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시골빵집'서 '자본론' 굽게 만든 책

[서평] 일본 사회운동가 히라카와 가쓰미의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등록|2015.11.16 10:50 수정|2015.11.16 13:57
어렸을 때는 엄마 심부름을 자주 했다. 주로는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찬거리를 사 오는 것이었다. 콩나물 2백 원어치, 두부 1모, 설탕 1봉지... 뭐 그런 식이었다.

지금처럼 대형마트에서 일주일 치 음식재료를 몽땅 사 냉장고에 쌓아두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샀다. 그 골목 아줌마들이 다 그 구멍가게의 단골이었다. 찬거리를 사러 오다가다 만나면 으레 그 구멍가게 앞에 앉아 수다를 떨기 일쑤였다.

작은 구멍가게가 뭔 돈이 되겠냐 싶겠지만, 적게 사고 적게 팔아도 골목 상권은 그런대로 돌아갔다. 그런 골목 경제 덕분에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냈다. 어느샌가 동네 상가 건물에 들어선 대형 슈퍼마켓에 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다.

동네 문방구도 마찬가지였다. 골목 아이들의 집합소였던 그곳도 대형 문구센터가 들어오자 먼지만 쌓이다가 문을 닫았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풍경이다.

이제 성장의 결과를 책임져야 할 때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표지. ⓒ 가나출판사


재래시장이 사라지고 골목 상권이 붕괴하는 것은 도시화, 대형화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상품들과 편리한 생활, 성장의 열매는 달콤했고 욕망은 계속 커져갔다.

우리 중 누구나가 상품경제의 가담자다. 상품경제라는 시스템이 팽창하여 끝내 지구 규모로까지 확대되었고 그 속에서 다양한 욕망이 인간성을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우리는 어딘가에 가담자다. 그러나 이것 또한 상품경제 자체가 지닌 자연스러운 과정이기에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말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174쪽)

일본의 사회운동가 히라카와 가쓰미는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에서 경제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고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당연시 여기는 경제성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당분간 경제성장은 어렵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경제성장이 당연한 것인 양 여기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다시 생각해야 할까?"(15쪽)라고 반문한다.

저자가 보기에 일본은 이미 더 이상의 성장을 바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1990년대 긴 디플레이션 상태에 이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쇼크 이후에는 거의 제로 성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2005년부터 총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성장의 동력을 상실해가는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사회는 성숙형으로 향해 있음에도 국가의 경제정책은 그것과 동떨어진 발전도상형의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신용을 바탕으로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높여갈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지속 가능성을 위한 생존전략'은 '소상인'이다. 소상인은 한마디로 말하면 '휴먼스케일'(human scale)의 부흥이다. 인간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는 '휴먼 스케일'이란 인간은 결코 자연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산업혁명 이후 문명의 진전은 이 휴먼스케일을 뛰어넘으려는 기술혁신의 역사였다. 산업혁명은 인간생활에서 본다면 힘의 확대이며 시간의 단축이며 공간의 압축이다. (중략) 테크놀로지의 진전이 바꾼 것은 인간의 능력만이 아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은 경제를 단번에 확대해갔다. 경제 확대는 물건의 이동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동시에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부의 축적'으로 향하게 하는 경향을 낳았다. 화폐가 인간 차별의 지표로 쓰이게 된 것이다. (28~29쪽)

저자는 "문명의 진전을 뒷받침한 것은 결국 공간적, 시간적으로 토지나 공동체에 속박되어 있던 한정적인 생활방식을 초월하여 만능의 힘을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었다"며 "그 욕망이 다다른 곳이 바로 현대의 테크놀로지 사회이며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29쪽)라고 설명한다.

이윤 대신 '휴먼 스케일'이 지배하는 경제

작가 박민규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 바퀴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라고 썼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은 역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낳는다. 인간의 욕망은 '부러움'과 '부끄러움'으로 표현되고 부와 소유에 대한 욕망을 동력 삼아 자본주의는 질주한다.

저자가 말하는 '소상인'의 철학이란 금전 지상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해 확대보다는 존속에 우선을 두는 방식을 의미한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로 유명한 와타나베 이타루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소상인의 철학에 깊은 감명과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저자 또한 소상인의 철학을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현장으로 시골빵집 '다루마리'를 꼽았다. 와타나베의 '다루마리'는 일주일에 사흘은 쉬고 지역생산, 지역소비를 원칙으로 하며 무엇보다 '이윤을 남기지 않기'를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다.

소상인이란 비즈니스 규모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업 방식,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낸 팀워크,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 경영자의 신념이 소상인적 휴먼 스케일을 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한다. (중략) 확대보다는 지속을, 단기적인 이익보다 현장의 한 사람 한사람이 노동의 의미나 기쁨을 음미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삶의 긍지로 이어져 날마다 노동 현장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나는 회사 말이다. (184쪽)

소상인의 철학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가 소상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골목의 작은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었던 원리를 끄집어내,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지 점검해보자는 의미다. 와타나베의 '이윤 없는' 시골 빵집이 단기적인 실험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탈 성장 사회'의 전망에 대한 공감대 확산과 경제 시스템 개선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더는 욕망을 세분화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을 때 경제성장론자들은 전 세계를 둘러보고 아직 세분화할 여지가 있는 블루오션을 찾아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이 지구 상에 그런 장소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당연하다. 영원히 성장을 계속한다는 것은 헛된 욕망이 꾸는 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슬슬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생활 방식은 축소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방식 외에는 없다. 그래서 소상인인 것이다. (181~182쪽)
덧붙이는 글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 가나출판사 펴냄 / 2015.8. / 1만3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