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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학생들이 파리 테러에 대처하는 법

[파리 현지 소식] 차분히 해법 찾는 젊은이들, 인종주의 갈등 부추기는 정치인들

등록|2015.11.19 10:54 수정|2015.11.19 10:54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앞 추모 현장이슬람국가(IS) 테러로 89명이 숨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주변에 지난 15일 정오께(현지시간)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1월 13일 금요일 밤 11시경,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에게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달려와 파리 거리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처음에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곧 뉴스와 SNS를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파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바타클랑(Bataclan) 극장에서는 아직도 백여 명이 넘는 인질이 잡혀 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은 사건이 발생했던 파리 10구와 11구보다 조금 더 위쪽에 위치해 있는 19구에 있는 폭트 드 팡탱(porte de pantin)역 근처로, 이곳도 금요일이면 밤늦게까지 젊은이들이 즐겁게 놀다 가곤 한다. 하지만 그날 밤거리에는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인 14일 토요일 파리의 모든 관공서, 학교 등이 문을 닫았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문을 연 상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들 나처럼 집에서 뉴스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건이 어느 정도 종결되고 15일 일요일이 되자 거리에는 평소대로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도 외출을 나갔고 나 또한 근처에 있는 빌레트 공원으로 나가 보았다. 겨울에는 몇 개월간이나 햇볕이 잘 나지 않는 파리에서 마치 이틀 전에 테러가 있었느냐는 듯 밝은 햇볕이 '죽음의 도시' 파리를 강하게 내리쬐었다.

햇볕이 귀한 파리 사람들은 내 예상과 달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롭게 공원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관공서나 인파가 많은 곳에서는 경비원들이 출입을 통제하거나 가방 검사를 하긴 했지만 테러가 일어난 곳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파리 시내는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일요일, 빌레트 공원의 풍경 ⓒ 배세진


'인종주의'에 빠지지 않는 대학생들에 감탄

16일 월요일 학교를 열 것인지 말 것인지 이야기가 많았지만, 프랑스 교육부는 테러에 굴복하기보다는 공화국의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멈추지 않는 것이 프랑스 교육의 사명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여 월요일부터 학교를 정상적으로 열었다.

내가 다니는 파리 7대학은 도서관을 포함한 각 건물 입구에서 경비원들이 가방 검사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수업 또한 평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학교 측의 제안으로 전 수업이 공통적으로 12시 정각에 1분간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이 있었다.

▲ 지난 16일, 파리 제7대학 대학생들의 모습 ⓒ 배세진


또한, 내가 듣는 수업에서는 교수가 수업 시간 중 일부를 할애하여 이번 테러에 대해 토론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고, 운이 좋게도 나는 인종이 각자 다른, 그러나 모두 '프랑스 사람'인 젊은 학생들의 생각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무섭다. 나는 공포를 느낀다."
"화가 난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모두들 예상하고 있지 않았어? 프랑스는 스스로를 방어하며 이 테러단체와의 전쟁을 시작해야 해."
"IS와 이슬람교는 똑같지 않아."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부터 질문해야지."
"샤를리 엡도 테러도 그렇고 왜 이민자 2세인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이런 테러를 일으켰을까?"

그리고 배제된 청년들을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그 토론에서 명확한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섣불리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학생들의 자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이 발언할 때마다 약간의 공포와 슬픔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슬픔으로 인해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것이 테러 단체가 원하는 일"이라며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교수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듯했다.

수업이 끝나고 잠시 들른 학교 앞 서점에서도 가방 검사가 있었고, 수상한 물건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일부 노선이 폐쇄되어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이렇듯 곳곳의 검문검색이 강화되었고, 사람들이 조금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파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사람들도 예전과 같다.

최악의 테러, 우경화가 걱정된다

집에 도착해선 기사를 통해 이러한 발언을 접할 수 있었다.

"국가의 안전에 관한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을 때 외국인들을 추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중국적 프랑스인들의 국적을 박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헌법 개정을 제안하며)
- 올랑드 대통령

"즉시 우리 영토에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중단시켜야 한다." 
- 마리 르 펜 국민전선 대표

▲ 올랑드 대통령과 마린 르 펜 국민전선 대표 ⓒ 오마이뉴스


올랑드 대통령의 발언, 엄청난 수의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는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의 발언, 그리고 현재 프랑스의 SNS상에서 오고 가는 거친 말들을 보면서 내가 경험하고 있는 대학사회가 프랑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홍세화씨가 SNS에서 "파리 테러의 참상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면, 이 테러가 불러올 프랑스 사회의 변화상은 너무나 두렵다"라고 말했듯이,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프랑스 테러로 기록될 11월 13일의 파리 테러가 프랑스 사회를 얼마나 더욱더 우경화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이는 테러 이후의 프랑스 사회가 정말 테러 이전의 일상 그대로 돌아올 수 있을지, 또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가 이 사회를 어떤 식으로 바꾸어 놓을 것인지 한국에서도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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