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빠진 빵, 내놓기 무섭게 팔린다
자연 발효시킨 누룩으로 빵 굽는 전남 화순의 시골빵집 조유성씨
▲ 서울에서 왔다는 한 아주머니가 '누룩꽃이 핀다'의 빵을 사려다가 다 팔리고 없다는 말을 듣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11일 낮이었다. ⓒ 이돈삼
"빵 없어요?"
"죄송합니다. 다 떨어졌는데요."
"어떡하나? 딸이 꼭 사오라고 했는데."
"오늘 주문하십시오. 내일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택배도 가능하나요?"
"그럼요."
지난 11월 11일 낮이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60대 아주머니와 빵집 '누룩꽃이 핀다' 주인의 이야기다. 이 빵집의 빵은 구워서 내놓기가 바쁘게 동이 난다. 예삿일이다. 그렇다고 빵집이 도심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한적한 산골마을에 있다.
▲ 누룩으로 구워낸 자연발효 빵. 막걸리를 빚는 원리인 당화과정과 알코올 발효로 설탕 없이 빵을 만든다. ⓒ 이돈삼
▲ 자연 발효시킨 누룩으로 만든 단팥빵.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을 지니고 있다. 빵 특유의 속쓰림도 없다. ⓒ 이돈삼
비결은 맛있는 빵에 있다. 누룩으로 만든 발효빵이다. 밥이 되는 빵이다. 서양의 빵 만드는 기술과 우리 전통의 막걸리 빚는 방식이 결합됐다. 누룩과 우리밀가루를 발효시키는 것이다. 천식과 당뇨에 좋은 뽕잎도 첨가한다.
막걸리를 빚는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당화 과정과 알코올 발효로 설탕 없이 빵이 만들어진다. 달지 않고 담백한 게 특징이다. 발효에 의해 글루텐까지도 분해가 돼 속쓰림이 없다. 소화도 잘 된다.
만드는 빵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단팥빵과 쿠키, 머핀이 전부다. 빵집 '누룩꽃이 핀다'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옛 이서초등학교 앞에 있다. 조유성(45)·이미경(44)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 자연 발효시킨 누룩으로 빵을 만들고 있는 조유성 씨. 그가 자신의 귀농에 얽힌 이야기와 빵을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돈삼
▲ 조유성 씨가 '누룩꽃이 핀다'를 찾은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옆에서 부인 이미경 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 이돈삼
주인 조씨는 당초 닭을 키웠다. 순천에서 나고 자라 대학 진학을 서울로 했다. 대학 졸업 직후에 고향으로 귀농했지만, 1년 만에 털고 나왔다. 한동안 도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귀농할 지역을 물색했다.
화순군 이서면 안심마을에 둥지를 튼 건 2003년이었다. 지인을 따라 들어와 닭을 키우며 유정란을 생산했다. 큰아들의 이름을 따서 '우석이네 농장'이란 이름도 붙였다. 유정란은 가까운 광주와 화순읍을 대상으로 직접 팔았다. 닭 사육사를 조금씩 넓혀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사이 식구 둘이 늘어 2남 1녀를 뒀다.
시쳇말로 잘 나가던 귀농인 조씨에게 큰 시련이 닥친 건 3년 전이었다. 한반도 전역을 휩쓴 태풍 볼라벤이 닭 사육사를 삼켜버렸다. 기르던 닭도 거의 폐사했다. 다시 일어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질적인 천식이 도지면서 건강도 갈수록 나빠졌다. 허리 수술도 받았다.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화순에서 광주를 오가며 직장생활을 했다. 2013년이었다. 남는 게 없었다. 교통비와 점심값을 빼고 나면 월수입이 100만 원도 못됐다. 먹고 살기 힘들었다. 논밭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 조유성 씨의 여동생 은하 씨가 쿠키를 만들고 있다. 은하 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최근 내려와 오빠의 일을 돕고 있다. ⓒ 이돈삼
▲ 갓 구워낸 쿠키. '누룩꽃이 핀다'의 몇 안되는 생산제품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조씨는 다시 사업에 눈을 돌렸다. 술과 빵을 염두에 뒀다. 닭을 기르면서 뽕잎발효사료를 만들어 먹이고, 유정란으로 쿠키를 만들어먹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유정란의 대량 소비처였던 빵집을 드나들던 경험도 한몫 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전통주 빚는 법을 배웠다. 빵을 만드는 기술도 익혔다. 한동안 읍내 빵집에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을 하며 현장경험도 쌓았다. 아내 이씨는 커피 볶는 기술을 배웠다. 그 사이 살던 집을 처분하고 셋방으로 옮겼다.
마음을 다잡은 조씨는 발효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을주민들에게 나눠주며 평가를 받는 것도 일상이었다. 맛을 본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다. 빵을 만드는 기술과 맛에 자신감이 생겼다. 체험장을 겸한 빵집을 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을 했다. 한 목소리로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심지어 '미친놈' 소리도 들었다. 차라리 산골에서 많이 나는 칡으로 즙을 내서 팔아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 누룩꽃빵과 과자를 사려고 '누룩꽃이 핀다'를 찾은 여행객들. 지난 11일의 모습이다. ⓒ 이돈삼
▲ 산골마을에 자리잡은 시골빵집 '누룩꽃이 핀다'의 모습이다. 화순적벽에서 가까운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땅 팔아서 빚 갚고 생활비로 다 쓰고. 집 팔아서 제빵기술을 익혔으니까.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죠. 오갈 데도 없고요. 만약에 빵집이 안 됐으면 야반도주라도 해야 할 처지였어요. 죽을 각오로 시작했죠."
조씨의 얘기다. 이서면 소재지인 야사마을에 자연발효빵 체험장을 차렸다. '누룩꽃이 핀다'는 간판도 이즈음 내걸었다.
자연발효빵의 비법은 누룩에 있다. 조씨는 집에서 직접 만든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어 원재료를 만든다. 빵에 들어갈 소는 지역에서 생산한 잡곡과 팥으로 만들었다. 마을과 이웃 주민들에게 제값 주고 산 원료들이다.
계란도 직접 키운 닭이 낳은 유정란만 쓴다. 지역에서 얻은 재료만으로 빵을 만든다. 생산량도 하루 220개 정도에 그친다.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빵의 개수가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욕심을 내지 않는다.
▲ 30년 만에 일반에 개방된 화순적벽 풍경. 시골빵집 '누룩꽃이 핀다'에 날개를 달아 준 곳이다. ⓒ 이돈삼
▲ 조유성 씨가 주민이 생산해 가져온 율무를 받아서 놓고 있다. 조 씨가 '누룩꽃이 핀다' 앞에 진열대를 마련해 놓고 팔아주는 농산물이다. ⓒ 이돈삼
행운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데서 찾아왔다. 30년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화순적벽이 지난해 가을 개방된 것이었다. 산골마을에 여행객들이 북적댔다. 빵맛을 본 여행객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누룩꽃이 핀다'의 빵이 나오자마자 동이 나는 이유다.
조씨의 산골살이는 빵을 만들어 파는 데 머물지 않는다. 빵집 앞에 조그마한 좌판을 펴놓고 마을주민들의 농산물도 팔아준다. 마을주민 누구라도, 어떤 농산물이든지 가져다 놓으면 팔아주는 것이다. 유통비용이 줄면서 마을사람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빵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마을의 농산물까지도 덩달아 잘 나간다. 산골마을에 활기가 넘치는 것도 '누룩꽃이 핀다' 덕분이다. 조씨의 건강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서울에 살던 여동생 은하(38)씨도 내려와서 빵집 일을 거들고 있다.
"겨울에는 가족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요. 발효빵과 쿠키, 피자빵, 핫도그빵을 만들어서 맛보는 체험이요. 빵이 발효되는 동안 마을에 있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보고 규남박물관을 돌아보는 마을투어를 계획하고 있어요."
여행 비수기를 앞둔 조씨의 구상이다. 자연 발효시킨 빵과 과자로 산골마을에 새바람을 일으킨 조씨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시골빵집 '누룩꽃이 핀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유성(왼쪽) 씨와 부인 이미경(가운데) 씨, 그리고 조 씨의 여동생 은하(오른쪽) 씨가 한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이돈삼
▲ '누룩꽃이 핀다' 바로 앞의 옛 이서초등학교 운동장에 자리하고 있는 고목 느티나무. 두 그루의 나무가 다정한 연인처럼 사이좋게 서 있다. 이른바 '연인 느티나무'다. ⓒ 이돈삼
○ 편집ㅣ최은경 기자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