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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나올 것 같았는데 보물창고였어요"

[광명동굴, 폐광의 기적을 만든 사람들 2] 정광해 공원녹지과장 ①

등록|2015.10.16 09:46 수정|2015.10.19 17:15

▲ 2009년 3월 11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폐광을 방문했다. ⓒ 윤한영


광명시가 폐광(광명동굴)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은 2011년 1월 26일. 2010년 7월 1일에 취임한 양기대 광명시장이 폐광을 처음 방문한 것이 2010년 8월 7일이니, 폐광 개발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양기대 시장의 결단이 빨랐다.

정광해 공원녹지과장은 양 시장이 폐광을 처음방문하던 날, 양 시장을 안내했다. 광명시청에서 폐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 바로 정 과장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정 과장은 폐광 개발을 전담하는 테마개발과가 신설될 때까지 광명동굴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개발을 시작하기 전부터 폐광의 가치를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폐광이 새우젓 저장고로 이용되고 있지만 개발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발을 서두르지 않더라도 광명시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광명동굴을 제일 잘 아는 사람, 정광해 공원녹지과장

▲ 정광해 공원녹지과장 ⓒ 윤한영


정 과장이 폐광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 가을 광명시청으로 전근을 오면서부터였다. 1986년에 산림청에서 농림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강원도 인제관리소에 근무했다. 그가 산림청에서 광명시로 근무지를 옮긴 것은 갓 결혼한 아내 때문이다.

"집사람이 서울 사람이었어요. 서울여자라 시골에서 사는 걸 엄청 어려워 하더라구요. 그래서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었어요. 서울과 가까운 광명시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오게 된 거죠. 그때는 광명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렇게 광명시청으로 오게 된 그는 산림계에서 근무하면서 광명시의 산과 공원을 관리하게 된다. 당시 시흥광산으로 불리던 폐광이 있는 가학산 관리 역시 그의 업무였다.

▲ 정광해 과장과 양기대 시장 ⓒ 유혜준


1989년이면 가학산 일대가 황무지나 다름없던 시절이다. 현재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이 들어선 자리에는 1972년에 폐광된 시흥광산에서 채굴한 광물 찌꺼기인 광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광미는 비만 오면 물에 휩쓸려 산 아래로 흘러내려가곤 했다. 광미 때문에 인근 지역이 거의 대부분 오염돼 풀도 자라지 않았다. 광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99년,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이 완공되었을 때였다.

정 과장은 그때의 가학산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소각장이 들어선 곳이 예전에는 광미를 쌓아두던 곳이었어요. 그게 비만 오면 자꾸 흘러 내려가는 거야. 밀가루 풀려나가듯이. 산 아래 마을까지. 그래서 예전에는 이 부근에 풀이 하나도 안 나고 황폐한 골짜기 같았죠."

시흥광산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채굴을 시작해 1972년에 폐광할 때까지 60년 동안 금, 은, 동, 아연 등의 광물을 캐던 수도권 최대의 금속광산이었다. 1972년 여름에 일어난 대홍수가 시흥광산 폐광의 원인이다. 당시 야적장에 쌓여 있던  광미가 도고내 일대로 휩쓸려 내려가 논밭이 오염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히면서 사회문제가 된 것. 결국 폐광하기에 이른다.

이 폐광을 사들인 사람이 김기원씨다. 그는 1974년 2월에 시흥광산을 사들여 광산업을 재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1994년에 가학광산 광업권이 영구히 소멸할 때까지 채굴허가를 받아내지 못했다. 끝내 광산업을 시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 과장이 광명시청에서 근무를 시작할 무렵 현재의 자원회수시설 부지에 쌓여 있던 광미는 김기원씨가 폐광을 사들이기 전 채굴 과정에서 나온 광물 찌꺼기였다. 이 광미가 늘 문제였다. 정 과장 표현대로 비만 오면 광미가 '밀가루 풀리듯이' 산 아래로 흘러내려 마을과 논밭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광미만 쓸려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임도의 흙도 같이 쓸려 내려가 임도가 사라지곤 했다.

▲ 정광해 과장(오른쪽)과 광명동굴 전 소유자 김기원씨 ⓒ 윤한영


당시 산불감시 업무를 했던 정 과장은 폐광으로 이어지는 길이 사라지면 길을 보수해주곤 했다. 길이 사라지면 산불감시나 가학산 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인연으로 정 과장은 광명동굴 전 소유자인 김기원씨와 인연을 맺게 됐다.

"길은 우리도 필요했죠. 산불감시를 하려면 그 길로 다녀야 하는데 길이 없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길을 보수를 해주곤 했어요."

정 과장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건 광명시청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김씨가 정 과장에게 폐광과 관련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언을 구한 것은 그런 정 과장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광명시가 폐광 매입에 나섰을 때도 매매를 망설이는 김씨를 설득한 사람이 정 과장이다.

정 과장이 폐광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99년이다. 당시 광명시장은 백재현(광명갑·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었다. 백 시장은 폐광 개발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들에게 폐광을 살펴보고 개발가치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백 시장의 지시에 따라 폐광을 답사한 사람은 현재 광명동굴 개발을 전담하고 있는 최봉섭 테마개발과장이다. 최 과장은 당시 정책개발팀장 직무대리였다. 최 과장은 폐광 안을 둘러보고 개발계획 초안을 작성한다.

▲ 폐광 안에 쌓인 흙을 치우고 있다. ⓒ 윤한영


흥미로운 건 김기원씨가 폐광 실소유자였지만, 광산 내부를 다 둘러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채굴이 중단된 폐광은 새우젓을 저장하던 일부 구역을 빼고 지하 1레벨 아래는 죄다 물에 잠겨 있었다. 처음에는 지하 3레벨까지 물에 잠겨 있었지만,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지하암반수를 퍼내지 못해 물이 점점 더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니 김씨가 동굴 내부를 둘러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정 과장은 최 과장이 폐광 탐험(?)을 마친 뒤 백 시장이 직접 폐광 답사에 나섰을 때 그를 따라 폐광에 들어갔다.

"지금의 동굴전망대 자리였어요. 밧줄을 타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는데, 솔직히 무서워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죠. 캄캄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 나올 것 같았어요."

새우젓 저장고가 아닌 폐광 안을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폐광 내부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천연동굴이 아니라 금속을 캐내던 광산이었으니 놀라움이 더 컸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정 과장은 폐광이 잠재적인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보물창고다.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학광산 개발은 계획만 세웠을 뿐 추진되지 않았다. 밑그림을 너무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소요예산이 500억을 넘었다. 수도권 위성도시에 불과한 광명시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개발 계획을 추진할 능력이 없었다. 또 개발한다고 해도 성공 가능성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폐광이 개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후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가학광산 개발' 공약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기대 시장 역시 2008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가학광산 개발' 공약을 내건 것은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과장은 양 시장의 폐광 개발 공약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양 시장에게 폐광 개발 가능성을 주장했고, 폐광 방문 때 앞장서서 안내했던 것이다.

김문수 지사도 알아본 광명동굴의 가치

양 시장 이전에 폐광을 방문한 유명한 정치인이 또 있었다. 바로 김문수 경기도지사였다. 2007년 3월 11일, 김 지사는 광명시를 방문하면서 폐광을 찾았다. 그를 폐광으로 안내한 사람 역시 정 과장이다. 이때 최 과장도 동행했다.

1999년에 폐광 탐험에 나섰던 광명시청 공무원들이 현재의 동굴전망대에서 밧줄을 타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지만, 김 지사는 새우젓 저장고 입구로 들어갔다. 그때 새우젓 저장고 입구는 김기원씨가 철문을 달아 통행을 막아 놓은 상태였다. 새우젓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정 과장은 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김 지사를 폐광 안으로 안내했다.

"김 지사님이 동굴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동굴 내부를 둘러보고 지금이라도 당장 아이들 견학이나 탐험 장소로 활용해도 된다는 말씀을 하셨죠. 내부를 청소하고 조명을 설치하면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김 지사님도 동굴이 활용가치가 있다는 걸 아신 거죠."

이 인연으로 김문수 지사는 4년 뒤, 양기대 광명시장이 폐광 개발을 시작했을 때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김 지사가 폐광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양 시장의 폐광 개발을 지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광명시에서 43억 원을 주고 매입한 폐광애 김 지사는 70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이후에 지속적으로 지원한 예산까지 포함하면 김 지사가 지원한 돈은 100억 원에 이른다.

양 시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 지사가 광명동굴 개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만일 김 지사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광명동굴이 지금처럼 짧은 기간에 수도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관광지로 발돋움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광해 공원녹지과장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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