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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짐 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새로 쓰는 노년, 함께 그리는 노년 ②]

등록|2015.10.30 21:21 수정|2015.10.30 21:21

▲ 커뮤니티 ⓒ CC0 Public Domain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오랜 기간 복지를 대신해왔다. 흔히 듣게 되는 '늙어서 돈도 못 벌고 아프면 남는 건 가족밖에 없다'라는 얘기는 한국사회에서 가족이 어떤 위치와 역할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엄마를 남동생이 모신다고 가정하면, 진짜 돌보는 건 결국 며느리죠. '그건 정말 아니다. 차라리 내가 맞지.' 했어요."

"남자가 엄마를 모신다기보다 며느리가 모시는 거고. 주변에 보면 아내가 모시든가 아니면 딸이 모시든가, 그런 경우가 많더라고요."

주연(가명, 46세, 비혼)씨는 남동생이 모신다는 것은 결국 며느리의 돌봄일 수밖에 없다는 뻔한 결론 앞에, 차라리 자신이 돌보기를 선택했다. '늙어서 돈 없고 아프면 가족 뿐'이라는 이야기 속의 가족은 결국, 선영(가명, 50세, 기혼)씨의 말처럼 며느리나 딸로 대표되는 여성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가 만난 40-60대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은 가족이 더 이상 돌봄, 복지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친구가 아픈 어머니를 모셨는데, 일을 하면서도 24시간 걱정으로 꽉 차있고, 그러다보니까 형제들 관계가 되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언니가 주장을 해서 병원으로 모셨는데, 오히려 모시고 나서는 형제들 관계가 좋아진 거예요. 모시고 있던 사람에 대한 부담감이 덜어졌다, 막내동생에 대해서 미안함이 덜어졌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딸도 이런데 며느리는 어떻겠어요."

"세상이 달라졌죠. 자식들도 자기 인생 살기 바쁜데, 나를 모셔라. 이러고 싶지 않아요. 나도 싫고. 서로 부담이잖아요. 친구들도 다 그래요." 

미정(가명, 60세, 비혼)씨는 부모 돌봄의 문제가 가족관계를 얼마나 복잡하게 할 수 있는가를 막내딸의 지인의 경험을 통해서 절감한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은 비단 미정씨만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모도 제대로 돌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녀가 자신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다. 그래서 그녀들은 정희(가명, 54세, 기혼)씨처럼 자녀들에게 그 역할을 계속할 것을 요구하지 못한다. 3포, 5포세대로 호명되는 20-30대의 현실 앞에, 그런 주문을 할 엄두조차 내면 안 된다는 것을 그녀들은 감각적으로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은 절망하고 포기하거나 무기력한 존재로 남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 스스로 자신들만의 노년을 계획하고 꿈꾸고 있다.

"근데 이제 제 또래 친구들하고 그런 얘기 되게 많이 하죠. 어떻게 살 것인가... 자식한테 짐이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가 어, 여력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공무원이나 이제 그런 연금을 받는 애에게 밥을 해주고 그 집에서 연금으로 같이 밥을 나눠먹기로 했어요... (주거공동체 같은거?) 네 그런 거를. 식대는 기본으로 들 테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하고 생활공동체를 꾸리는 것도 괜찮지만 그런 것도 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연금 받는 친구네 집에 숟가락 하나 얹기로 잘 꼬셔놨어요."

영숙(가명, 49세, 기혼)씨는 친구들과 함께 자식한테 짐이 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여력이 없더라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고, 주연(가명, 46세, 비혼)씨는 친구와 연대와 협력에 기초한 주거생활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중년 여성들은 가족의 의미와 관계의 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20~30대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족 이외의 커뮤니티, 친구를 통해 '가족'의 공백을 메우면서, 가족 밖에서의 독립과 연대를 상상하며 새로운 복지로서의 '공동체'를 구성해가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은 정부의 안일한 현실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현실에서는 가족주의에 기반한 전통적 복지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전제로 한 가족단위 정책의 유효성은 상실되었음에도 여전히 전통적 가족 중심적 사고에 기초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만난 40-50대 여성들의 삶의 경험과 그에 기초한 가족밖의 파트너쉽, 공동체성에 대한 모색·실천에 귀를 기울이고, 명확한 현실 인식 속에서 복지 정책을 수립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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