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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편지와 함께 잠든 신해철... "매순간 남편 보고싶다"

1주기 추모식에 유족·동료·팬 500여명 참석... 유해, 야외 안치단에 봉안

등록|2015.10.26 02:12 수정|2015.10.26 02:12

▲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열린 '신해철 1주기 추모식 및 봉안식'에서 고인의 자녀들이 부인 윤원희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안성=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To 아빠, 아빠 사랑해요~♥ 뭐하고 계세요?'

가수 고(故) 신해철의 딸 지유(9) 양과 아들 동원(7)군이 아빠에게 쓴 편지 봉투에는 천진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 코끝을 시큰하게 했다.

25일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린 신해철 1주기 추모식에서 납골당에 있던 고인의 유해가 야외 안치단(추모 조형물)으로 옮겨져 영면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안치단에는 두 자녀의 편지를 비롯해 고인의 분당 작업실을 재현한 모형물, '내일은 늦으리' 카세트테이프, 고인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 상패가 함께 담겼다.

높이 2m, 너비 1.7m 크기의 오면체 모양으로 된 안치단은 딸이 그린 그림과 '빛이 나는 눈동자가 있어서, 우리를 보고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두 자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설계됐다. 여기에는 넥스트의 대표곡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의 가사가 새겨졌다.

유해가 옮겨지고 두 자녀는 고사리 손으로 흰 국화를 헌화했다.

1년 전 고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곡으로 널리 불린 '민물 장어의 꿈'을 넥스트의 트윈 보컬 이현섭이 선창하고 동료와 팬들이 합창했다.

▲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열린 '신해철 1주기 추모식 및 봉안식'에서 팬들이 고인의 영정사진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적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오후 1시30분 추모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팬클럽 '철기군' 등 가슴에 보라색 리본을 단 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온 한 여성 팬(38)은 "신해철 씨가 생전 좋아하는 색이 검은색, 빨간색, 보라색"이라며 "고인이 평소 검은색, 빨간색 의상을 많이 입어 세 번째로 좋아하는 보라색 리본을 달았다"고 말했다.

추모식은 송천오 신부가 집전한 미사로 시작됐다.

맨 앞자리에는 고인의 부인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부모, 누나가 자리했다. 두 자녀는 의젓한 표정으로 찬송가를 불렀고, 부인은 간간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유족뿐 아니라 이현섭, 김세황, 정기송 등 전·현 넥스트 멤버 10여 명과 '절친' 남궁연, '히든 싱어'의 신해철 편에 출연한 모창자들, 팬들까지 500여 명이 자리해 여전히 믿기지 않는 고인의 부재를 가슴 아파했다.

팬들은 영정사진에 마지막 메시지를 적어내려 가며 가시지 않는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마치 고인의 위로처럼 유토피아추모관 평화의광장에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가 크게 울려퍼졌다.

추모사 낭독에선 동료와 팬이 고인의 음악적인 업적에 감사하고, 독설가가 아닌 따뜻한 형이자 아버지였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워했다.

이현섭은 "신해철 님의 발자취는 한국 대중음악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형님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한다. 사랑했다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겠노라"고 말했다.

교복을 입고 낭독을 한 고교 3학년 팬 이승우 군은 신해철의 실물을 본 적도 공연을 간 적도 없다며 "우연히 넥스트의 '세계의 문'으로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줬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줬다.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그 뜻을 잊지 않겠다"고 울먹이다가 눈물을 흘렸다.

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가수 싸이,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조화를 보내 추모했다.

▲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열린 '신해철 1주기 추모식 및 봉안식'에서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야외 안치단에 헌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인 윤원희 씨는 행사가 끝난 뒤 취재진에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며 "힘든 와중에도 천사 같은 아이들이 제 손을 잡아줬고 온 국민의 애도와 격려를 받았다. 어린 아이들이 세상에서 날개도 펴지 못하게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족끼리 더 힘을 모으게 된 것 같다"고 지난 1년의 심정을 밝혔다.

이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며 "아빠가 같이 입학식도 가고 손도 잡고 입장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같은 시간대 잠든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누울 때마다 빈자리가 크다. 밤에 자다가 몰래 울기도 한다. 매일 매 순간 보고 싶다"고 남편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나타냈다.

또 "직장을 다니면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며 "제가 직장을 나가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두 아이를 챙겨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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