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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꼽사리' 아닌 아이들 보며 감동"

[동행취재] 제8회 <오마이뉴스> '더불어 졸업여행'

등록|2015.10.23 22:20 수정|2015.11.11 14:46

▲ <오마이뉴스>가 초청한 제 8회 '더불어 졸업식' 행사에 참가한 낙도-격오지의 '나홀로 졸업' 6학년 학생들이 전용안경을 끼고 4D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 이희훈


"누가 자꾸 뒤에서 등을 때리는 것 같아."

서울 성산동 4DX관에서 영화 <마션>을 보던 최바다(13, 흑산초 영산분교장)군이 모션 체어의 움직임을 느끼며 한 말이다. 바다를 포함해 '더불어 졸업식'에 참가한 아이들은 3D 안경을 낀 서로의 모습을 보며 낄낄대다 화성의 붉은 대지가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의자 아래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화성'에 모래폭풍이 일자 영화관 의자는 정신없이 흔들리고 등받이에선 진동이 계속됐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더불어 졸업식'에 참여한 아이들 모두 화성에 가 있는 셈이다.

"영화 보려면 왕복 3시간"

'더불어 졸업식'의 이튿날(22일)이 밝았다. 전남 신안에서 온 박건태(29) 교사는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최바다군과 함께 4D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흑산초 영산분교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박 교사는 지난 20일 바다와 함께 목포로 가 하룻밤을 묵은 뒤 21일 서울로 올라왔다. 이동 시간만 꼬박 6시간이 걸렸다.

박 교사와 바다가 사는 마을 근처엔 영화관은 물론이고 슈퍼마켓조차 없다. 바다는 문화생활을 하려면 목포 친척집까지 가야 한다. 박 교사는 "저도 4D 영화를 본 지 오래됐는데, 이번 기회에 바다와 함께 보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위도초 식도분교장에서 온 신현빈(13)군도 사정이 비슷하다. 현빈이와 함께 온 이진우(42) 교사는 "영화 보려면 왕복 3시간이 걸린다"며 "그나마 읍내에 소규모 영화관이 생겼기에 사정이 나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현빈이는 행사 첫날부터 에버랜드 방문만큼이나 영화관 관람을 기다려왔다. 영화관에 가는 날이 1년에 많아야 2번 정도인 탓이다.

아이들에게 '연례행사'인 문화생활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건과 올해 메르스의 여파로 기회가 더 줄어들었다. 전북 부안에서 온 주지승(36, 위도초 교사) 교사는 "지난 2년간 체험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영화관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위도초에 다니는 김원재(13)군과 서영진(13)군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가득했던 이유다. 차가 성산동에 가까워지자 최바다군은 "드디어 '마션'보러 간다"며 즐거워했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한 '더불어 졸업앨범'

▲ <오마이뉴스> 제 8회 '더불어 졸업식' 행사에 참가한 낙도-격오지의 '나홀로 졸업' 6학년 학생들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달려 나오고 있다. ⓒ 이희훈


▲ <오마이뉴스> 대회의 실에서 열린 제 8회 '더불어 졸업식' 행사에 참가한 낙도-격오지의 '나홀로 졸업'을 앞 둔 6학년 학생들. ⓒ 이희훈


오후 4시 10분 월드컵경기장역에 도착한 아이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사진기자와 함께 '졸업앨범'을 찍었다. '더불어 졸업식'은 아이들이 2박3일간 동고동락한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라는 의미에서 '졸업앨범'을 만들어 1~2권씩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더불어 졸업식'에 참여한 총 15명의 아이들 모두 독사진을 찍었다. 윤태근(13, 상평초 현서분교)군은 브이(V)자를 그리고, 최바다군은 바위 위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먼 산을 바라봤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아이들도 사진기자의 "나 비싼 사람이야"라는 너스레에 웃음이 터졌다. 그 때부터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사진촬영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뛰어!"

사진기자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둘'에 뛰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셋'에 뛰는 친구도 있었다. 저마다 뛰는 순간이 달라 사진기자의 외침과 함께 아이들의 '점프'도 계속됐다. 열 번 정도 뛰었을까. 윤태근군이 뛰는 순간 주머니에서 동전이 떨어지며 아이들은 지쳐하는 기색도 없이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피어났다. FC 서울 현수막이 걸린 월드컵경기장을 배경 삼은 15명 의 '점프' 단체사진이 사진기 안에 담겼다.

카메라를 향해 달려오거나 카메라를 위에서 바라보는 등 여러 콘셉트의 사진을 찍으며 '나홀로 졸업생'들은 새로운 '졸업앨범' 추억을 공유하게 됐다. 학교 선생님, 동생들과 찍었던 졸업앨범을 다른 학교의 동갑내기 친구들과도 찍으며 '더불어 졸업앨범'을 만들게 된 것이다. 전남 고흥에서 온 민유진(13, 녹동초 소록도분교장)양은 "선생님하고 졸업앨범 찍었는데, 친구들이랑 함께 찍으니까 더 좋다"고 수줍은 듯 말했다.

"더 이상 '꼽사리' 아니다"

4DX관에 들어온 아이들은 모션 체어에 앉아 영화에 몸을 맡겼다. 김원재(13, 위도초)군, 최바다군, 노정훈(13, 별방초)군은 나란히 앉아 영화를 '함께' 관람했다. 모션 체어의 움직임에 정훈이가 "아이고 깜짝이야"라며 놀라자 옆에 있던 바다가 정훈이를 달래줬다.

140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 지친 바다가 정훈이 어깨에 기대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원재와 바다는 어린이용 쿠션을 서로의 등받이로 옮기며 소란스럽지 않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24시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보다는 선생님 곁을 맴돌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든든한 저녁식사를 한 뒤 강화도 오마이스쿨로 이동했다. 김선재(41, 정선 벽탄초 교사) 교사는 "아이들이 더 이상 '꼽사리'가 아니란 걸 느꼈다"며 오늘 하루를 평가했다. 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동갑내기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어 사실상 본교와의 교류가 유일하다.

하지만 늘 '손님' 입장이었던 분교 아이들은 본교에 가서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나도 '꼽사리'처럼 위축돼 있었다. 본교 교사들에 둘러싸인 김 교사도 작아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김 교사는 "늘 '손님'이자 '꼽사리'였던 아이들이 손님도 꼽사리도 아닌 공간에서 '진짜 친구'를 만나게 된 것 같아 감동"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23일 아침 각자의 집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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