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으로 '종북' 판별하는 방송, 할 말이 없다"
[인터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 기자
▲ 방북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2014년 12월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 종북 몰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내 아버님은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이시고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4 후퇴 때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맨발의 청춘으로' 월남한 실향민이다(관련기사: 어느 '대박' 만화가의 말 못할 고민).
내 선생님은 평안북도 용천이 고향이시고 해방 후인 1947년 북한에서 김일성 정권의 탄압을 받아 월남한 민주화운동가다(관련기사: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사상적으로도 북한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지난 2012년부터 "기독교 신자이면서 보수·반공주의자인 한 평범한 아줌마"이자 내 세대인 신은미 선생의 북한기행문을 관심 있게 읽었다. 그리고 2013년에 발간된 그의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가 그해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을 때 평소 박근혜 대통령을 싫어했지만 "이 일만은 참 잘했네!"라고 나도 모르게 칭찬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봄날은 짧았다. 그 후 박근혜정권의 몰상식적인 '종북몰이'와 '통진당해산'의 광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신은미 선생은 폭발물테러에 이은 검경의 조사를 받고 '국보법 위반자'로 추방되어 '5년간 입국금지'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신은미 선생의 말대로 지난 겨울의 '종북몰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전주곡'이 아니었을까? 어쩌다가 "보수·반공주의자인 한 평범한 아줌마"가 "통일운동가"로 변모 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외조부는 제헌의회 의원으로 국가보안법 제정에 앞장섰다. 그런데 결국 외손녀가 그 법으로 모국에서 추방되는 수모와 아픔을 겪었으니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신은미 선생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수모와 아픔은 결국 분단된 우리 민족의 수모와 아픔이다. 그래서 한국의 사상가 함석헌(1901-1989)은 남북분단을 민족정신분열의 상징으로 보았고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우리 민족이 가장 긴급하게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보았던 것이다. 다음은 '통일운동가' 신은미 선생과 지난 한 달간 국제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지난겨울의 '종북몰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의 '전주곡'"
-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북한에 대하여 이런 발언을 했다. "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경제난 때문인 만큼 경제를 도와줘야...", "북한이 우리보다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듯 보였다", "제(박근혜 대통령)가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등등.
그런 박대통령이 느닷없이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저자인 기자님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지난 1월 미국으로 추방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국가보안법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고, 왜 박근혜정권이 이런 비정상적인 조치를 서슴없이 취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우선 제가 경험한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대동강맥주가 맛있었다,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했다, 북한의 핸드폰 가입자가 250만을 넘었다'는 팩트를 말하는 것이 어떻게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것이 되며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북한에 대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만들 뿐 오히려 국가 안보를 위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난 겨울 종북몰이가, 제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일부 언론의 허위보도로 시작되었는데 경찰도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관련기사 보기).그러니 검경은 제게 "북한의 휴대폰 숫자가 250만을 넘는다고 했는데 그걸 믿느냐?"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였다. 저는 조사를 받는 동안 '검경도 제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세 차례나 출국정지를 해가며 그렇게 오랫동안 조사를 했을까. 거의 두 달간 뉴스를 만들어 가면서... 저는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이러저런 이유를 말씀해 주시기도 하는데 정작 저 자신은 아직도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다.
질문에서 말씀하셨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예전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많이 하였는데 저는 사실 박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제가 첫 북한관광을 다녀온 후 조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난 후에야 박근혜 당시 대표의 북한 방문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이 북한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제가 '종북몰이'를 당하며 서울에 머물고 있는 동안 박 대통령의 그런 발언들이 전단지에 인쇄돼 길거리에 뿌려졌다는 뉴스를 듣고서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발언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제 생각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왜 통일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 규정짓고 이에 따라 검경은 신속한 조사를 시작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지난 겨울의 '종북몰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의 '전주곡'이 아니었나 싶다."
▲ 퇴근후 맥주집을 찾은 북한주민들 (2015년 7월 평양) ⓒ 신은미
"나라의 지도자가 폭력에 침묵, 정상적인 나라에 상상할 수 없는 일"
- 주한 미 대사 습격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련해 "목적·배후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 '반테러주의자'인 박 대통령이 왜 신 기자님을 목표로 한 사제폭발물 테러가 터졌을 때는 침묵을 지켰을까? 당시 피해자 입장에서 이런 박대통령의 이중 잣대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정상적인 경우라면 당연히 미 대사 사건 때와 똑같은 말을 했었어야한다. 사실 위험성에 있어서는 익산 폭발물 투척이 훨씬 더 심각한 사건이었다. 다행히 서너 명의 부상자에 그쳤지만 그 테러범을 막아 온몸에 화상을 입은 용감한 청년이 아니었다면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왜 침묵을 했는지는 저도 알 수가 없다. 짐작 가는 것은 있지만...
'침묵은 무언의 동의'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당시 제가 우려했던 것이었다. 나라의 지도자가 폭력에 침묵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저에 대한 '종북몰이' 이유 는 통진당 해산과 관련"
- 지난해 말 신 기자님에 대한 '종북몰이'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당시 박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아예 해산시켜버렸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수구언론은 이 중요한 사건을 별로 크게 다루지 않았다. 국민의 10% 이상 지지를 받은 한 정당을 정권이 물리력으로 그냥 해산시켜 버린 것이다.
한 정당의 생존은 유권자가 결정하는 것이지, 헌법재판소나 대통령이 결정하는 게 아닌데 민주국가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신 기자님에 대한 '종북몰이'로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중요한 사건을 수구언론에서 그냥 묻어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당사자 의견은 어떤지?
"제가 서울에 '갇혀'있는 동안 통진당 해산과 관련된 뉴스들을 접하고 그 당의 강령을 대충 인터넷에서 찾아 본 기억이 있다. 당시 제 생각에 통진당은 중도우파정도로 판단되었다. 당의 성격이 민족주의 성향을 많이 띠고 있으며 당의 강령 속에 재산권의 제한이라든가 기업의 국유화라든가 하는 것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건 통진당의 성격에 관계없이 정당의 생존은 유권자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저도 믿고 있다. 저에 대한 의도적인 '종북몰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통진당 해산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 지난해 한 종편방송은 무속인을 출연시켜 신 기자님의 관상을 분석하면서 기자님 얼굴이 '종북관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글쎄 그럼 박근혜 대통령의 관상도 '종북관상'인지 궁금하다. 하여간 당시 이 언론사(?)로부터 '종북관상'이란 '진단'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지난 겨울 '종북몰이'를 당할 당시 저는 한 독자님댁에 은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은 그 독자님의 어린 딸이 방에서 나오는 저를 보더니 '아줌마 얼굴은 종북얼굴'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깜짝 놀라며 아이의 입을 막던 아이 엄마의 설명을 듣고 그런 방송이 나간 걸 알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나라 언론 수준이 이 정도로 천박한가 싶어서. 이성적, 합리적 분석이나 논평 대신 점치는 분이나 관상보는 분들을 출연시켜 그런 방송이나 내보내다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관상도 '종북관상'이냐구요? 종편 같은 질문을 하시네요."
"어떤 수사관은 말도 안 되는 질문 하면서 제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 지난해 '국가보안법 위반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경찰과 검찰의 모진 조사를 받으면서 많은 고초를 겪으셨을 줄로 안다. 당시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이나 경찰에 대해 느낀 점이 있었을 텐데?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경찰과 검찰 모두 제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조사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수사관은 제게 말도 안 되는 코미디 같은 질문을 하면서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출국정지로 인해 미국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외에 다른 고초는 없었다. 경찰 검찰 모두 조사를 하는 동안 다과를 제공하는 등 아주 친절했다. 검경의 조사가 다 끝난 후, 그 당시 부장검사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상황에 따라 본질이 왜곡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신 선생님의 경우가 그런 경우다. 그러니 모국에서 당한 이번 일을 마음에 두지 말고 훨훨 털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했다. 한마디로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다'는 말인데 이로 인해 입은 피해는 어떻게 하란 말인지. 게다가 무혐의로 내보내는 것도 아니고 5년간 입국금지에 강제출국이라니..."
▲ 새로 완공된 미래과학자거리(2015년 10월 평양) ⓒ 신은미
- 한국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와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로 엄청난 고통을 입었고, 폭발물 테러로 생명까지 잃을 뻔 하셨는데 그런 피해자인 기자님에게 한국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하던 중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적반하장의 태도로 기자님을 끝까지 '빨갱이'로 덮어씌우려고 했는지?
"폭발물 테러에 대해 사과라니.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제게 '물의를 일으켰으니 유감을 표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적반하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북몰이를 당해 정말 유감'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빨갱이로 덮어씌우려 한다든가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 기자님은 지난 1월 국보법위반으로 박근혜 정권에 의해서 추방되었고 5년간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하던 해외언론과 국내언론은 주요하게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또 왜 국내언론과 해외언론 사이에 이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우선 기자들의 질문에 차이가 있었다. 국내언론들은 주로 제가 강연에서 한 발언에 대해 질문을 한 반면, 해외언론들은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에 대한 저의 생각 등을 물었다. 한국의 일부 언론 보도행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 지난 1월 한국 경찰과 검찰의 무리하고 황당한 조사를 장장 50시간 이상 받고 추방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과 후유증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언론의 허위보도와 종북몰이에 오도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 많은 '팬'들도 새로 생겨났다. 물론 후유증도 꽤 있었다. 특히 가족관계라든가 친구관계에 있어서. 예전의 허물없는 관계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서로 연락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종북몰이로 인해 많은 분들로부터 조국의 통일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심리적 어려움이 한순간 사라지는 듯 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
- 미국과 북한을 둘 다 잘 아는 재미동포 입장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평가하시는지?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일부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는 민족화합과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만 끼치게 된다. 통일의 상대에 대해 무지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또 북한을 있는 그대로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상관없이) 알릴 수 있는 해외동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 기자님이 겪었던 그동안의 아픔은 결국 분단된 우리 민족의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픔을 최소화하고 남북한이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어떤 조치와 대북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한 마디로, 남북이 합의한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미국의 대북경제제재조치로 북한 경제는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0월에도 북한에 다녀온 걸로 아는데 지금 북한의 경제사정은 어떤가?
"북한은 지난 60년간 경제제재를 받아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 북한동포들의 생활만 어려워졌을 뿐이지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구성만 더 키웠을 뿐이다. 북한의 경제는 갈 때마다 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북한에는 건설 붐마저 일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를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교육을 통해 공산주의적 교양과 도덕을 갖춘 인간을 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떠나 '인간은 어느 정도의 사욕이 있으며 사회주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를 충족시켜 줘야한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제한적인 텃밭을 허용하고 협동농장을 소단위로 나눠 경작하게 한 뒤 수확량 일부의 개인소유를 허락한 분조관리제 또는 포전담당제가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향후 <오마이뉴스> 연재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 2011년 이래 지금까지 모두 8차례 북한을 방문 한 것으로 안다. 왜 그렇게 자주 방문하는가? 비용도 상당히 들 텐데?
"첫 세 차례의 방문을 통해 북한에 수양가족들이 생겼다. 그 이후 수양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자주 북한에 가게 됐다. 물론 비용도 꽤 많이 든다. 남편과 저의 항공료, 북한 내에서의 여행경비 등등. 그동안 8차례 여행하며 든 경비가 아마 15만 달러가 넘을 것이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북한에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으며 그 그리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신은미씨의 수양딸 리설향 부부 ⓒ 신은미
- 언제 또 북한을 방문할 예정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다음 방북계획은 잡고 있지 않고 있다. 다녀온 지 2주 밖에 안 된 지금도 문뜩 수양딸들이 보고 싶어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마 일러도 내년 봄 정도에나 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은 없다. 지금으로써는 북한여행으로 인해 그동안 중단한 <오마이뉴스>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어서 다시 이어나가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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