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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나팔을 불면 용의 입에서 술이 흘렀다

[몽골기행 8] 몽골의 옛 수도 하르호린 기행

등록|2015.10.20 09:40 수정|2015.10.20 09:40
나와 아내는 아침 일찍 몽골 중부의 반사막지대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를 떠나 몽골의 서쪽 평원지대를 향해 다시 내달렸다. 가는 길에 낙타를 빌려 탔던 유목민의 게르에 들러 어제 주지 못했던 선물을 어린 딸에게 전달했다.

과자와 라면 등 여러 먹거리 선물을 받아 든 어린 소녀의 표정이 참으로 꾸밈없이 순박하다. 게르의 주인 아저씨는 다음 여행길에도 들르라며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건네준다. 그런데 건네주는 명함이 모두 몽골어로 적혀 있어서 괜히 웃음이 나온다.

엘승타사르하이에서 몽골 원(元)나라 시대의 초기 도읍지인 하르호린(хаpxopИн, Kharkhorin)까지는 75km, 약 1시간 20분이 걸리는 길이다. 하르호린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서는 서쪽으로 약 360km 떨어진 곳에 있어서 우리나라 같으면 반나절 거리이다.

하지만 이곳 몽골은 포장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보통 7시간 동안 초원길을 달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여유 있게 엘승타사르하이에서 1박을 하며 사막 지형을 감상한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하르호린 가는 길포장도로 옆에 차량들이 만들어 놓은 흙길 우회도로가 이어진다. ⓒ 노시경


하르호린 주변의 포장도로는 사정이 괜찮았지만 점점 외곽으로 나가자 깊게 패인 도로들이 나타났다. 영하 20~40℃로 떨어진다는 몽골 겨울의 강추위에 이 포장도로는 견뎌낼 방법이 없다고 한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더욱 신경 쓰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는 몽골 초원의 포장도로들은 이곳저곳에서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다가도 군데군데 파인 도로를 만나면 포장도로 바로 옆 초원의 흙길을 달렸다. 이 흙길은 운전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우회도로이다. 우리는 또 우리만의 새 길을 만들어서 달렸다. 몽골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나의 몽골친구는 포장도로와 우회 흙길을 달리면서 마치 레이싱을 즐기는 레이서 마냥 신나게 차를 몰았다. 우회도로에서 만난 차들은 서로 앞서 나가기 위해 먼지를 날리며 속력을 내고 있었다. 몽골의 평원에서는 우리가 달리는 길이 바로 길이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말을 타며 속도를 즐겼던 몽골인들의 유전자가 도로의 질주에서도 이어지는 장면들이다.

몽골의 매.초원 위의 움직이는 먹이를 향해 날렵하게 날아들고 있다. ⓒ 노시경


차가 달리는 길옆은 온통 초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낮은 산에도 온통 나무로 가득 차 있지만 몽골의 산은 온통 푸른 풀만 자라는 초지이다. 겨울의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나무가 자라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광활한 초원에서는 그 위를 가르는 몽골 매의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마못(marmot)과 같이 다람쥐 과에서 가장 큰 짐승 등을 사냥하는 매의 모습이다. 땅 근처까지 내려온 모습을 보니 이 근처에서 먹잇감을 발견한 것이다. 하늘에서 '매의 눈'으로 초원을 살피던 매는 전속력으로 초원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푸르공.러시아제 이 미니버스는 튼튼해서 몽골에서도 인기가 좋다. ⓒ 노시경


창밖을 구경하던 나와 아내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푸르공(Furgon)'이라는 러시아제 9인승 미니버스이다. 이 차는 원래 시베리아의 길 없는 길을 달리던 군용 승합차였다. 옛 소련계열의 차들이 그렇듯이 디자인은 전혀 신경을 안 쓴 것 같이 무뚝뚝하게 만들었는데, 묘한 미적 감각을 풍긴다.

몽골 친구에 의하면 디자인이 워낙 단순해서 사람이 타는 차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만든 차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한다. 이 푸르공은 어디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수리가 쉽도록 전자부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이 차들이 아직도 몽골의 도로를 달리는 것은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졌고 수리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도로 표지판.도로가 많지 않은 몽골에서는 표지판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 노시경


드디어 저 멀리 삼거리에 '하르호린(хаpxopИн)'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울란바토르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정표 하나 보기가 힘들 정도인데 정말 오래간만에 이정표를 만나니 반가울 지경이다.

광대한 평원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많지 않고 마을 간의 이동거리도 먼 데다가 차량통행이 많은 고속도로도 아니기 때문에 이정표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하르호린까지 가는 도로는 초원 지대에 하나의 선을 그어 놓은 것 같이 이어지는 한적한 도로이다. 이정표를 지나 16km를 더 달리자 하르호린에 다 왔음을 알리는 입구가 나왔다. 

하르호린 입구.과거 몽골 제국의 번창했던 수도로 들어서는 길이다. ⓒ 노시경


르호린에 가까이 오자 몽골의 평원은 더욱 더 넓어지고 시원스런 지평선을 자랑하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몽골친구가 초원의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저기 보이는 푸른색 작물들이 모두 밀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유목을 하지만 이 하르호린 주변에서는 이렇게 밀도 재배합니다. 쌀이 자라지 않는 몽골에서 밀은 최고의 작물입니다. 몽골에서도 이 하르호린의 밀은 품질이 좋아서 최고로 쳐주지요. 몽골 사람들은 이 하르호린에서 재배된 작물이나 제품은 아주 좋은 것들로 인정을 해 줍니다."

당시 전세계를 제패한 원나라 시대에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몽골 사람들은 당시 수도였던 하르호린을 마음의 수도로 생각하고 이 지역을 아직도 몽골의 중앙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는 초원의 푸른빛과 잘 구별되지 않는 넓고 푸른 밀밭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밀밭.몽골은 유목국가이지만 하르호린 주변에는 광대한 밀밭이 펼쳐진다. ⓒ 노시경


밀밭의 밀은 키가 작고 밀 주변에는 잡초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 넓은 평원의 밀밭에서는 잡초를 없애는 것도 큰 일일 것이다. 몽골의 맥주에도 들어가는 이 밀은 몽골의 평원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예상치 않은 밀밭의 끝없는 전개를 보면 자원 부국인 몽골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르덴 조 사원.108개의 불탑이 평원지대에 장대하게 이어진다. ⓒ 노시경


하르호린에 도착했음은 마치 성벽 같이 에르덴 조(Erdene Zuu) 사원을 둘러싼 불탑, 스투파 108개를 만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나는 에르덴 조 사원을 가기 전에 700여 년 전 몽골의 수도였던 이곳이 세계 속에서 가장 번창하였음을 알려주던 상징물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르호린의 궁궐 문 앞에 은으로 만든 은나무였다. 당시 하르호린에서 큰 행사나 명절 때에 은나무 꼭대기의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되면 은나무를 칭칭 감고 있던 4마리 용의 입에서는 마유주인 아이락(аираг)과 함께 곡주, 포도주, 꿀 술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은나무아이락, 곡주, 포도주, 꿀물이 흘러내리던 번영의 상징이었다. ⓒ 노시경


물론 당시의 은나무는 없어졌지만 그때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여 하르호린 입구에 은색으로 만들어진 복제품이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당시 이 은나무는 놀랍게도 뭉케 칸(Möngke Khan, 재위 1251년~1259년) 당시 프랑스 파리 출신의 '빌리헬름 데 보쉬예(Veligelm De Bushe)'라는 금속공예가가 만든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 성당에 사용하던 성물을 만들던 장인이었는데 몽골군의 동유럽 원정 때 베오그라드에서 몽골군에게 포로로 잡힌 인물이었다.

은나무 천사상.은나무 꼭대기의 천사상이 나팔을 불면 용들이 술을 뿜어냈다. ⓒ 노시경


14세기에 프랑스의 기술자가 이곳 몽골의 한복판까지 와서 은나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만들었던 몽골은 새로운 정복지의 기술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유라시아의 교류를 통해 이 기술들을 세계 각지에 전파하고 있었다. 서양 공예품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 은나무는 당시 글로벌한 몽골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작품 자체가 몽골제국의 힘을 상징하고 있어서 현재도 몽골 지폐의 문양으로 들어가 있다.

은나무의 용은나무 가지 위의 네 방향을 장식한 용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노시경


지금은 단지 외형만 복원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정교한 기계장치를 움직여서 은나무를 움직였을 것이다. 풍요한 물산 속에서 번창하던 몽골을 과시하던 이 상징물은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이 몽골의 내분을 평정하던 시기에 약탈로 인해 해체되어 버렸다. 나는 이 은나무를 기계장치까지 복원한 후 하르호린을 찾는 여행자들을 만나게 하면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은나무를 지나자 하르호린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13세기에 칭기스칸의 아들이자 몽골의 2대 칸인 오고타이 칸(Ogedei Khan)에 의해 수도로 정해진 하르호린에 드디어 들어선 것이다. 하르호린! 몽골 대제국의 흥망과 성쇠를 지켜보았을 성곽과 궁전은 보이지 않고 이제는 빈 터와 몇 개의 유물만이 눈에 띈다.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대제국의 수도는 신기하리만큼 텅 빈 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황량하게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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