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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민간단체의 역사문화 교류 2015 ③] 구마모토성

등록|2015.11.17 09:16 수정|2015.11.17 09:16

▲ 구마모토성 지도 ⓒ 이상기


구마모토는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흘러가는 시라가와(白川)를 경계로 동서로 나눠진다. 강 서쪽이 구시가지고, 동쪽이 신시가지다. 서쪽의 구시가지는 츠보이가와(坪井川)을 경계로 다시 도심지역과 성지역으로 나눠진다. 하천의 서쪽으로 구마모토성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성에 오르면 시내를 굽어볼 수 있다.

나는 호텔을 나와 긴자도리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하나바타초(花畑町)을 지나 구마모토시 국제교류관과 구마모토현 물산관을 보면서 미유키다리(行幸橋)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동상 뒤쪽으로 웅장한 구마모토성이 어둠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츠보이가와가 자연해자를 이루고, 그 건너에 높은 성벽을 쌓은 다음 성채를 지어 방어성으로서의 조건을 갖췄다.

▲ 가토 기요마사 동상 ⓒ 이상기


가토 기요마사는 구마모토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가토와 구마모토의 인연은 1588년 히고(肥後) 북쪽지역의 영주로 이곳 구마모토(隈本)성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1592년 히고 남쪽지역을 다스리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함께 임진왜란에 차출되어 공격의 선봉에 서게 된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죽음으로 전쟁이 끝나자 귀국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양녀를 둘째 부인(繼室)으로 삼으면서 도쿠가와 편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1600년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 편에 가담해, 서군의 대표인 고니시 유키나가 군을 물리쳤다. 그리고 논공행상을 통해 히고 남쪽까지 차지해 54만석의 영주가 되었다. 1601년 가토는 새로운 성을 쌓기 시작했고, 1607년 현재와 같은 모습의 성을 완성했다. 그리고 성의 이름도 구마모토(熊本)로 바꿔버렸다.

▲ 밤에 본 가토 기요마사 ⓒ 이상기


그는 1611년 병으로 죽었고, 11살짜리 그의 아들 다다히로(忠廣)가 영주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영주가 너무 어린 탓에 중신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했고, 1632년 호소카와 다다유키(細川忠興)가 다다히로를 내쫓았다. 결국 가토 가문은 2대 44년으로 통치를 끝내고, 다다유키의 아들이자 후젠고구라(豊前小倉) 번주인 다다토시(忠利)가 구마모토 번주를 겸하게 되었다.

미유키자카(行幸坂)를 따라 호아테고몬으로

조명 때문인지 어둠 속에서도 가토의 얼굴이 환하다. 그 가토의 흔적을 찾아보러 나는 미유키자카를 오른다. 오른쪽으로 해자인 비젠보리(備前堀)가 있다. 비젠보리 건너편으로 성벽이 쌓여 있고, 그 위에 이다마루(飯田丸) 성루가 있다. 성루가 비젠보리에 반사돼 은은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더 올라가면 구마모토성의 정문격인 호아테고몬(頰當御門)이 나온다.

▲ 해자에 비친 이다마루 성루 ⓒ 이상기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 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간다. 호아테고몬 안쪽이 혼마루(本丸)다. 구마모토성은 혼마루,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의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나는 혼마루 경내만 보기로 한다. 혼마루는 망루인 야구라(櫓)로 둘러싸여 있고,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문이 있다. 동쪽문이 스도구치몬(須戶口門), 서쪽문이 호아테고몬, 남쪽문이 하제가타몬(櫨方門), 북쪽문이 아카즈노몬(不開門)이다.

호아테고몬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매표소가 있고, 왼쪽으로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보면 천수각이 높은 성벽 위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우토야구라(宇土櫓)가 있다. 우토야구라는 세이난 전쟁(西南戰爭)에도 살아남은 누각 겸 전망대로, 구마모토성 축성 초기인 1601년 건물이다. 그 때문에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 구마모토성 천수각 ⓒ 이상기


여기서 세이난 전쟁이란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를 중심으로 한 큐슈지방 사무라이들이 1877년 일으킨 일종의 반란이고 내전이다. 세이난이란 이름도 혼슈지역에서 보면 큐슈가 서남에 위치해서 그렇게 붙여졌다. 사이고 다카모리군은 1877년 2월 15일 가고시마(鹿兒島)를 출발했고, 메이지정부는 이를 물리치기 위해 2월 19일 반란군의 토벌을 명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2월 19일 구마모토성 천수각이 불에 탄다.

그리고 21일 밤 사이고 다카모리군이 구마모토성을 포위한다. 그들은 다음날 새벽까지 구마모토성을 공격한다. 당시 반군의 주력인 사쓰마군(薩摩軍)은 1만4000명, 구마모토성을 지키는 정부군은 4000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4일까지도 공성에 성공하지 못한 반군은 결국 전력을 분산시켜 곳곳에서 전투를 계속한다. 반군은 이후 계속 밀려 9월 24일 시로야마(城山) 전투에서 패했고, 사이고 다카모리 등 지도자들이 할복자살했다고 한다.

▲ 성벽 아래쪽에서 바라 본 천수각 ⓒ 이상기


우토야구라는 계단이 5개 있는 3층 건물로 천수각의 대천수, 소천수에 이어 제3의 천수로 불린다. 그것은 우토야구라가 1601년 우토성(宇土城)의 천수각을 이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토야구라는 호아테고몬에서 보면 마치 천수각처럼 높고 웅장하다. 그러나 우토야구라는 천수각처럼 조명이 되질 않아 어둡다. 나는 빛을 따라 치즈이시(地圖石)와 니요노이시가키(二樣の石垣)로 내려간 다음 혼마루 어전을 밖으로 돌아 천수각 광장으로 올라간다.

천수각의 위용을 정면에서 바라보다

광장에 서자 앞으로 웅장한 천수각이 환한 얼굴로 다가온다. 그것은 이 건물에 밝게 조명을 비추기 때문이다. 천수각은 크게 대천수와 소천수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이 6개 있는 3층 건물인 대천수는 높이가 30m다. 그리고 계단이 4개로 2층 건물인 소천수는 높이가 19m이다. 이들 건물은 1877년 세이난 전쟁으로 불타고 1960년 철근 콘크리트조로 복원되었다.

▲ 구마모토성 천수각 야경 ⓒ 이상기


그러나 외관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되었다. 각층마다 건물의 아래쪽을 검은 나무판으로 두르고 그 위를 흰색 벽으로 둘렀다. 그리고 그 위에 기와를 얹고 박공형의 지붕을 달았다.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려 중후한 느낌이 들고, 날렵한 모습의 박공을 4면에 설치해 건물의 품격을 높였다. 그리고 건물 아래를 받치고 있는 석벽은 엇물리게 쌓아 대포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만들었다.

이곳 천수각 안에는 성주를 지낸 가토 가문과 호소가와 가문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세이난 전쟁과 관련된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 5시 30분 이후에는 입장할 수 없어 겉모습만 살펴본다. 천수각 앞 광장 왼쪽으로는 은행나무가 있고, 그 뒤로 혼마루 어전이 있다.

▲ 혼마루 어전의 내부 모습 ⓒ 이상기


혼마루 어전은 히고지방 행정관서로 그 역할을 했다. 이것 역시 1877년 세이난 전쟁시 소실되었고, 2008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어전 안은 쇼군노마(昭君之間), 오히로마(大廣間) 등 사무실 겸 방이 있고, 오미다이도코로(大御台所) 같은 대형 주방이 있다. 그리고 다실인 스기야(數寄屋)도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걸어서 구마모토성을 또 다시 한 바퀴 돌다

구마모토성을 다시 본 것은 이튿날 아침이다. 오전 9시 30분까지 전통공예관으로 가서 전시관을 살펴보고, 11시부터는 히고고류(肥後古流)라는 다도를 체험할 예정이다. 그래서 8시 45분 호텔을 나섰다. 우리는 걸어서 구마모토성을 한 바퀴 돌아 전통공예관으로 가기로 한다. 아침 시간이지만 일요일이어선지 거리가 복잡하지 않다.

▲ 니노마루 성벽 ⓒ 이상기


미유키다리 앞에서 어제 만났던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을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낮이라 숲속에 구마모토성 전체가 잘 보인다. 다리를 건너 오르는 길에 보이는 성곽과 성벽이 밤과는 다른 모습이다. 나무와 숲이 있는 자연친화적 요새다. 이번에 우리는 길을 따라가면서 서쪽 니노마루쪽을 살펴본다. 니노마루 역시 문과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각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공간이 훨씬 넓어 보인다.

가운데 니시오테몬(西大手門)이 있고, 양쪽으로 히쓰지사루야구라(未申櫓)와 이누이야구라(戌亥櫓)가 있다. 한자를 보니 야구라의 이름에 12간지가 들어갔다. 이것은 방위와 관련이 있다. 미신(未申)은 방위상 남서를 가리키고, 술해(戌亥)는 방위상 북서를 가리킨다. 이들 문과 야구라는 비교적 낮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앞으로 비교적 넓은 광장이 있다.

▲ 성벽 위의 우토야구라(왼쪽) ⓒ 이상기


우리는 이제 오른쪽 우토야구라를 다시 보면서 가토신사(加藤神社) 앞으로 간다. 그런데 이곳으로 잘 차려 입은 아이들이 들어간다. 함께 한 시마즈 선생에게 사연을 물으니 오늘이 3살, 5살, 7살 아이들이 가토신사에서 축복을 받는 날이란다. 우리는 축복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하고 나중에 점심식사 장소에서 축복받은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구마모토성 북쪽의 보안자카(棒庵坂)을 따라 내려간다. 이 길은 가토의 가신이었던 시모츠 보안(下津棒庵)이 이곳에 살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 길은 경사가 굉장히 급한 편이다. 그래서 현재는 보행자 전용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길을 내려온 우리는 히라야구라(平櫓) 건너편에 있는 구마모토현 전통공예관으로 간다. 그곳에는 이미 후쿠시마(福島) 관장과 사카모토 과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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