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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출연 미끼로 금품수수", 트로트가수 1인 시위

[인터뷰] 국회 앞 시위 나선 태민 한국방송가수회 회장, 방통위에 허가 취소 요구

등록|2015.10.22 17:50 수정|2015.10.22 17:50
30년 경력의 현역 가수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그가 앞에 세워 놓은 팻말의 문구가 꽤 자극적이다.

"방송 출연 미끼로 금품수수 웬말이냐!"
"허울 좋은 '성인가요전문방송' 표방으로 가수들은 다 죽는다!!"
"출연료 없는 노동 착취 악질 방송사를 방송통신위원회는 허가 취소하라!"

가수가 무슨 속사정이 있기에 1인 시위에 나서게 된 것일까?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문고뉴스> 사무실에서 태민 한국방송가수회 회장을 인터뷰 했다.

"출연료 미지급은 흔한 일, 2천만 원 요구하기도"

▲ 국회앞에서1인 시위에 나선 태민 회장 ⓒ 추광규


- 1인 시위는 언제부터 무슨 일 때문에 시작하게 된 것인가.
"지난 19일(월)부터 1인 시위에 나섰다. 제가 시위에 나선 것은 지난 수년간 트로트 가요계가 잘못된 성인가요방송 채널의 행태 때문에 무너지고 있어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현역 가수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제가 회장을 맡고 있기에 대표로 나서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 성인가요 전문 방송의 행태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가장 먼저 성인가요 전문방송사들이 가수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가수들은 노래를 부르고 출연료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프로들이다. 프로가 응분의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한 건데 이들 성인가요 전문방송사들이 출연료 자체를 안 준다.

물론 100% 다 안 준다는 게 아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지자체 행사를 방송사에서 하게 되면 보통 3000만~5000만 원을 받는다. 그 금액 안에 가수들 출연료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출연 가수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이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성인가요 전문방송사들은 지자체 행사를 할 경우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는 기성 가수, 이른바 인기 가수에게만 어느 정도의 출연료를 주고 있다. 물론 그 액수는 공중파 방송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더 심각한 문제는 인기가수에게 주는 돈의 상당 부분을 신인이나 무명 가수한테 받아서 준다고 한다. 쉽게 말해, 신인가수나 무명가수는 방송국에 돈을 내고 얼굴을 팔고, 방송국은 그 돈을 받아서 인기 가수들에게 출연료로 준다. 가수들의 노동의 대가인 출연료를 이런 식으로 지급해도 되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백 보 양보해서 만약 어떤 가수가 자신을 알리기 위해 방송에 출연만 해도 좋다면서 출연료를 안 받겠다고 말은 할 수 있어도, 출연을 위해 돈을 낸다면 문제가 있다. 노동을 하기 위해 오히려 회사에 돈을 낸다는 것은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가요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껏 참아왔는데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소액이지만 출연료를 지급했었다. 케이블 TV라도 한두 곡 부르면 10만~2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 신인 가수들에게는 '얼굴 알릴 기회'라는 구실로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지금 신인 가수들은 되레 돈을 내고 출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신인 가수가 성인가요 전문방송에 출연하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의 돈을 건넨다는 것인가?
"우리 협회 소속 가수들의 증언을 종합을 해보면 30만 원부터, 50만 원도 있고 100만 원도 있다고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예 출연 횟수를 정해 놓고 목돈이 오고간다는 데 있다. 즉 성인가요 전문 방송 출연 횟수를 10회 내지 20회 정도 보장하고, 1000만~2000만 원 정도의 목돈이 오고 간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가 특히 심하지만 다른 케이블TV라고 이 같은 잘못된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큰 집이 그렇게 하면 작은 집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덜 할 뿐이지 출연을 대가로 돈이 오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성인가요 방송사들이 모든 가수에게 출연료를 다 안 준다는 것은 아니다. 신인들에 한해서 이런 관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수뿐 아니라, 외주제작사에도 '송출료' 수수

- 성인가요 방송사는 외주제작 업체들에게 어떤 명목으로 송출료를 받나?
"말 그대로 송출료다. 자신의 채널을 통해 방송을 내보내 준다는 명목이다. 메인 방송사에서는 외주 업체에 제작을 맡길 때에는 어느 정도 제작비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성인가요 전문방송에서는 제작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외주 업체에 제작을 의뢰하면서 제작비를 주는 대신 송출료라는 명목으로 200만~300만 원을 받는다."

- 외주 제작업체들은 왜 그런 행태를 받아들이나?
"외주 제작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송출 채널이 있어야만 한다. 성인가요 전문방송사들이 송출료를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이 지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신인가수에게 전가하고 있다. 외주 제작사들도 제작 비용과 수익이 있어야 하기에, 출연을 희망하는 가수들에게 협찬금 내지는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이는 합법을 가장한 명백한 불법이다."

▲ 국회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는 태민 회장 ⓒ 추광규


- 이런 문제가 신인 가수들의 경우 이 같은 문제로 해서 어떤 피해들이 발생하고 있는가.
"장기 출연을 미끼로 목돈을 건네주는 가수들의 경우에는 집을 팔아서 갖다 바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이로 인해 가수 한다고 나섰다가 가정이 깨졌다는 이야기도 실제로 들었다.

성인가요 전문방송사의 역할이 무엇인가. 실력 있는 가수를 발굴해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할 텐데, 누가 더 돈이 많이 있는지 그리고 누가 돈을 요구하면 더 잘 줄 것인지만 셈하고 있다. 제 표현으로 이런 방송사는 '쓰레기 방송사'라고 부르고 싶다.

저도 가수 생활한 지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동안 저는 단 한 번도 돈을 주고 출연한 적이 없다. 그래서 1인 시위에 아무런 부담 없이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제가 성인가요 전문방송사들의 전체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질 좋은 몇 개의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인기 가수들이 끼어 있다고 해서 꼭 좋은 프로그램은 아니다. 무명 가수들이 출연했더라도 짜임새 있는 구성 등으로 얼마든지 좋은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되길 원한다."

-성인가요 전문방송에 돈을 주고 출연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단순하다. 신인가수들의 경우 자신의 곡을 알릴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공중파 방송의 경우 트로트 가수들이 방송을 탈 수 있는 프로그램은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 '6시내고향'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이들 프로그램은 유명 가수들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신인가수는 음반을 냈는데 알릴 곳이 없다. 이 상황에서 성인가요 전문방송이라는 타이틀에 이끌려 돈을 주고서라도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는 것이고 또 이를 악용하는 게 성인가요 전문방송사다.

현재 음반시장은 아무나 음반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수로서 역량이 안 되는 사람은 기념 음반 발매로 끝나야 하는데 직업 가수를 꿈꾸게 된다. 일부 사람들이 이들을 부추겨서 프로 가수로 데뷔시키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자신들은 잘한다고 하겠지만, 가수로서의 기량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1년에 수백 명 가량 가수로 나서면서 경쟁이 붙을 정도라 자신을 알리는 문제가 현재는 굉장히 심각하다."

실력보다 '돈', 트로트 가요계 경쟁력 약화로

- 1인 시위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성인가요 전문방송사들이 최소한 외주 제작은 원칙대로 하라는 것이다. 자회사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외주 제작을 맡기더라도 출연료를 투명하게 관리하라는 것이다.

또 외주 제작 업체들 경우 영세해서 출연료를 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돈을 받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실력이 안 되어서 출연이 불가능하다면 이해를 하지만, 돈을 받고 무분별하게 출연시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지자체에서 행사를 따오면서 수수료를 받으면 모든 가수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다 빼버리고 사흘 전까지 설거지 하다 나온 아줌마 가수를 돈을 받고 띄워주기 위해 1번에 넣어 놓고, 실력있는 가수들은 기다리게 하면 되겠느냐.

돈을 내고 몇 차례 또는 몇십 회를 연속적으로 출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기하는 가수가 많은데 그런 출연이 계속되면 누가 봐도 안다. 방송사는 돈을 받은 만큼 횟수를 채워줘야 하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이제는 종식되어야만 할 것이다.

저 같은 경우 기회가 안 되어서 기다리라고 한다면 영원히라도 기다릴 수 있다. 또 그렇게 되면 가수들끼리 실력으로 경쟁하고 열의가 생겨서 우열이 가려질 것이다. 또 이 같은 선의의 경쟁으로 대중에게는 좋은 가수들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제가 얼마 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서빙하는 아줌마가 출연한 가수를 놓고 비웃더라. '아무나 가수를 할 수 있구나'라는 비아냥이었다. 얼굴이 뜨거웠다. 트로트 가수라는 게 창피해서 어디 가서 제가 트로트 가수라고 먼저 소개하지 않게 되더라.

그래서다. 성인가요 발전을 위한다는 미명을 쓰면서 뒤로는 금품이 왔다 갔다 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은 이제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가수들이 노력하고 대중들에게 좋은 방송으로 다가간다면 광고가 붙지 말라고 해도 붙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돈 몇 푼에 눈이 멀어 가수들을 무분별하게 출연시키다 보니 방송 질이 떨어지고, 또 그렇게 되니 광고가 붙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해 노래를 불러 생계를 이어가야 할 가수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돈을 받고 출연을 시키는 행태를 지금이라도 없애준다면 전 가수들에게 사랑받는 방송사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성인가요 전문 케이블 방송사의 상무는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금품수수 의혹에 선을 그었다.

그는 신인가수에게 돈을 받고 출연을 시킨다는 의혹에 대해 "그런 적도 없고 저희는 가수들한테 돈을 받는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외주 제작사에게 송출료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다는 문제 제기와 관련해서는 "송출료라는 개념은 없으며 이해하셔야 할 부분이 많다"고 부인했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시장조사과 담당자는 돈을 받고 방송에 출연시키는 게 위법이 아니냐는 질문에 "방송사업자의 불공정행위는 방송법 제85조 2항 금지의 행위에서 규제하고 있는데 이 사안은 방송사업자와 개인사업자인 외주제작업체나 가수들 사이의 문제로 방송법상의 규제대상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 서비스업감시과 담당자는 외주제작업체로부터 송출료 명목으로 돈을 받는 문제와 관련해 "외주제작 업체들로부터 송출료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고 한다면 제반사정을 고려해 자세히 검토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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