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

퀴암발 국립공원(Kwiambal National Park), 호주 뉴사우스 웰즈(NSW)

등록|2015.10.28 13:48 수정|2015.10.28 13:48

▲ 이름 없는 꽃이 가장 자유스러운 꽃이라 했던가? 인간의 손길을 떠난 들꽃이 도로 옆에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 이강진


역마살(驛馬殺)이 끼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죽일 살(殺)'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길에서 죽을 수도 있는 삶이니 좋게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랴 팔자인 것을, 팔자대로 살 수밖에...

한 달쯤 집에 있으니 궁둥이가 근질거린다.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신호다. 우연히 만난 호주 내륙에서 자신만의 삶을 누리는 사람이 생각난다. 한국 사람이 많이 찾는 모리 온천에서 가까운 곳이다. 초면에 인사치레로 놀러 오라는 말을 믿고 길을 떠난다.

나흘 정도의 여행이다. 여행에 익숙한 아내는 옷가지 등을 비롯해 간단한 짐을 가방에 챙긴다. 한국 사람이 많이 찾는 모리 온천도 들러볼 생각이다. 길을 떠난다. 생각보다 이른 아침이다. 

시드니 같으면 도로가 막힐 출퇴근 시간이지만 시골 길은 한가하기만 하다. 비가 흩날리는 도로를 따라 내륙으로 들어간다. 해안가 도로를 주로 다녔기에 내륙으로 가는 길이 새삼스럽다.

산세가 좋은 배링톤 탑 국립공원(Barrington Tops National Park) 길목에 있는 글로스터(Gloucester)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몇 번 이곳에 들른 적이 있다. 올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잘 정돈된 호주 특유의 예쁜 마을이다. 지금은 석탄층 개발을 둘러싸고 주민과 회사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동네다. 박정희 시대에 개발은 좋은 것이라는 교육을 받아온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스터를 지나 내륙으로 더 들어간다. 잘 닦아 놓은 도로다. 제법 높은 산을 넘는다. 울창한 숲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경치가 멋지다. 산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쉬며 사진을 찍는다.

우리보다 전망대에 일찍 도착했던 일행과 눈인사를 나눈다.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 두 명과 함께 여행하고 있다. 트레일러에는 텐트와 자전거 두 대가 실려 있다. 호주를 여행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호주인의 여유를 본다.

왈카(Walcha)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동네 입구에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소가 있다. 조금 추운 날씨지만 밖에서 서너 명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카페도 보인다. 카페 옆에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동네 한가운데 옷을 벗은 남녀가 껴안고 있는 커다란 나무 조각이 시선을 끈다. 이렇게 외진 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인적이 드물다. 유행가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이 가끔 보일 뿐이다. 한가하게 풀 뜯는 소들의 모습과 푸른 초원의 집이 잘 어울린다.

인버럴(Inverell)이라는 동네에 가까워질수록 들판에 크고 작은 돌이 많다. 어떤 곳은 들판이 돌덩이로 덮여 있다. 인버럴이 사파이어(sapphire) 동네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사파이어라는 보석이 있었기에 황량한 내륙에서 제법 큰 동네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를 초청한 사람이 사는 아쉬퍼드(Ashford)라는 동네로 향한다. 돌과 풀이 어우러진 들판을 운전한다. 도로변에는 들꽃이 만발하다. 봄이 오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눈치 채고 자신을 들어낸 들꽃이다.

황량한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의 내륙에서 원주민과 생활할 때 보았던 들꽃이 생각난다. 먼지만 풀썩이던 들판이 봄이 되면 그림 같은 꽃동산으로 변하는 신비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름 모를 꽃들이지만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답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주 가까운 이웃집도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 외진 곳이다. 울타리에 걸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선다. 제일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세 마리의 당나귀와 염소다. 자동차로 더 들어가니 집주인이 밭일하던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농장 구경을 시켜준다. 두 마리의 공작을 비롯해 넓은 새 장에서 지저귀는 예쁜 새들이 우리를 맞는다. 앞마당에는 새로 심은 과일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집주인이 하던 일을 끝내도록 아내와 함께 울타리를 따라 걷는다. 얼마나 넓은지 한참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던 길을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간다. 한 시간은 족히 걸었을 것이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까 걱정하며 마중 나온 집주인도 자기가 사는 땅을 다 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저녁 시간이다. 생식한다는 주인은 여러 종류의 곡식을 요리하지 않고 날 것으로 먹는다. 우리에게는 채소샐러드를 정성스레 만들어 대접한다.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 집이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이야기를 나눈다.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불이 아름답다. 밖에는 달빛이 있으나 별빛 또한 밝게 빛나고 있다. 옛날 한국 시골이 생각난다.

정답 찾기에 급급한 교육을 받고, 삶에도 정답이 있다는 생각에 젖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삶이다. 인간은 자연에 있을 때 가장 인간답다고 했던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모두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 높지 않은 산등성이지만 넓은 초목이 여행객의 시선을 잡는다. ⓒ 이강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