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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보호', 50년 전엔 정부가 말했는데

[주장] 1965년 설악산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자던 절박함은 어디로

등록|2015.11.19 10:51 수정|2015.11.19 13:50

▲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관리에 두 손 놓은 문화재청" ⓒ 녹색연합


지난 8월 28일,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조건부 통과하였다. 하지만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수차례 지적되었듯이 이 심의는 내용과 절차에서 심각한 하자가 있는 불공정한 심의였다. 표결 당시 무자격 정부 위원이 참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환경부가 양양군과 손잡고 비밀 TF를 구성하면서 문제로 지적됐다.

그리고 이제 문화재위원회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승인에 관한 심의를 앞두고 있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일 뿐만 아니라 천연기념물 171호로 지정된 천연보호구역으로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면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심의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없다.

설악산은 천연기념물의 보고로서 중요한 국가 문화재의 지위를 차지하고 이미 문화재청에서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듯이, 설악산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천연기념물의 지정 취지에 부합하는 사업일까?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국가와 인류의 유산인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책임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심의할 수 있을까?

문화재청이 케이블카 사업을 엄정하게 심의하려면

사실 문화재청은 그동안 설악산 관리에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된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에 대한 관리 예산이 지난 15년간 거의 배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이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보호지역 카테고리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에 등재되어 있음에도 이에 따른 보존 노력도 없었다.

강원도 양양군이 추진하는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천연보호구역을 관통하도록 계획되고 있다. 대규모 관광객을 상부로 태워 나르며 직접적인 환경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인공구조물인 케이블카 사업은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

승강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직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명될 위기에 놓였던 중국 장가계의 사례도 있다. 세계자연유산의 취지를 고려할 때, 설악산과 같은 국가 문화재에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것은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문화재청이 국가 문화재를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면, 무엇보다 공정하고 엄정하게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심의해야 한다. 그를 위해선 첫째,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조사 계획은 양양군이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현상변경을 신청한 후, 문화재위원회가 수립해서 진행해야 하며 아울러 사회적 논란과 우려를 종식하고 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환경단체의 조사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환경단체를 배제한 채 설악산의 여러 천연기념물 중 오직 산양에 국한한 조사를 서둘러 시행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지금까지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둘러싼 우려와 논란을 불식시킬 수 없다.

공정한 심의를 위해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환경단체가 참여한 공동조사를 시행해야 하며 산양 같은 특정 대상이 아닌 동물·식물·경관·지질 등 전반적인 설악산의 자연환경을 정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둘째, 문화재위원회 심의 시 사업추진 측만이 아니라 시민·환경단체도 문화재위원회에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지난 8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오색케이블카 심의 과정에서는 사업자의 부실조사, 조사 자료의 의도적인 누락, 보고서 조작 등의 논란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을 반복하지 않고 신뢰성이 확보된 엄정한 심의를 위해서는, 설악산 전체에 대한 현장조사·환경단체의 조사참여와 의견 개진 보장 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자연 상의 피해가 가장 적다고 할 수 있는 지역이 설악산과 그 외 수 개 지역에 불과할 것이니, 이 지역만이라도 우선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여야 될 것이다."

국가기록원에서 찾은 1965년 당시 정부가 설악산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밝힌 취지문이다. 자연자원의 보존보다는 개발에 더 급급했던 지난 시간 속에서 그나마 설악산을 지금 만큼이라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만이라도 우선 보호하자' 했던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자연공원에 케이블카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1965년 당시 설악산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던 그 절박한 마음으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의 올바른 심의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황인철 시민기자는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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