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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인가 싶었는데, 벌거벗은 여인?

강화도 전등사의 나부상과 가을

등록|2015.11.20 11:56 수정|2015.11.20 11:57

▲ 전등사의 가을이 하늘에 닿았다. ⓒ 김종길


오랜만에 강화도에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20년 되었네요. 처음 강화도에 와서 놀랐던 건 남도의 섬과는 너무나 다른 땅의 생김새였습니다. 흔히 섬 하면 평지라고는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첩첩산중에 겨우 손바닥만 한 평평한 땅이 전부인데, 강화도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광활한 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고려가 강화도에서 몽고군에 맞서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비옥한 농토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고 처음으로 현실감 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척박하리라 여겼던 섬에 대한 선입견은 이후 진도에 갔을 때에도 그 기름진 땅을 보고 확실히 깨져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전등사만 들렀습니다. 전등사에 대한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가 않군요. 정족산성이 있었다는 것과 조금은 휑한 듯 한갓지던 절 마당만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이죠. 만추였습니다. 기억은 붉디붉은 단풍에 물들어 버렸고 절로 가는 마음도 그랬습니다.

▲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여 삼랑성이라고도 불린다. ⓒ 김종길


입구부터 어수선했지요. 이곳에선 산성의 문이 절의 산문을 대신했습니다. 종해루라는 현판을 단 남문은 한창 수리 중이었습니다. 정족산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여 삼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성에 올라 성문 좌우로 산으로 달음질하는 구불구불한 성벽에 한참이나 눈길을 주었습니다. 자로 잰 듯한 반듯한 돌이 아닌 그냥 막 생긴 대로 쓴 성벽 돌이 너무나 친근하게 다가와서 말이지요.

전등사. 법을 전하는 절이라는 뜻이겠지요. 그 옛날 아도 화상이 전한 진리의 등불이 시공에 구애됨 없이 꺼지지 않고 전해지는 것이겠지요. 붓다는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게 됩니다. 결국 자신을 등불 삼아 밝히고 법을 등불 삼아 밝히는 것이 불가의 뜻이니 절 이름의 유래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한 생각 쉬어 봅니다. 결국 바깥이 아닌 안에서 찾는 것, 바로 그것이겠지요.

산사라고 하기에는 무색하리만치 전등사는 몸살을 앓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세도 제법 커진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 없던 건물들이 이곳저곳에 생겨나서 산사의 고요함은 옛이야기에만 남은 듯합니다. 서울이 지척이니 이곳 또한 서울처럼 번잡하게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 한참이나 기다려서야 침묵하는 전등사의 가을을 담을 수 있었다. ⓒ 김종길


대조루 누각 층계 아래서 한참이나 기다려서야 깊은 침묵을 담았습니다. 침묵은 이제 이런 산사에서조차도 쉬이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부상

문득 대웅전 처마 밑을 보다 벌거벗은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원숭이인가 했는데, '나부상裸婦像'이라는군요. 대웅전 네 귀퉁이에 각기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어 법당을 빙 돌며 바라보다 절로 '까르르' 웃게 되더군요.

▲ 대웅전은 고졸한 맛이 으뜸이다. ⓒ 김종길


시인 고은이 한때 이 절의 주지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시에서 이 나부상을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강화도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 사내와 달아난/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 받으라고 한/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여인이 어쩌다 목수를 배반하고 도망을 쳤는지는 모르겠으나 도망친 여인을 저렇게 벌거벗겨 무거운 추녀를 받치게 한 건 조금은 가혹하지 않나 싶습니다. 요즈음이라면 난리가 나겠지요. 물론 이 또한 해학으로 웃어넘기면 그만이겠지만요.

▲ 무거운 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부상 ⓒ 김종길


▲ 못난 주춧돌에 천연덕스럽게 세운 기둥 ⓒ 김종길


하여튼 대웅전은 그 고졸한 맛이 으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번듯한 법당 건물도, 화려한 법당 내부의 불단과 닫집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기둥과 주춧돌이었습니다. 자연석인 주춧돌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입니다. 그 못난 주춧돌을 전혀 다듬지 않고 대신 기둥을 주춧돌 모양에 맞추어 세웠습니다. 이것을 '그랭이'라 하는데요. 참으로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런 우리의 건축술이지요.

마침 사시마지라서 스님들이 분주하게 법당으로 향합니다. 사시인 오전 아홉시에서 열한 시 사이에 부처님께 밥을 올리는 예식이랍니다. 뜰에 서서 예불소리를 듣습니다. 마침 하늘이 개이고 날이 하도 청명하여 예불의 울림소리가 퍽이나 좋습니다. 어수선한 절집과는 달리 이곳이 정토임을 알겠습니다. 귀를 활짝 열어 반깁니다.

▲ 전등사에 가면 명부전의 삼존상과 시왕상은 꼭 볼 일이다. ⓒ 김종길


▲ 정족산 사고에서 내려다본 풍경. 강화도 앞바다가 보인다. ⓒ 김종길


전등사에 오면 빠뜨릴 수 없는 정족사고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조선의 5대 사고라는 그 명성에다, 사고로 가는 오솔길과 장하게 자란 나무와 그 너머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전각과 전각에서 내려다보이는 강화도 앞바다 푸른 물결의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풍경입니다. 그 아름답고 서늘한 풍경에는 역시나 목은 이색의 시가 제격이다 싶습니다.

"...창틈으로 보인 산은 하늘에 닿았고/ 누각 아래 부는 바람 물결로 여울지네..."

다시 대조루 주련에 달린 이색의 시를 마저 읽으며 깊어가는 전등사의 가을을 읊어 봅니다.

'백 길 폭포 자락/ 엷은 구름은 바위 사이로 피어나고/ 외로운 달은 파도에 일렁인다/ 옷소매 자락에 동쪽 바다가 있고/ 영마루에 흰 구름도 가득하여라/ 푸른 산은 티끌 밖의 세상'

▲ 전등사의 가을은 아름답고 서늘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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