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장례 때 본드한 소년 '또라이' 목사 만나 달라졌다
[소년의 눈물 15화] 2014년 아쇼카 펠로우, '세상을 품은 아이들' 대표 명성진 목사
▲ 지난 8일 부천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열린 '세상을 품은 아이들이 부르는 희망 노래' 챔프 공연에서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는 명성진 목사. ⓒ 조호진
사단법인 '아쇼카 한국'은 2014년 '펠로우'로 세월호 유족 등의 심리치료를 돕고 있는 정혜신(52) 박사와 '세상을 품은 아이들'(아래 세품아, 부천시 오정구에 있는 위기 청소년 공동체) 대표인 명성진(47) 목사를 선정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적 민간단체 아쇼카 재단은 사회 변화를 이끈 혁신가를 '펠로우'로 선정하고 3년간 생활비를 지원한다. 목사가 펠로우로 선정된 건 처음이다. 아쇼카 한국은 명성진 목사를 펠로우로 선정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범죄 청소년들의 사회 재적응을 위한 엄청난 투자가 이뤄져 왔음에도, 한국의 청소년 재범률은 37%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높다. 명성진 펠로우는 (인천과 부천) 두 도시에서 청소년 본드 중독을 탁월하게 해결한 성공 사례를 밑거름 삼아, 청소년 사법 시스템 변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서 판사·지방 정부와 청소년 범죄 관련 기관들과의 협력 모델을 만들고 이를 한국 정부의 첫 사회혁신채권의 첫 성공 모델로 만들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명성진 목사는 '소년의 눈물' 14화의 주인공 MG밴드 전한빈군이 '또라이 목사'라며 찬사를 보낸 그 사람이다(관련 기사 : "자살한 엄마 보고 싶어요" 슬픕니다, 이 노래).
청소년공동체 '세품아', 이 목사가 신뢰받는 이유는?
명성진 목사는 바빴다. 교회 때문은 아니다. 교인은 많지 않다. 바쁜 건 위기 청소년들 때문이다. 법원에서 위탁한 보호소년과 MG(Miracle Generation)밴드 멤버와 직원 등 40여 명이 함께 사는 청소년공동체 세품아를 운영하는 건 작은 일이 아니다.
최근엔 2~5층까지 4개 층 내부 공사를 진행했다. 아이들의 생활 공간과 사무 공간은 열악하고 불편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그는 "내 새끼들이 힘들게 사는 게 속상해서" 2억5000만 원 규모의 공사를 2000만 원을 갖고 시작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 중단이 잦았다. 가까스로 마무리 공사 중인데, 아쇼카에서 받은 생활비를 공사비에 보탰는데도 부채 1억 원이 생겼단다.
그가 바쁜 건 운영비 마련 때문이다. 들어오는 후원금은 많지 않다. 주요 수입원은 그의 강연료다. 교회·단체 등의 설교와 강연으로 운영비를 충당한다. 지난 9월에는 몸이 아파서 강연을 쉬어서 이번 달 강연 일정이 빡빡하다. 운영비 마련은 그의 몫이지만 따로 월급은 없다. 소년들과 직원들은 자신들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지난 13일 오후 10시에 인터뷰 약속을 겨우 잡았다. 명성진 목사는 소년들과 금요 철야예배 중이었다. 소년원 예배에 여러 번 참석했다. 소년원생들은 졸거나 딴전 피우거나 장난을 쳤다. 설교를 듣는 소년은 많지 않았다. 설교보다 간식에 관심이 컸다.
그런데 세품아 소년들은 달랐다. 예배 끝난 뒤에는 성경 공부까지 했다. 세품아의 공동체 운영의 근간은 기독교 신앙이다. 예수처럼 알면서도 당해주고, 배신해도 믿어주고, 뛰쳐나가도 돌아오기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는 "사회혁신가의 롤모델인 아쇼카 펠로우로 선정됐지만 나는 목사"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목사란 망가진 세상과 병든 아이를 회복시키는 사람"
▲ 챔프 공연에서 세상을 품은 아이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명성진 목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 조호진
- 당신에게 목사란?
"아쇼카 펠로우에 선정된 사회혁신가의 역할도 있지만 나의 본질은 목사다. 목사의 사명은 인간 욕망에 의해 파괴된 자연과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70억 개의 욕망이 지구를 흔들고 있다. 목사로서 나의 목표는 이 세상에 의해 망가지고 깨지고 병든 아이들을 돌보고 회복시키는 것이다."
- 위기 청소년을 돌보게 된 계기는?
"2000년, 전도사 시절이었다. 교회 집사 아들인 소년(조폭)이 싸우다 경찰에 잡혀갔다. 엄마 대신 경찰서에 찾아가 데려왔다. 동네 소년들도 교회 근처에서 자주 싸웠다. 싸우는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음식을 사주며 친하게 지냈다. 어른들은 소년들을 무서워했지만 나는 소년들이 불쌍했다. 소년들은 나를 종종 찾아왔다. 내 곁엔 언제나 소년들이 있었다."
- 공동체를 시작한 동기는?
"2007년이었다. 소년이 차 밑에서 자고 있었다. 아는 소년이기에 이름을 불렀더니 도망갔다. 소년의 아빠는 시각장애인이었고, 엄마는 오랜 지병(강직성 척추염)을 앓았고,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신장병을 앓았다. 노숙 생활을 하는 소년을 찾아내 집에 데려왔다.
소년을 설득해 중학교에 데려갔더니 선생이 '이놈 데리고 오면 뭐합니까! 또다시 튀어나갈 텐데…'라며 고압적으로 대했다. 소년은 학교에서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소년을 데리고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을 데리고 살기 시작했다."
- 같이 살면서 문제는 없었나?
"소년은 초등 3학년 때부터 가출과 절도, 폭력 등으로 소년원에 갔다 오는 등 동네 아이들에게 비행을 전수한 유명한 아이였다. 이 소년은 세품아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나가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본드 중독과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일곱 차례나 입원했다. 그런 와중에 소년의 아빠가 비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년은 장례식장에서도 본드를 했다. 본드 중독은 그만큼 심각하다.
소년은 아빠의 죽음을 통해 본드를 끊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병든 엄마와 어린 두 동생을 책임져야 했다. 그때가 2년 전이었는데 당시 내 월급은 없었고 선생들은 월급으로 30만 원을 받았었다. 소년을 생활교사로 채용해 100만 원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은 가족 공동체였기에 가능했다. 모두들 자기보다 더 힘든 식구를 배려했다. 이런 공동체 덕분에 소년은 빠르게 회복됐고 대학에 진학해 청소년학을 배우고 있다. 지금은 세품아 아이들의 따뜻한 형이자 좋은 선생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도 본드 흡입한 소년
▲ 본드에 취한 소년들. ⓒ 세상을 품은 아이들
-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겠다.
"그 아이는 1년 동안 본드를 끊고 잘 지냈는데, 소년원에 갔던 친구가 세품아에 다시 돌아오자 본드와 방황을 다시 시작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위기 청소년을 돌보는 데 성공한 목사로 이름을 알려진 시기였는데 허물어졌다. 실패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힘들었다. 내겐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지만 유명해지려는 욕망이 마음 밑바닥에 숨어 있었다.
당시엔 재범률과 본드 중독 줄이기 실적에 관심이 컸다. 실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사람보다 자신들을 이해해주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아버지'를 원했다. 아이들은 속물인 나를 변화시켰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재범률에 관심을 끊었다. 아이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재범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의 미래다. 재범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이들이 내 등에 칼을 꽂고 가도, 아픈 시간을 견디면서 기다려주고 손을 잡아주면 반드시 돌아온다. 공동체는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집단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가족'이란 걸 깨달았다. 버림받고 상처받은 아이들 곁에 있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줬더니 아이들이 회복됐다. 그제야 같이 편해졌다. 아이들은 변했다. 어쭙잖은 잔소리와 훈육으로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재수없어 할 뿐이다."
- 소년원 등의 소년보호시설과 세품아의 차이는?
"소년원과 소년보호시설에서 생활할 때 위기 청소년들은 변한 척을 한다. 하지만 사회에 복귀하면 거의 다 원점으로 돌아간다. 세품아에 들어온 아이 중에 착실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가 있으면 오히려 불안하다. 깽판 치며 살아온 아이들이 깽판 치는 건 정상이다. 살아온 방식과 습관이 있는데 그걸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시간이 필요하다. 회복하려면 망가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은 필요하다. 잠시 돌봐주는 방법으론 한계가 있다."
- 소년들을 회복시키는 좋은 방법은?
"위기 청소년에겐 문신과 비행, 폭력 등 하위문화가 있다. 아이들은 그 문화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폭력에 중독돼 있다. 부모, 특히 아빠에게 맞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폭행 청소년이 된다. 소년들을 회복시키는 좋은 방법은 하위문화와 단절시키는 것이다. 3대 핵심은 '같이 있어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법원의 처분으로 세품아에 위탁된 보호소년들은 하위문화와의 단절과 3대 핵심요소가 제공되면서 치유와 회복을 넘어 꿈과 희망을 갖게 된다. 해답은 공동체다. 아이들은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아픈 아이다. 가출한 게 아니라 탈출한 것이고, 쓰레기가 아닌 자원이다. 학교와 소년원 등은 아픈 아이를 잘 돌봐주지 않는다. 관리하거나 방치하거나 외면한다. 학교와 소년원의 각종 룰은 관리 시스템이다."
세품아는 가족공동체 "서로 지켜주는 사이, 평생 함께 살아갈 것!"
▲ 챔프 공연을 마친 명성진 목사와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단체사진 ⓒ 조호진
- 세품아의 힘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이들을 관리하지 않는다. 다양한 아이들을 룰에 담을 수는 없다.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될 아이와 안아줘야 할 아이가 있다. 획일화된 룰을 강제로 적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함께 산다. 룰은 없지만 있다.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룰을 적용한다. 세품아의 취침 시각은 자정 혹은 새벽 1시다. 아이들의 문화를 반영했다.
세품아에는 세품아 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 있다. 싸움이 벌어지면 모두가 둘러앉아 싸움을 하거나 보면서 느낀 감정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눈다. 쪽팔려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과정을 통해 화해하고 더 친해진다. 아이들에겐 경험하지 못한 방식이고 낯선 방법이지만 효과가 있으니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갈등을 해결한다."
- 세품아는 어떤 공동체인가.
"세품아는 가족 공동체다. 소년원에선 주먹 센 사람이 중심이지만 세품아에선 형이 중심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엄마는 엄마니까, 형은 형이니까 존경하고 존중하며 따른다. 그게 가족이다. 소년원에선 살아남기 위해 센 척 해야 하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다. 어깨에 힘을 빼고 원래 자기 모습 그대로 푼수 짓도 하면서 자유롭게 지낸다.
가족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폐를 끼치는 사이 아닌가? 나는 어머니에게 폐를 끼치면서 살았다. 그러다 파킨슨병이 있는 어머니가 나에게 폐를 조금 끼치고 있다. 어머니는 폐를 끼치는 자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줬다. 가족공동체는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가족이란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다. 세품아 아이들은 내 새끼들이다. 당연히 평생을 가족으로 살 것이다."
- 세품아에는 몇 명이 살고 있나?
"인천지방법원이 위탁한 보호소년 13명, 세품아에서 살기로 한 위탁만료 보호소년 3명, MG밴드 멤버 등 30여 명의 소년과 직원 11명 등, 모두 40여 명이 함께 살고 있다."
과시용 후원금은 거절... 소년희망공장과 세컨드 찬스 추진
▲ 명성진 목사. ⓒ 조호진
- 운영비 마련에 어려움이 많겠다.
"소년들과 살다 보니 쫓겨났다. 현재의 건물로 옮기면서 가족이 살던 전셋집이 월셋집으로 바뀌었다. 집을 계속 줄이다 보니 2년 전에는 보증금 500만 원만 남았다. 네 식구가 밥 먹을 공간이 부족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융자로 빌라를 샀다. 고마운 것은 두 아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큰아들(21세)은 MG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고, 작은아들(19세)은 공동체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 후원 모금을 못 하는 것 같다.
"선한 뜻으로 후원하는 사람도 많지만 과시를 위해 후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시하는 사람들은 사진 촬영을 요구한다. 우리 아이들은 사진 촬영을 무척 싫어한다. 아니, 힘들어한다. 아이들이 행복해하지 않는 모금은 받지 않는다. 아이들이 '비굴하지 말자'고, '구걸하지 말자'고 한다. 그래서 내가 몸으로 때우면서 여기저기 다닌다."
- 전망은?
"김현수 목사(들꽃청소년세상 대표)가 좋은 아저씨 노릇 그만하라고 조언했다. 좋은 아저씨는 아이들과 살면서 작은 변화에 행복해하고, 가난을 괜찮다고 여긴다. 하지만 문제는 자기 품에 안은 아이들에서만 끝난다는 거다. 언제까지 '동네 아이들'만 품으려고 하느냐란 지적이었다. 우리 아이들 돌보기도 힘들어서 다른 동네 힘든 아이들을 외면했었다.
이 세상 아이들의 아픔을 회복시키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다음 뉴스펀딩을 통해 모인 기금을 바탕으로 '소년희망공장' 추진과 위기 청소년에게 기회를 주는 '세컨드 찬스 운동' 등을 계획하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번은 세품아 아이들과 함께 잔다. 아이들을 봐야 힘이 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지쳐 쓰러졌다가도 일어날 힘이 생긴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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