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산도 만들었다는 거, 몰랐죠?
[서평] 산이 품은 이야기를 읽는 법, <산천독법>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 동네 뒷산으로 가는 소풍이 정말 싫었다. '동네 뒷산'이라는 멋없는 호칭처럼, 그곳은 초등학생 나에게는 진부함 그 자체였다. 그때의 나는 소풍이라면 마땅히 새로운 곳을 가야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한나절도 되지 않는 소풍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에는 너무 짧았고, 결국 소풍 장소의 대부분은 동네 뒷산이 차지했다.
동네 뒷산은 오봉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마 다섯 개의 봉우리가 동네를 감싸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소풍을 지루하게 만든 오봉산을 마냥 싫어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한 동네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오봉산은 이제 추억이 됐다. 이따금 오봉산을 바라보면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곤 한다.
오봉산과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 동안 함께 했지만, 나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 정도의 의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에 오봉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최원석 교수의 <산천독법>을 읽고 나서다.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산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산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은 무엇인지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주산, 마을을 설계하는 핵심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지세가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을 면하여 있다'는 뜻이다. 풍수에 따르면 이러한 배산임수 지형은 마을이 들어설 만한 이상적인 터라고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명당'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만 해도 주거지 뒤편을 산이 감싸고 있고, 앞엔 하천이 흐르고 있다. 규모가 있는 동네라면 대부분 배산임수 지형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동네를 등진 산을 '주산'이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동네라면 오봉산이 주산일 것이다. 주산에 따라 동네의 모습이 바뀐다. 배산임수라는 명당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산을 등져야만 하니까 말이다. 그만큼 주산은 중요한 존재였다.
심지어 조선 왕실에서는 주산이 어디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주산 논쟁을 끝내기 위해 세종이 직접 산에 올라 답사까지 했다니 주산의 중요성을 알만 하다.
"일찍이 조선 초 한양 천도 당시에 하륜의 무악(안산) 주산론이 있었고, 야사이지만 무학대사의 인왕산 주산론도 전한다. 그때 만약 주산을 달리 정했다면 한성의 공간구조는 전면적으로 달라졌을 테고, 지금의 서울 모습과는 딴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주산이 중요한 이유는 공간디자인을 결정짓는 기준점이자 방향축이기 때문이다." (본문 22쪽)
처음에 우리 조상들이 '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이라는 마음부터 들었다. 찬찬히 책장을 넘기다 보니 산을 만들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다. 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확실히 느꼈다. 산이 없어 산을 만들기까지 한 마음에 책을 읽으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단 몇 숨도 쉬지 못하면 죽지만 공기를 느끼지 못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지나치는 것에 귀중한 가치가 있다. 조산이 그렇다. 조산은 마을 입구에도 있고, 고갯마루에도 있다. 돌무더기로도 있고, 숲으로도 있으며, 장승이나 솟대, 심지어 남근석의 모습으로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두를 조산이라고 한다. 형태는 달라도 기능이 같은 산의 상징이라 그렇다." (본문 39쪽)
산을 만드는 행위를 조산(造山)이라고 한다. 산은 다양한 이유로 만들어졌다. 겨울의 찬바람을 막거나 흉한 모습을 가리는 등의 기능적인 면도 있지만 풍수적인 영향이 크다. 산이 없는 평지에 마을이 있으면 마을 뒤편에 숲을 만들어 산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산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산을 만들기도 했다. 주산이 용의 형상이라면 여의주를 상징하는 조산을 만드는 식이다.
"풍수적으로 용의 형국에 필요한 여의주, 봉황의 형국에 필요한 알, 배가 가는 형국의 돛대 같은 상징성도 갖는다. 마을에서 마주보이는 산의 특정 부위가 음부 형상으로 보이거나 여근 모양의 바위가 있을 경우에는 음풍을 막는 남근석 조산도 있다." (본문 48~49쪽)
우리는 무심코 산을 오른다. 하지만 단풍을 보기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건강을 챙기기 위해 산을 오를 뿐, 산을 읽기 위해 오르진 않는다. 앞서 산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만 이야기했지만 산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산은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품고 있다. 산은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다. 산은 무궁무진하다. 산은 우리가 그것을 읽어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시간은 흘러가버려 허망하기 짝이 없다. 공간은 무색으로 텅 비어 있어 무정하다. 그러나 산천은 핏줄처럼 흐르고 있는 그 무엇이다. 모두가 차곡차곡 저장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나는 산천을 거대한 메모리라고 생각한다. 역사도 조상도 자연생태도 모두 담겨 있고 또 앞으로 담길 그 무엇이다. (중략) 산의 보장(寶藏), 산천메모리다." (본문 11쪽)
언젠가 동네 뒷산에 오를 여유가 생긴다면, 산에 올라 그 산이 품고 있는 보물들을 캐내보는 건 어떨까.
동네 뒷산은 오봉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마 다섯 개의 봉우리가 동네를 감싸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소풍을 지루하게 만든 오봉산을 마냥 싫어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한 동네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오봉산은 이제 추억이 됐다. 이따금 오봉산을 바라보면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곤 한다.
오봉산과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 동안 함께 했지만, 나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 정도의 의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에 오봉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최원석 교수의 <산천독법>을 읽고 나서다.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산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산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은 무엇인지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주산, 마을을 설계하는 핵심
▲ <산천독법>, 책표지 ⓒ 한길사
내가 살고 있는 동네만 해도 주거지 뒤편을 산이 감싸고 있고, 앞엔 하천이 흐르고 있다. 규모가 있는 동네라면 대부분 배산임수 지형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동네를 등진 산을 '주산'이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동네라면 오봉산이 주산일 것이다. 주산에 따라 동네의 모습이 바뀐다. 배산임수라는 명당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산을 등져야만 하니까 말이다. 그만큼 주산은 중요한 존재였다.
심지어 조선 왕실에서는 주산이 어디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주산 논쟁을 끝내기 위해 세종이 직접 산에 올라 답사까지 했다니 주산의 중요성을 알만 하다.
"일찍이 조선 초 한양 천도 당시에 하륜의 무악(안산) 주산론이 있었고, 야사이지만 무학대사의 인왕산 주산론도 전한다. 그때 만약 주산을 달리 정했다면 한성의 공간구조는 전면적으로 달라졌을 테고, 지금의 서울 모습과는 딴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주산이 중요한 이유는 공간디자인을 결정짓는 기준점이자 방향축이기 때문이다." (본문 22쪽)
처음에 우리 조상들이 '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이라는 마음부터 들었다. 찬찬히 책장을 넘기다 보니 산을 만들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다. 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확실히 느꼈다. 산이 없어 산을 만들기까지 한 마음에 책을 읽으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단 몇 숨도 쉬지 못하면 죽지만 공기를 느끼지 못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지나치는 것에 귀중한 가치가 있다. 조산이 그렇다. 조산은 마을 입구에도 있고, 고갯마루에도 있다. 돌무더기로도 있고, 숲으로도 있으며, 장승이나 솟대, 심지어 남근석의 모습으로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두를 조산이라고 한다. 형태는 달라도 기능이 같은 산의 상징이라 그렇다." (본문 39쪽)
산을 만드는 행위를 조산(造山)이라고 한다. 산은 다양한 이유로 만들어졌다. 겨울의 찬바람을 막거나 흉한 모습을 가리는 등의 기능적인 면도 있지만 풍수적인 영향이 크다. 산이 없는 평지에 마을이 있으면 마을 뒤편에 숲을 만들어 산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산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산을 만들기도 했다. 주산이 용의 형상이라면 여의주를 상징하는 조산을 만드는 식이다.
"풍수적으로 용의 형국에 필요한 여의주, 봉황의 형국에 필요한 알, 배가 가는 형국의 돛대 같은 상징성도 갖는다. 마을에서 마주보이는 산의 특정 부위가 음부 형상으로 보이거나 여근 모양의 바위가 있을 경우에는 음풍을 막는 남근석 조산도 있다." (본문 48~49쪽)
우리는 무심코 산을 오른다. 하지만 단풍을 보기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건강을 챙기기 위해 산을 오를 뿐, 산을 읽기 위해 오르진 않는다. 앞서 산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만 이야기했지만 산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산은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품고 있다. 산은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다. 산은 무궁무진하다. 산은 우리가 그것을 읽어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시간은 흘러가버려 허망하기 짝이 없다. 공간은 무색으로 텅 비어 있어 무정하다. 그러나 산천은 핏줄처럼 흐르고 있는 그 무엇이다. 모두가 차곡차곡 저장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나는 산천을 거대한 메모리라고 생각한다. 역사도 조상도 자연생태도 모두 담겨 있고 또 앞으로 담길 그 무엇이다. (중략) 산의 보장(寶藏), 산천메모리다." (본문 11쪽)
언젠가 동네 뒷산에 오를 여유가 생긴다면, 산에 올라 그 산이 품고 있는 보물들을 캐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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