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 모인 대학생들 "가정사가 아닙니다, 국사입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대학생 신촌 발언대 후기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학생 신촌 자유 발언대 ⓒ 박은혜
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단체 평화나비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서울지부장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평화나비 활동을 통해 너무나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에는 국정교과서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의 검정 교과서 체계가 아닌, 정부에서 내는 유일한 역사 교과서를 내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교학사 교과서가 어떤 학교에서도 채택되지 않았다는 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으니까요.
"헐 이건 진짜 아니잖아"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광화문 이순신 동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날 경찰서로 연행되어야 했습니다. 정당한 요구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경찰의 모습에 분노했습니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제 요구가 길바닥에 패대기쳐질 정도로 하찮은 것인가요?
다행히 국정교과서 반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목소리를 키워 가기 위해 각 대학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OO학교 모임' 등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제가 재학 중인 서강대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서강인 모임'을 발의했습니다.
지난주부터 학교 곳곳에 설치된 무인 가판만으로도 1500명 이상의 서강대 학우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서명을 해 주셨고, 이번 주 무려 89분의 서강대 교수님들 역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셨습니다. 저 역시 지난 며칠간 아침 30분씩 정문 앞에서 국정 교과서 불복종을 선언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상징, 신촌에서 대학생들 모이다"
▲ 신촌발언대에 참가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손솔신촌발언대에 참가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손솔 ⓒ 박은혜
이렇게 날로 커져가는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거리의 상징, 젊음의 상징인 신촌에서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를 기획했습니다.
바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신촌 대학생 자유 발언대'입니다. 신촌에 있는 대학들인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 4개의 학교 총학생회에 제안하고, 각 학교의 학생들의 자유발언으로 '신촌 발언대'를 구성했습니다.
학교 곳곳에 '신촌 발언대'를 홍보하는 자보를 붙이고, 학우들의 참가 신청을 받고, 총학생회에 참가 제안을 하면서 느낀 것은,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여론이 이렇게나 뜨겁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에 들렀다가 자보를 보았다며 "서강대 아직 살아 있군요"라는 동문의 문자를 받기도 했고 매일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사다 주시는 학우도 여럿 만났습니다.
각 학교의 총학생회 역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 이화여대 총학생회장님은 직접 "신촌 발언대"에 참석하여 발언을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한다! 우린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마음을 담아 국정 교과서 풍선을 터뜨리고 있다 ⓒ 박은혜
10월 23일 금요일 저녁이 되고, 지난 한 주 동안 피곤하게 중간고사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의 대학생이 신촌 거리로 모였습니다. 직접 종이에 글씨를 써서 피켓도 만들고, '다양한' 교과서를 원하는 마음을 담아 각양각색의 풍선을 불고 손에 들었습니다. 서강대학교 동아리 대표, 연세대학교 새내기,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홍익대학교 학우 등 8명의 대학생이 발언을 위해 자리에 섰습니다.
교육부의 국정 교과서 강행 고시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는 말에 깔깔 웃기도 하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리석게 속아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다"는 역사를 어떻게 내 후배에게 가르칠 수 있느냐는 말에 다함께 분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국정 교과서를 막아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는 발언들이었습니다.
함께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고 외치는 구호에도 힘이 넘쳤습니다. 발언들의 마지막에는 국정교과서라고 쓰여 있는 풍선을 터뜨리면서 반드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할 수 있다"
▲ 신촌발언대_1 ⓒ 박은혜
'신촌 발언대'에 직접 참여한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지나는 시민분들 역시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연인과 함께 신촌에 나왔다가 한참 동안 함께 발언을 지켜보시는 분, "힘내라"며 박수 쳐주시는 분, 즐겁게 웃던 도중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분 등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나가던 한 시민분은 날씨가 춥다며 무릎담요 여러 개를 주고 가시기도 했습니다. 시험이 끝난 금요일, 즐겁게 친구들과 놀거나 휴식을 취하기도 귀한 시간에 신촌 거리에 나와 자리에 함께한 수십 명의 대학생들과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분들을 보니 "국정 교과서 철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서 저부터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4일 토요일에는 청년, 학생들이 모여 각자 쓴 대자보를 들고 행진을 합니다. 획일적인 국정교과서에 맞서는 각양각색 대자보들의 향연이 펼쳐질 것입니다. 31일에는 서울, 경기 지역 17개의 총학생회가 모여 꾸린 시국회의에서 발의하여 준비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전국 대학생 공동행동'을 진행합니다.
누군가는 "국정화 나도 반대하는데, 내가 반대한다고 뭐 바뀌나?"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자신있게 "네, 바뀌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국정 교과서에 대한 반대 열기는 정말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국정 교과서 저지를 위해 직접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한데 뜻을 모은다면, 정말로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 낼 것입니다. 대학생이 가장 먼저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을 것입니다. 하나의 획일화된 역사관을 강요하려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기 위해 함께 나선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하기 위한 대학생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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