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왜 비치하냐고? 책은 책일 뿐"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94] 조희연 서울 교육감
▲ 조희연 서울 교육감 ⓒ 서울시 교육청
지난 8일 서울 교육청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각급 중·고등학교에 비치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해 시의회가 예산을 편성한 것이라 밝혔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대응으로 비치면서 새누리당과 보수단체의 반발을 불렀다.
이에 서울시 교육청의 입장이 궁금해 지난 16일 서울 교육청 교육감실에서 조희연 교육감을 만났다. 친일인명사전 학교 비치 논란과 함께 누리과정 문제, 그리고 성일중 발달장애 직업교육센터 건립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어 보았다. 다음은 조 교육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서울교육청이 각급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의 비치를 발표해 논란이 되는데.
"친일인명사전이 최근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있습니다. 원래 친일인명사전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 한참 전인 지난 2014년 12월 서울시의회의 시의원들이 합의해서 친일인명사전 구매를 위한 목적성 경비를 증액 편성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시의회 결정을 존중해 학교에서 교육활동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친일인명사전 학교 비치를 추진하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왜 학교에 비치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진보와 보수의 시각에 상관없이, 다양한 견해를 갖는 책들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책일 뿐입니다. 특정한 목적으로 학교에 비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 교육감이 지시해서 학교에서 구매하는 것과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다르지 않나요?
"시의회에서는 예산 편성할 때 다양한 예산을 편성했어요. 친일인명사전 예산도 있고, 독도 사랑 교육 등 다양한 예산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학교에 도서구매비가 있어서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책을 구매해서 비치할 수도 있어요. 책은 도서관에 수없이 많잖아요. 책이 하나 있다는 것 하고, 학생들이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르잖아요. 저희는 서울시의회의 예산 편성을 존중해서 할 거예요.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의 경우엔 발간 과정에서 박지만씨 등이 고소해서 논란도 있었지만, 원고 패소로 친일인명사전 자체 발간에 대해서 타당성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있습니다. 책이 비치되는 것에 대해 정치적 논란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잘못하면 '분서갱유' 같은 발상으로 갈 수 있거든요.
오히려 논란 자체에 대해 학생들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죠. 정반대로 보수적인 견해의 책이나 논란이 되는 책도 학교도서관에 비치될 필요도 있죠.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타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된 지 2주가 흘렀어요. 집필진 선정 등에서 논란이 있었는데.
"그동안 역사 교사와 전문가들, 학부모, 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했는데도 교육부가 국정화를 강행하여 국론의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교과서 국정화는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해요. 전 세계적인 개방화와 다원화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의 인식을 개방하고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그런 견지에서도 국정화는 부적절한 정책이고 지금이라도 철회되도록 중지를 모으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욱이 '바른 역사관의 확립을 위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질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건강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바른 역사관이 수립될 수 있어요.
덧붙이자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교과서냐 아니냐 차원으로 우리의 논의나 인식이 한정되면 안 돼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역사교육의 진정한 방향이 무엇이 좋을지와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역사교육의 방향과 관련된 토론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주 협소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한국사를 보는 열린 시각으로 역사교육이 어떻게 이뤄질 것이냐에 대한 폭넓은 토론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비판한 일본의 역사 교육은 아베의 역사인식에서 보듯 자폐적이고 자국 중심적인 편협한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시각이고. 그것이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로 나타나는 거죠.
일본 우익교과서와 우리의 국정교과서가 굉장히 유사성을 가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국정교과서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 겁니다. 후소샤 역사교과서가 드러내는 국수주의적이고 편협한 역사인식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동안 일본과 비교해 개방주의적 입장을 취해왔는데, 국정화 시도에 반대하면서 더 폭넓은 시각에서 우리 아이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국선언 참여 교원 징계,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 조희연 서울 교육감이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울시 교육청
- 언론 보도로는 조 교육감님이 대안 교과서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요.
"국정화에 대항하는 13개 시도교육감이 대안교과서를 만들자는 제안이 있지만, 교육청이 바로 교과서를 내는 것은 반대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기존에 역사교과서를 내던 연구 집단이나 출판사가 있으므로 오히려 인정도서를 다양하게 출간하기로 하고 13개 교육감이 인정교재를 공동으로 설정해주는 것으로 가야죠. 대안 교과서도 하나면 획일화될 수 있어서 다양한 교과서를 공동으로 인정해주는 방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하지만 법적으로 대안 교과서는 안 된다던데.
"지금도 인정 도서는 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하죠. 단지 이건 보조교재가 되는 거죠. 그리고 국정 발행에 대응해서 교사용 지침서를 공동으로 발간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어차피 현재도 교사 지침서는 만들고 있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법정으로 국정교과서가 있는 상황인데, 교사 지침서는 지금도 있으니 대안적인 교사지침서를 공동으로 만드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죠."
- 교육부는 시국선언 하는 교사들 징계를 요구했어요.
"전교조에서 주도한 '교사 시국선언(2015.10.29)'에 참여한 교원에 대해 교육부가 11월 11일 자 공문을 보내 '시국선언은 참여 교원에 대해 사실 확인 절차 거쳐 징계 등 신분상 처분 12월 11일까지 엄중히 조치하라'고 공문을 보낸 상태예요. 예시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징계를 위한 세부지침까지 정해서 내려보냈어요. 교원의 집단 행위 금지나 성실 의무 등을 위반했는지는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 역사 교과서 문제로 가라앉아 있지만, 누리과정도 문제가 돼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교육청이 아닌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시도교육감님들이 여러 차례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졸속으로 만든 시행령을 근거로 각시도교육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년에도 올해처럼 어린이집 관련 단체와 각 시도교육청이 갈등을 겪게 될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요.
"이것은 중앙정부의 공약사항이자 박 대통령이 국가재정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책임진다는 공약이 있어서 시작된 것인데, 그 이후 예산이 교육청에 전가되면서 예산 파동이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상황입니다.
작년에 실제로 누리과정 예산은 4조 원입니다. 그중 유치원이 2조, 어린이집이 2조 천억 원 정도 됩니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를 통한 복지사업이기 때문에 일반 지자체를 통해 배부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린이집 예산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 있고, 시도교육감이 단합해서 편성하진 않았지만 일부 교육청은 편성한 상태죠. 정부는 누리과정을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하고 지방채 이자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등 교부금 내에서 교육청이 부담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제가 여기서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교부금 자체가 정부 입장에서 보면, 작년과 비교하면 1조 8천억 원 증가한 39조 8천억 원을 교부했으니 거기서 부담하라고 해요. 그러나 사실상 세출에서 여러 요인이 이미 증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건비, 학교운영비, 시설예산 등 여러 예산 등이 증가했어요.
그리고 교육청의 교육재정은 90%가 경직성 경비입니다. 가용예산이 9~10% 밖에 되지 않아요. 가용 재원이 전국적으로 4.8조인데, 거기서 어린이집 보육료만 2조 하면, 41% 정도로 반절을 어린이집이 먹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학교운영비나 다양한 교육사업, 환경개선 사업에서 바로 긴축에 들어가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겁니다.
또 강조할 것이 기재부에는 교육청 예산에 여유가 많아서 담당할 수 있다고 얘기해요. 왜냐면 교육청 예산은 중앙정부가 교육부를 통해 주는 교부금이 있고, 시도에서 오는 전입금이 있어요. 그러나 지자체 전입금이 1.4조 증가할 거라 전망했는데, 실제 시도교육감협의회 광주사무국 집계에 따르면 4천5백억밖에 증가하지 않았어요. 그럼 거기서도 1조가 펑크가 나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물론 지역별로 시도교육청이 대단한 재정 위기를 겪고, 이는 곧 아이들 교육에 마이너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서 조금 여유 있거나 아주 파국적 위기를 겪는 곳도 있고 시도별 재정 상황에 차이는 있어요. 예를 들어 대구 같은 경우는 어린이집 예산 6개월분을 편성했는데, 그조차 유치원 6개월, 어린이집 6개월은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죠. 그래서 온전하게 편성한 곳은 한 군데도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부터 국회 예산심의가 시작되기 때문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주길 바랍니다."
- 그럼 어린이집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갈 생각이신가요?
"저는 '어린이집이 교육청 관할이 아니고, 일반 지자체 관할이라서 우리는 예산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모두 한국형 복지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예산이 전달되는 방식이 어떠하든 예산 파동이 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울의 어린이집은 최소한 보육료 대란이 나타나지 않도록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예산을 풀어 보육료 대란이 나타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 생각하는 대안이 있나요?
"궁극적으로는 유보통합을 국가 수준에서 실시하고, 교육복지와 국가 복지 시스템의 개혁, 지방교부금 비율을 조정하는 등 구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재부에서는 '학생 수가 줄고 있으니 교육 투자를 줄여야 한다, 여유가 없다'는 데 이건 너무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봅니다. OECD 통계로 볼 때 우리나라 공교육 투자는 지속해야 하고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 학생 수가 줄어드는 계기를 교육 여건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해요."
"발달장애학생 직업교육센터, 주민과 접점 찾아야"
▲ 조희연 서울 교육감 ⓒ 서울시 교육청
- 성일중과 관련해, 발달장애학생 직업교육센터 건립을 일부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는데요. 이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교육청과 한국고용공단이 함께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특수학교에는 직업훈련 과정이 있으나 일반 학교 특수학급에 속한 학생들은 직업능력개발 기회가 없었어요. 앞으로 전국적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기관을 만드는 방향에서의 첫 삽을 뜨는 겁니다.
제기동 주민들께서 센터가 들어서는 성일중에 여러 타격이 있을 것이란 측면에서 반대하고 계십니다. 공사를 여러 차례 연기하면서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민들께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장애인과 함께 살기 위한 방향에서 노력을 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발달장애 개발센터는 쓰레기 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이 아니니 지역주민도 개방적 마음으로 접근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교육청과 주민이 접점을 찾으면 좋겠어요.
주민들 우려 중 가장 합리적인 부분은 센터가 들어서서 성일중이 기피학교가 되지 않겠느냐는 부분일 텐데, 거기엔 성일중에 대한 애정이 있으신 거 같아요. 저는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아이들이 사회봉사해야 하는데 같이 가서 봉사하고 장애인들을 돕는 활동을 하면서 인성 교육을 할 기회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그러나 주민들의 우려를 인정하면서 다각적으로 지원하면 좋겠어요. 주민들과 함께 성일중을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들기 위한 성일중 발전위원회 등을 만들어 주민의 걱정이 기우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기동 지역주민들께서 통상 '님비'라고 표현되는 것과 조금 다른 태도를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특수학교나 직업개발센터는 좋은 것인데 장소가 협소하니 제기동 내에 다른 지역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점에서 보면 머리를 맞대고 성일중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접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이야말로 갈등을 대화와 양보를 통해 풀어가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기동 분들께 머리 숙여서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말씀드립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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