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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처·후처 이야기, 외국인들은 SF적으로 보더라"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감독들 ①]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

등록|2015.11.04 14:49 수정|2015.11.04 14:49

▲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 ⓒ ARAM


다큐멘터리에는 레드카펫이 없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가 없기 때문이다. 몰려드는 카메라도 적다. 가끔 마주치기 불편한 이야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다큐멘터리가 외면 받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끊임없이 그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과 사회의 이야기가 갖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척박한 제작 환경에서 외면 받던 한국 다큐멘터리를 알아본 건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었다. 국제 무대에서 더 주목 받는 한국 다큐,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10월 27일 독일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OK Leipzig) 경쟁 부문에 초청된 <춘희막이>의 박혁지 감독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아들을 잃은 뒤 최막이 할머니는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해 김춘희 할머니를 데리고 온다. 춘희 할머니가 아들을 낳고,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두 할머니는 한 지붕 아래서 산다. 얄궂게 만난 인연,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 보이는 그 인연이 벌써 46년째 이어지고 있다.

<춘희막이>는 2013년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IDFA)에서 열린 제작 지원 경쟁(피칭)에 선발, 독일 제2공영방송 ZDF와 프랑스 ARTE 등 유럽 4개국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제작비를 지원한 방송국은 저작권은 가지지 않고 해당 국가에서 독점 방영권을 가진다. 이 한국적인 이야기가 국제 무대서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

"남아선호사상 등 외국에서는 이해 잘 못하더라"

▲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 ⓒ ARAM


- 유럽 방송국들과 공동제작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이 <춘희막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피칭 경쟁을 할 때 두 할머니가 나오는 첫 장면부터 심사위원들이 무장해제가 됐다. 딱 봤을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인상, 캐릭터의 힘이 가장 컸던 것 같다."

- 외국인들이 두 할머니의 관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도 남아선호사상이나 이런 것들을 들어 들어 알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문화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실제 이야기라고?' 두 할머니의 관계를 SF적으로 바라보더라. 할머니들이 같은 방에 주무시고 하니까 동성애 코드로 보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신선한 시각이었다."

- 영화 기획 단계부터 해외 지원 및 상영을 염두에 둔 건지.
"그렇다. 극장 상영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글로벌 콘텐츠로 기획한 것이 맞다. 국내에서 다큐멘터리가 매년 100편 이상 제작되는데 극장에 걸리는 것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춘희막이>가 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운이 따랐던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극장 상영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글로벌 콘텐츠로 만들어 제작지원을 받고 해외에 나가는 것을 생각했다."

- 한국 다큐멘터리가 제작단계부터 해외로 눈을 많이 돌리고 있는 것 같다.
"2009년 독립 PD였던 박봉남 감독의 <철까마귀의 날들>, 고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와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이 잇달아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경쟁 후보에 오르거나 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곳이다. 우리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후 독립 PD들의 사고가 넓어졌다. 당시 이성규 감독은 우리가 우물 안에 있어서 몰랐을 뿐이지 해외 영화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제작 기술이나 아이템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접근은 훨씬 더 좋다며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춘희막이>도 이성규 감독이 글로벌한 아이템이 될 수 있다며 영화로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 글로벌 콘텐츠로써 <춘희막이>의 강점은 무엇인지 .
"당시 해외 피칭에서 <춘희막이>가 멀티레이어, 즉 여러 개의 층이 겹쳐진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 여성, 가족, 노인, 죽음까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 부분을 좋게 봐 주시는 것 같다."

- <춘희막이>가 기존의 다큐멘터리 편집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춘희막이>는 극영화처럼 편집을 하고 싶었다. 실제 일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는 편집이 거칠다. 장면의 전환이 끊기고 포커스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춘희막이>는 장시간 찍기도 했고, 할머니들이 느리니까 내가 부지런을 떨면 부드러운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뒷모습을 찍다가 앞으로 달려가서 앞모습을 찍고, 촬영할 때도 편집할 때도 기존의 다큐와는 다른 형식으로 만들려고 했다. 다큐멘터리라고 일부터 카메라를 흔들고, 포커스를 안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었다."

-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그리고 <춘희막이>까지 휴먼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와 닿지 않으면 화려한 영상이나 현란한 기술은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영화는 그 안에 이야기가 있고, 관객들이 그 이야기를 보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도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가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이 찾아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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