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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올린 청소노동자 임금, 정부가 깎았다

[단독] 정부 지침 준수한 예산안을 기재부가 삭감 조정

등록|2015.10.15 12:02 수정|2015.10.20 14:01

▲ 2007년 12월 14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명박 특검'과 BBK수사검사 탄핵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가운데 낮 농성중인 국회의원들이 먹은 도시락을 청소원들이 쓰레기봉투에 담아 치우고 있다. ⓒ 권우성


국회가 청소노동자들의 내년 임금을 정부 기준에 맞춰서 올리려 했지만, 오히려 정부가 이를 삭감한 사실이 드러났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보호와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한 기준을 정부 스스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4일 <오마이뉴스>가 홍익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입수한 2016년도 국회 청소용역 예산안 자료를 보면, 당초 국회사무처는 청소노동자 207명의 내년 월 평균임금을 올해 146만 원에서 173만 원으로 올리기 위해 총 67억2300만 원의 예산을 정부에 요구했다.

국회가 청소노동자의 내년 월 평균임금을 27만 원 인상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정부의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 있다. 2012년 1월 당시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가  공공부문 용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합동으로 마련한 '정부 기준'이다.

▲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설명자료 내용. ⓒ 고용노동부


해당 지침에 따르면 정부와 공공기관 등은 용역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노임단가(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하는 노동자 평균시급)를 적용해야 한다. 정부는 올 1월 설명자료를 내고 "국회·법원 등의 헌법기관도 기준에 준해 자체 개선방안을 마련·추진함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내년부터 정부 지침에 맞춰 청소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올해 시중노임단가(일급 6만4150원)와 물가상승률 등을 기준으로 관련 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심사과정에서 국회 청소노동자의 내년 월 평균임금을 국회사무처 요구보다 적은 149만 원으로 삭감하고 총 예산을 56억8300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월 평균임금에서 3만 원 오른 액수로, 근로조건 보호지침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국회가 정부 기준과 권고를 준수하기 위해 책정한 임금을 도리어 기재부가 깎은 것이다.

한정된 예산 때문? "국회의원 출장비 줄여서라도 지침 지켰어야"

기재부는 한정된 예산과 형평성 문제 때문에 하향 조정이 필요했다는 의견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청소노동자는 국회에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라며 "예산심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돼 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부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할 것을 사무처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김영숙 국회 환경노조위원장은 "지금까지 정부 지침을 지키라고 국회에 요구해왔는데, 알고 보니 정부가 지침을 지킬 수 없다는 것 아닌가"라며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결해준다면서 약속한 내용을 스스로 못 지키겠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홍익표 의원은 "국민 앞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지침을 지킬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본인들이 권고한 기준을 스스로 준수하지 않는 것은 국민 기만이나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한정된 국회 예산 때문에 지침을 지킬 수 없다면 의원들의 출장비를 줄여서라도 지침을 지키도록 하는 게 맞지 않나"라며 "스스로 지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든가, 지킬 자신이 없으면 철회를 선언하든가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가 올 9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소·경비 용역 노동자를 쓰는 정부 부처·지방자체단체·공공기관 가운데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전부 준수해 계약한 경우는 38%에 불과했다. 특히 지침이 정한 기준에 따라 용역 노동자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한 경우는 45.5%로, 사실상 2곳 중 1곳이 지침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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