월 3일 의상봉 탐방을 다녀왔다. 원효사에서 출발하여 의상봉을 거쳐 관음암까지다. 9시에 원효사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먼저 원효사 탐방이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방문이 쉽지 않은 절이다. 특히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사찰이기도 하다.
일주문 계단에 올라섰다. 일주문은 절의 문이다. 해설사분이 기둥과 보조기둥, 단청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고 가르쳐 준다.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이 갖고 있는 온갖 번뇌와 고통 등을 잊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있다고.
▲ 대종각1 ⓒ 문운주
▲ 회암루정면에 대웅전이 보이고 반대편으로 의상봉, 윤필봉 을 마주 하고 있다. 부처님이 앞에 있으니 들어눕지 말고 소원을 빌라는 안내표지가 보인다. ⓒ 문운주
일주문을 지나 경사진 숲 속 길을 오르니 좌측으로 범종각, 회암루가 보인다. 회암루는 2층 누각이다. 1층은 금강문이고 2층은 누각이다. 천장은 곱게 단청이 되어있다. 드러눕지 말고, 경건하게 108번뇌를 잊고, 소원을 빌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정면으로는 대웅전이 보이고 반대쪽으로는 의상봉, 윤필봉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작지만 깨끗하게 단장된 사찰이다. 종교를 떠나 산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고의 관광자원이다. 수행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다. 돈벌이가 아니라도 다녀오면 기분이 좋고 힐링이 되는 것 또한 산 속의 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명부전, 대웅전을 둘러보고 의상봉을 향해 산길을 재촉했다.
탐방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개와 물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있으면 제격이다. 태고의 신비가 묻어나는 듯 분위기에 휩싸인다. 원효계곡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이끼 바위 사이를 흐르는 맑고 푸른 물소리, 그리고 솔 향을 가득 담겨 있다.
▲ 의상봉 가는 길몇 젼전 태풍에 무너진 나무들이다. 오르는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 문운주
바위에 떨어지는 물소리에 취해 걷다 보니 갈림길이다. 오랫동안 산행을 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길이다. 좌측으로 완만한 경사길이 의상봉 가는 길이다. 해발 542m, 결코 높다 할 수 없는 산이다. 그렇다고 경사가 심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산에게 미안할 뿐이다. '산은 산이다'라고 아무런 생각 없이 오르기만 했다.
사는 이야기와 소주 한 잔, 더 바랄 게 없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주변 소나무 밑으로 조릿대가 군락이다. 어제 내린 빗물을 잎에 머금고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한 이십여 분이 지났을까. 묘 1기가 보인다. 주변이 넓어서 일행이 쉬기에 충분하다. 등에 흐른 땀을 식히는 사이에 해설사분이 의상 토굴에 대해 설명해 준다.
▲ 의상토굴신라 고승인 의상이 수도했다고 전하는 의상토굴이다. 굴이 좁아 20 명정도 들어갈 수 있다. 굴안에 들어서니 막걸리와 촛불이 보인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다. ⓒ 문운주
토굴에 들어서니 막걸리가 놓여 있고 촛불도 켜져 있다. 누가 다녀간 흔적이다. 이곳에서 신라 의상이 수도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유학 후 돌아와 화엄사상을 펼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을 편력하던 중 이곳에서 머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의상이 제자들에게 경을 가르쳤다는 설법대다. 원효사를 출발한 지 1시간 만이다. 각자 준비한 도시락으로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여기에 사는 이야기와 소주 한 잔의 여유가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있으랴.
▲ 무등산 정상설법대에서 바라보면 남쪽을 향해 누어 있는 부처의 모습처럼 보인다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 문운주
설법대에서는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을 비롯하여 서석대, 입석대, 장불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비록 날씨가 흐려 선명하게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 정상의 모양이 와불과 같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쉽지만 하산이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은 곳이라 단풍이 들면 최고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 11 ⓒ 문운주
마지막으로 찾는 곳은 관음암이다. 원효사에 오르기 전 우측에 있다. 전에는 원효사에 속한 암자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별도의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주존 불을 건물 내부에 모시지 않고 극락보전 뒤쪽 바위벽에 불단을 마련하여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 관음암주지인 인성스님이 관음암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 문운주
"산의 능선 모양을 보십시오. 둥글고 모나지 않는 산, 산세를 닮아 광주 시민은 모나지 않고 후덕하고 베풀 줄 아는 시민입니다."
주지스님의 설명이다. 산은 배려와 포용을 가르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