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전라남도 진도군 동석산에 바라본 남해

등록|2015.11.18 17:54 수정|2015.11.18 17:54

▲ 동선산에서 바라 본 남해바다 ⓒ 여경수


지난 17일 전라남도 진도군에 있는 동석산을 다녀왔다. 진도는 진도대교를 따라 차로 섬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동석산은 정상이 219m 정도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암벽으로 이루진 구간이 많다. 그리고 산의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남해를 조망할 수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군을 연결하는 진도대교를 넘기전에 해남에는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우수영과 관련된 유적지가 국민공원지로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진도와 관련된 큰 사건을 꼽으면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원나라 침공시 삼별초가 진도 용장산성에서 원과 항전한 사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그리고 지난해 있었던 세월호 사건을 꼽을 수 있다.

고려시대 무신정변(1170년) 이후 최씨정권은 고려 왕을 허수아비로 내세우고, 정권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원나라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다. 1231년 원의 첫 침입 이후 원의 침략은 40여 년간 이어졌다. 고려 정부는 수군이 약한 원나라를 상대로 강화도로 천도하여 원나라와 대치했지만, 본토는 원에 의해서 무참히 수탈당했다.

1270년 고려는 원과 화친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최씨정권의 사병이 기반인 삼별초 조직은 진도 용장산성을 주된 근거지로 삼아 원과 결사항전하는 자세를 취한다. 진도에서 삼별초의 수장 배중손이 전사하자, 남은 삼별초 조직은 제주도로 넘어간다. 하지만 1273년 원에 의해서 진압당한다.

▲ 전라남도 진도군 동석산 ⓒ 여경수


이순신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 전법으로 왜군의 수군을 격퇴한다. 이후 조선 수군은 왜군을 상대로 연전연승한다. 하지만 이순신의 관직이 박탈당한 이후, 조선 수군은 거제도 앞바다 칠천량에서 왜군에게 참패를 당한다.

당시 조선의 왕인 선조는 이순신에게 남은 수군을 모두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순신은 1597년 진도와 해남 사이의 우돌목(명량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이루어낸다. 당시 진도 주민들은 이순신에게 명량에 나온 대사처럼 바람이 되어주었다.

진도 주민들은 지난 해 있었던 세월호 사건에서 팽목항을 비롯한 진도 곳곳의 공영시설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 동석산을 찾아 들어간 진도 읍내에서 본 팽목항 이정표를 보는 순간 다시금 가슴이 먹먹했다.

현재까지도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는 세월호 선주의 자살과 임시직 선장과 선원에 대한 형사재판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원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도 미진했다. 또한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가의 기능에 대한 물음도 더 이상 제기하지 못하는 있는 실정이다.

원의 침입, 왜군의 침입을 적절히 대처 못한 당시 지도층은 전쟁 이후에도 아무런 반성 없이 국가를 운영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 두 사건은 고려와 조선은 멸망하게되는 원인이 되었다. 동석산 산행 중 남해바다를 바라보며서 삼별초의 항전, 명량대첩, 세월호 사건을 다시금 생각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진도 주민들은 역사적 사건마다 큰 버팀목이 되어준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경수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hunlaw.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