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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출근만 생각하면 몸이 아파올까?

[리뷰]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외 2권

등록|2015.10.19 08:01 수정|2015.10.19 08:01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출근하고 싶겠지만, 막상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 왜 그토록 하고 싶던 일이 지겨워지고 급기야는 회사 생각만 해도 두통이 생기는 지경에 이르는 걸까.

늘 벌어지는 일이지만, 어쩌면 늘 그런 일이라 생각하며 지나치기 때문에 일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변경,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한 연장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노동 관련 정책 이슈가 이번 주제를 고르는 데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왜 출근만 생각하면 몸이 아파올까

▲ 요하임바우어 지음/ 책세상 ⓒ 참여사회

독일에서 노동 환경과 노동자 건강 개선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학박사 요아힘 바우어는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에서 인간과 노동의 관계를 되짚는다. 숭고한 노동에서 소외되는 노동까지 일의 의미 변화를 살피고, 오늘날 노동이 처한 상황, 노동이 노동자와 맺는 관계를 분석하는데, 특히 노동에서 비롯하는 건강 문제에 집중한다.

가볍게는 출근만 생각해도 두통이 오는 상황부터 번아웃과 우울증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 맥락에서 건강은 개인에게 국한된 게 아니라 가족, 공동체, 사회의 문제로 확장되고 당연히 노동 강도, 노동 시간, 고용 형태, 보상처럼 노동을 둘러싼 쟁점이 맞물린다.

왜 노동자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할까. 왜 일에서 충분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 못할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탐구는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물론 인간이 노동을 통해 힘을 얻고 창조적인 욕망과 자기실현을 펼치며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의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걸 증명해야만,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을 만드는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맞설 수 있고, 일에 빠져 노동이 강압으로 내면화된 이들을 구출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때 체력이 국력이라 외쳤는데, 이제는 노동자의 건강이 사회의 건강이라 소리쳐야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

▲ 김혜진 지음 후마니타스 ⓒ 참여사회

비정규직 문제는 근거 없는 신화에 둘러싸여 현실로 들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은 일부의 문제라든지, 비정규직을 없애면 회사가 힘들어져 망할 거라든지, 비정규직을 그대로 두고도 차별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그렇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른 새벽 현관에 우유를 놓고 가는 이는 특수 고용직이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은 구청이 민간에 위탁한 용역 비정규직이다. 출근길을 책임지는 지하철 정비 기술자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다. 아침만 해도 이런데 하루 종일 만나는 비정규직이 얼마나 많겠는가.

공기업이 비정규직 사용의 이유로 삼는 과도한 부채는 잘못된 국가 정책 사업 탓인 경우가 많고, 대기업의 당기순이익과 정규직 전환에 드는 비용을 비교하면 왜 실적을 핑계로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2000년부터 비정규직 운동을 지속한 저자 김혜진은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되는 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능력이 탁월해 정규직이 되었다고 착각하더라도 결국 같은 노동 환경 속에서 애초 가졌던 약간의 우월감은 금세 불안으로 바뀌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비정규직 문제를 방관하며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미뤄두는 '비정규 체제'에서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정규직의 양보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오늘 노동 상황에 대처하는 출발점이라 하겠다. 비정규직 철폐를 시작으로 정규직의 노동까지도 시선을 확장해야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는 성찰이다.

일 좀 못하면 어떤가, 일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닌데

▲ 이서영·김종수·배백합·없음벨라·오수경·여정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 참여사회

앞선 두 권의 책이 오늘을 넘어서는 정석을 알려주었다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상상으로 오늘을 비틀고 내일을 꿈꾸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4년 7월 페이스북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란 그룹이 생겼다. 나는 이 정도로 일을 못합니다, 그 정도면 양반이죠, 저는 이 정도까지 해봤는 걸요. 이런 식으로 스스로 '일못(일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라는 걸 인증하고 공감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급기야는 시사주간지에 고정 연재를 하게 되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은 이들의 목소리를 가려 모은 책인데, 뻔뻔하게도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그런데 일 못하는 게 모두 내 탓일까?"라고 되묻는다. 이 질문은 실패하거나 실수한 이들을 낙오자로 만들어 배제하면서 소수의 성공 사례가 표준인 것처럼 말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일을 못하는 데에도 여러 층위가 있고 여러 상황이 있고 당연히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일못의 책임은 언제나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고 수치로 나오는 결과 외에는 일못을 판단하는 마땅한 기준도 없다. 그러니 고백하고 외쳐야 한다. 나는 일못이라고. 왜 일못인지 들어보라고. 당신의 일못도 함께 들어주겠노라고.

그러다 보면 일못을 만들고 일못이라 평가하는 시스템이, 그런 시스템을 지속시키는 우리 사회의 욕망이 보이지 않을까.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때때로 타인의 슬픔에 대해 울음을 터뜨리는 '일 못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 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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