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놈'과 같이 살기로 했다
제주살이 5년 차, '하얀털 오골계' 보금자리 공사
집짓기는 정말 재미있다. 서울에서는 꿈도 꿀 수 없지만 제주 시골에서는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노동의 효과가 대단하다. 일 좀 하고 나면 금방 집이 하나씩 생기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제주 쑥대낭(삼나무)으로 정자도 짓고, 창고 겸 화장실도 지었다. 올 가을에는 우연찮게 닭장을 지었다.
닭을 키우고 싶었으나 아내의 완강한 반대로 못 키웠다. 냄새 때문이다. 그래도 닭은 여간 필요한 게 아니다. 닭은 풀을 잘 뜯어 먹는다. 농약을 치지 않는 우리 감귤 과수원에는 풀이 엄청나게 많다. 감귤 농사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은 풀을 베어내는 일이다.
옆에 사는 친구가 닭은 키우면 '일석삼조'라고 했다. 계란과 닭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고, 풀을 베지 않아도 돼서 좋고, 닭이 돌아다니며 똥을 싸대니 거름 따로 하지 않아서 좋은 게 그것이란다. 넓은 닭장에서 키우면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1석 3조' 닭 키우기
햐얀털 오골계를 키우는 친구가 양계를 접는다고 했다. 하얀털 오골계는 처음 봤다. 이쁘기도 했다. 벼슬 색도, 눈 색도 이쁘다. 애완용으로 키워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일부러 구하려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잡아서 팔아버리기 직전에 전화를 했다. 이쁘다는 말에 아내도 별 반대가 없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장탉 1마리 암탉 4마리 모두 5마리를 사서 넓은 양계장을 가진 친구에게 맡겨두었다. 맡겨 둔 닭을 데리고 오려면 닭장이 있어야 한다. 닭장을 짓자.
어떤 닭장을 지어야 하나? 이럴 때는 인터넷에 물어보면 참고할 게 마구 나온다.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먼저 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았다. 그리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 세우기가 제일 중요하다. 반듯이 다듬은 주춧돌이 아니어서 기둥 아래를 돌 생김에 따라 깎는 글겅이를 했다. 도구가 없어 눈짐작으로 하려니 무거운 기둥을 몇 번이나 세웠다 눕히기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걸려 기둥을 세우고 아랫도리를 끼워 맞췄다. 기둥을 수직으로 세우기가 만만치 않다. 부목을 대어 겨우 수직으로 세웠다. 힘든 작업이었다. 조수 하나 있으면 일이 훨씬 수월할 텐데... 얼떨결에 닭 키우기를 허락해 버려 마뜩잖아 하는 아내가 도와줄 리 없다.
들보와 도리를 올리고 들보 위에 동자주(들보 위에 세우는 짧은 기둥)를 세우고 마루 도리를 올리는 데 며칠 걸렸다. 월동 배추와 무를 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후 4시 이후에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 '낚시 타임'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에 해가 걸리는 시각이 제주에서 가장 물고기가 잘 무는 때다. 공사 진척은 이래저래 더디기 짝이 없다.
동자주는 각재를 썼다. 네모진 것 하나쯤은 있어야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라한 닭장 지으면서 별 멋을 다 내려한다. 이제 골조가 완성되었다. 반은 끝난 셈이다.
골조에 각 부재를 붙이면 된다. 지붕은 스티로폼을 사이에 끼운 판넬을 사용하기로 했다. 집에서 잘 보이는 벽은 나무껍질로 막았다. 통나무 겉을 켜서 만들었다. 나머지 벽은 합판으로 막았다. 옆 윗면의 삼각형 면인 박공은 벽과 수직되게 세로로 막았다. 앞면은 철망을 쳤다. 남쪽 벽 윗쪽은 채광창을 달았다. 닭장도 밝아야 한단다.
닭장 내부에 꼭 있어야 할 것은 알을 낳을 수 있는 포란장과 닭이 날아올라 오를 수 있는 횃대다. 집 뒤 숲에 가서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잘라 와 횃대를 달았다. 모두 3개를 달았다. 가장 낮은 횃대는 고정하지 않았다. 알 꺼낼 때 들어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포란장은 약간 어두워야 하고 포근해야 한다. 부드러운 마른 풀이나 톱밥을 넣으면 포근해진다. 위를 막으니 약간 어두워졌다. 너무 인공적인 모습이어서 닭이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거품재를 사용하여 차가운 북풍이 못들어오게 북쪽 틈새를 막았다. 벌써 닭장 짓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사흘 안에 다 지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면 잡다한 할 일이 많다.
그 사이에 감귤이 익어가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따기 시작하는 극조생감귤이다. 농약을 치지 않아 거머튀튀하다. 많이 달리지도 않았다. 보통 감귤밭의 반 정도 밖에 안 된다. 생김은 형편 없어도 맛은 좋은 편이다. 11월 초엔 모두 딴다. 극조생이 끝나면 조생이 익기 시작한다. 1월 말까지 우리집에선 끊임없이 감귤을 따서 먹는다. 난 이때가 젤 좋다.
내부 시설까지 다 하고 나니 내가 봐도 근사하다. 이런 집에는 당호가 있어야 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닭장 짓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흰 오골계를 '겉과 속이 다른 놈'이라 표현한게 생각났다. 그렇다면 집 이름은?? 표리부동헌(表裏不同軒)이면 딱이다 싶었다. 적당한 나무에다가 굵은 유성잉크펜으로 멋들어지게 썼다. 써서 달고 보니 그럴 듯하다. 추사 김정희가 죽기 직전에 썼다는 서울 봉은사의 판전(板殿)글씨와 닮았다나 어쩐다나. 아내가 비아냥 거린다.
내친 김에 마루도리를 걸치면서 써넣어야 하는 상량문도 쓰기로 한다. 뭐라고 쓸까? 또 사서 고민이다. 사서 하는 고민은 고민스럽지 않고 즐겁다. 닭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미션은 알 낳기다. 닭에게 알을 많이 낳아 달라고 쓰면 되겠다. 그런데 순하게 말해선 듣지 않는 게 요즘 세태다. 공갈 협박이라도 쳐야 겨우 말듣는다. 그렇다면?? "닭 너희들, 알 낳지 않으면 잡아 먹어버린다"로 하면 되겠다.
우리글로 쓰면 닭이 물 먹고 천장을 쳐다 보다 그걸 보고 겁에 질려 더욱 알을 낳지 못할 것 같아 어려운 한자로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오래된 한문 실력을 과시해보기로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한문으로 번역이 안 된다.
불현듯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어버릴거다"라는 구지가가 떠올랐다. 맞다, 이거다. '닭아 닭아 알을 낳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어버린다'(鷄乎鷄乎卵其産也若不産燔灼而喫也)로 결정했다. 또 일필휘지, 판전과 비슷한 글씨체로 써 넣었다. 이런 상량문보고도 알 낳지 않으면 진짜로 잡아먹어버릴 거라고 거들먹거리면서.
이렇게 해서 완공된 우리 닭장 모습이다. 눈에 크게 띄지 않은 게 좋을 듯하여 진초록 페인트를 칠했다. 감귤잎보다 덜 진해서 아주 감춰지진 않는다. 감귤들이 익어가면서 저 닭장을 보고 한마디씩 하는 것 같다.
"저렇게 당호로 조롱 당하고 상량문으로 위협 받고도 알을 낳을까? 낳으면 바보지."
이제 닭이 집에서 나와 감귤밭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닭장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쳐야 가능하다. 울타리가 완성되는 날, 친구집에 맡겨둔 '표리부동닭'을 데리고 올 거다.
그나저나 상량문 때문에 걱정이다. 협박조의 상량문 때문에 알을 낳지 않으면 어쩌지? 마루도리를 없애버릴 수도 없고...
닭을 키우고 싶었으나 아내의 완강한 반대로 못 키웠다. 냄새 때문이다. 그래도 닭은 여간 필요한 게 아니다. 닭은 풀을 잘 뜯어 먹는다. 농약을 치지 않는 우리 감귤 과수원에는 풀이 엄청나게 많다. 감귤 농사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은 풀을 베어내는 일이다.
옆에 사는 친구가 닭은 키우면 '일석삼조'라고 했다. 계란과 닭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고, 풀을 베지 않아도 돼서 좋고, 닭이 돌아다니며 똥을 싸대니 거름 따로 하지 않아서 좋은 게 그것이란다. 넓은 닭장에서 키우면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1석 3조' 닭 키우기
▲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오골계흰 오골계 5마리. 털은 희지만 속은 검다. ⓒ 신병철
햐얀털 오골계를 키우는 친구가 양계를 접는다고 했다. 하얀털 오골계는 처음 봤다. 이쁘기도 했다. 벼슬 색도, 눈 색도 이쁘다. 애완용으로 키워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일부러 구하려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잡아서 팔아버리기 직전에 전화를 했다. 이쁘다는 말에 아내도 별 반대가 없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장탉 1마리 암탉 4마리 모두 5마리를 사서 넓은 양계장을 가진 친구에게 맡겨두었다. 맡겨 둔 닭을 데리고 오려면 닭장이 있어야 한다. 닭장을 짓자.
어떤 닭장을 지어야 하나? 이럴 때는 인터넷에 물어보면 참고할 게 마구 나온다.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먼저 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았다. 그리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 세우기가 제일 중요하다. 반듯이 다듬은 주춧돌이 아니어서 기둥 아래를 돌 생김에 따라 깎는 글겅이를 했다. 도구가 없어 눈짐작으로 하려니 무거운 기둥을 몇 번이나 세웠다 눕히기를 반복했다.
▲ 닭장 골조며칠 걸려 기둥을 세우고 들보와 도리를 올리고 마루도리까지 올렸다. ⓒ 신병철
하루 종일 걸려 기둥을 세우고 아랫도리를 끼워 맞췄다. 기둥을 수직으로 세우기가 만만치 않다. 부목을 대어 겨우 수직으로 세웠다. 힘든 작업이었다. 조수 하나 있으면 일이 훨씬 수월할 텐데... 얼떨결에 닭 키우기를 허락해 버려 마뜩잖아 하는 아내가 도와줄 리 없다.
들보와 도리를 올리고 들보 위에 동자주(들보 위에 세우는 짧은 기둥)를 세우고 마루 도리를 올리는 데 며칠 걸렸다. 월동 배추와 무를 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후 4시 이후에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 '낚시 타임'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에 해가 걸리는 시각이 제주에서 가장 물고기가 잘 무는 때다. 공사 진척은 이래저래 더디기 짝이 없다.
동자주는 각재를 썼다. 네모진 것 하나쯤은 있어야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라한 닭장 지으면서 별 멋을 다 내려한다. 이제 골조가 완성되었다. 반은 끝난 셈이다.
골조에 각 부재를 붙이면 된다. 지붕은 스티로폼을 사이에 끼운 판넬을 사용하기로 했다. 집에서 잘 보이는 벽은 나무껍질로 막았다. 통나무 겉을 켜서 만들었다. 나머지 벽은 합판으로 막았다. 옆 윗면의 삼각형 면인 박공은 벽과 수직되게 세로로 막았다. 앞면은 철망을 쳤다. 남쪽 벽 윗쪽은 채광창을 달았다. 닭장도 밝아야 한단다.
▲ 완성된 닭장지붕을 이고 벽을 막았다. 단칸 맞배지붕 호화판 닭장이 되었다. ⓒ 신병철
닭장 내부에 꼭 있어야 할 것은 알을 낳을 수 있는 포란장과 닭이 날아올라 오를 수 있는 횃대다. 집 뒤 숲에 가서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잘라 와 횃대를 달았다. 모두 3개를 달았다. 가장 낮은 횃대는 고정하지 않았다. 알 꺼낼 때 들어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포란장은 약간 어두워야 하고 포근해야 한다. 부드러운 마른 풀이나 톱밥을 넣으면 포근해진다. 위를 막으니 약간 어두워졌다. 너무 인공적인 모습이어서 닭이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거품재를 사용하여 차가운 북풍이 못들어오게 북쪽 틈새를 막았다. 벌써 닭장 짓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사흘 안에 다 지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면 잡다한 할 일이 많다.
그 사이에 감귤이 익어가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따기 시작하는 극조생감귤이다. 농약을 치지 않아 거머튀튀하다. 많이 달리지도 않았다. 보통 감귤밭의 반 정도 밖에 안 된다. 생김은 형편 없어도 맛은 좋은 편이다. 11월 초엔 모두 딴다. 극조생이 끝나면 조생이 익기 시작한다. 1월 말까지 우리집에선 끊임없이 감귤을 따서 먹는다. 난 이때가 젤 좋다.
▲ 횃대와 포란장횃대를 3개 걸치고 포란장을 두개 만들었다. 알 낳으라고. ⓒ 신병철
내부 시설까지 다 하고 나니 내가 봐도 근사하다. 이런 집에는 당호가 있어야 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닭장 짓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흰 오골계를 '겉과 속이 다른 놈'이라 표현한게 생각났다. 그렇다면 집 이름은?? 표리부동헌(表裏不同軒)이면 딱이다 싶었다. 적당한 나무에다가 굵은 유성잉크펜으로 멋들어지게 썼다. 써서 달고 보니 그럴 듯하다. 추사 김정희가 죽기 직전에 썼다는 서울 봉은사의 판전(板殿)글씨와 닮았다나 어쩐다나. 아내가 비아냥 거린다.
내친 김에 마루도리를 걸치면서 써넣어야 하는 상량문도 쓰기로 한다. 뭐라고 쓸까? 또 사서 고민이다. 사서 하는 고민은 고민스럽지 않고 즐겁다. 닭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미션은 알 낳기다. 닭에게 알을 많이 낳아 달라고 쓰면 되겠다. 그런데 순하게 말해선 듣지 않는 게 요즘 세태다. 공갈 협박이라도 쳐야 겨우 말듣는다. 그렇다면?? "닭 너희들, 알 낳지 않으면 잡아 먹어버린다"로 하면 되겠다.
우리글로 쓰면 닭이 물 먹고 천장을 쳐다 보다 그걸 보고 겁에 질려 더욱 알을 낳지 못할 것 같아 어려운 한자로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오래된 한문 실력을 과시해보기로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한문으로 번역이 안 된다.
불현듯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어버릴거다"라는 구지가가 떠올랐다. 맞다, 이거다. '닭아 닭아 알을 낳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어버린다'(鷄乎鷄乎卵其産也若不産燔灼而喫也)로 결정했다. 또 일필휘지, 판전과 비슷한 글씨체로 써 넣었다. 이런 상량문보고도 알 낳지 않으면 진짜로 잡아먹어버릴 거라고 거들먹거리면서.
▲ 당호 : 표리부동헌털은 희지만 속은 검은 닭집이라 이렇게 지었다. ⓒ 신병철
▲ 완성된 닭장의 준수한 모습주변과 어울리게 진초록을 칠했으나 너무 밝다. ⓒ 신병철
이렇게 해서 완공된 우리 닭장 모습이다. 눈에 크게 띄지 않은 게 좋을 듯하여 진초록 페인트를 칠했다. 감귤잎보다 덜 진해서 아주 감춰지진 않는다. 감귤들이 익어가면서 저 닭장을 보고 한마디씩 하는 것 같다.
"저렇게 당호로 조롱 당하고 상량문으로 위협 받고도 알을 낳을까? 낳으면 바보지."
이제 닭이 집에서 나와 감귤밭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닭장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쳐야 가능하다. 울타리가 완성되는 날, 친구집에 맡겨둔 '표리부동닭'을 데리고 올 거다.
그나저나 상량문 때문에 걱정이다. 협박조의 상량문 때문에 알을 낳지 않으면 어쩌지? 마루도리를 없애버릴 수도 없고...
○ 편집ㅣ손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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