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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이 선거의 중요성 느끼는 계기 됐다"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 서명운동 마감... 학부모 등 갖가지 소회 밝혀

등록|2015.11.21 18:13 수정|2015.11.21 18:13
"학부모들이 선거·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무상급식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고, 아이들의 권리라 생각했다."
"엄마들이 정치가 내 삶에 관여한다는 것을 깨달기 시작했다."
"우리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힘을 모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 투표청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던 학부모들의 반응이다. 곳곳을 누비며 서명운동을 벌였던 학부모들은 '감동의 물결이었다'고 했다.

홍 지사 주민소환 서명운동은 지난 7월 23일 시작해 11월 20일로 마무리 되었다. 홍준표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는 홍 지사를 상대로 '진주의료원 폐업'과 '무상급식 중단'에다 '성완종 게이트' 사건 등의 이유를 들어 주민소환운동을 벌여왔다.

▲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서명운동 마지막 날인 20일 저녁 밀양시가지에서 늦게까지 활동을 벌였다. ⓒ 윤성효


▲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서명운동 마지막 날인 20일 저녁 밀양시가지에서 늦게까지 활동을 벌였다. ⓒ 윤성효


광역자치단체장 주민소환 투표청구 요건은 120일간 해당지역 유권자 10%(경남 26만 7000명) 이상이 '유효 서명'해야 하고,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6곳 이상이 10% 이상 참여해야 한다. 서명은 주민소환청구인 대표자를 대신하는 '수임인'만 받을 수 있다.

합천, 거창, 산청, 하동, 사천, 통영, 양산, 밀양, 함안, 김해에서 각 10% 서명 목표를 달성했다. 또 경남운동본부는 경남 전체 10% 이상 서명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남운동본부는 18개 시군과 민주노총 경남본부, 야4당 등에서 받은 서명부를 한 데 모으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체 서명부를 취합해 오는 30일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경남선관위는 서명부를 심사해 주민소환 요건이 충족될 경우 투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경남운동본부 강성진 집행위원장은 "서명부는 전체적으로 법적 요건을 넘겼다고 본다. 오는 26일까지 모든 시군에 흩어져 있는 서명부를 취합해 분류작업을 벌일 것"이라며 "현행 규정상 주민소환 서명기간이 끝나고 10일 이내에 서명부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오는 30일 선관위에 전체 서명부를 건낼 것"이라 말했다.

별도로 보수단체 등에서는 박종훈 경남교육감 주민소환 투표청구 서명운동을 지난 9월부터 벌이고 있는데, 학부모 등 단체들이 20일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 서명운동을 끝낸 것이다.

숱한 사례, '감동의 물결'... 밥값 대신 내준 손님

수임인들은 서명운동 마지막 날인 20일 자정까지 활동을 벌였다. 특히 수임인들은 이날 창원, 진주, 김해, 양산 등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길목마다 서명대를 설치하고 참여를 유도했다.

서명운동 현장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마산에서 주로 서명운동을 계속 받았던 박종권(64)씨는 "합성동, 댓거리에서 주로 거리 서명을 받았고, 천주교 마산교구를 찾았더니 수녀들이 안타까워하면서 적극 협조해주셨다"며 "그리고 몇몇 초등학교 학예발표회장을 찾았는데, 엄마들이 대부분 맞벌이를 하다보니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웠지만 그날 거의 대부분 만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서명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또 사례도 있다. 88세 할머니가 "우리 손자를 생각해서 해야지"라며 서명했고, 수임인한테 고생한다면 커피와 음료수를 사다주는 시민도 있었다. 박종권씨는 "37살 주부인 최윤정씨는 이전까지 시민운동도 해보지 않았는데, 몇 달 동안 굉장히 열심히 서명지를 들고 다니며 활동을 벌였다"며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양산에서 서명을 받았던 학부모들은 '감동의 물결'이었다며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학부모들은 한 초등학교 학예회 때 조심스럽게 갔는데 교장이 제일 먼저 서명했던 일, 거리에서 서명받다가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갔는데 한 손님이 '엄마들 고생한다'며 밥값을 대신 계산한 일, 1938년과 1940년생 노인 부부가 나란히 와서 서명한 일이 있었다.

서명 마지막날 오후 11시경 원룸에 사는 총각이 '이걸 마지막으로 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서명했다. 한 학부모는 "청각장애인 부부가 지나가다 수임인들이 외치는 소리를 처음에는 잘못 알아들었는데 초등학생인 아들이 수화를 해준 뒤 나란히 와서 서명했다"며 "그 광경을 보던 엄마들의 코끝이 찡했다"고 전했다.

▲ 양산지역 학부모들은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 투표청구 서명운동을 벌여 10% 목표를 달성했다. ⓒ 허문화


또 초등학생이 엄마 보고 서명하라고 자꾸 말해서 한 사례, 할아버지․할머니가 아파트 단지에서 자녀들한테 전화를 해서 나와서 서명하도록 한 사례, 마감 사흘 전 미국 출장을 다녀온 남편을 불러내서 서명하도록 한 사례, 술집 앞에서 서명하는데 남성들이 지나가며 먹을거리를 사다 준 일, 20대 청년들이 '우리도 무상급식 했으니 당연히 해야지' 하면서 참여한 일도 있었다.

수임인 허문화씨는 "부인이 먼저 하고 간 뒤 남편이 뒤에 와서 서명용지를 보면서 '집사람 이름도 있네'라며 서명했다"며 "서명운동을 벌이는 동안 감동의 연속이었다. 특히 40대, 50대 아빠들이 적극 도와주었다. 어른들은 다른 거는 몰라도 아이들 밥 가지고 장난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함께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임인 정은미(함안)씨도 "처음에는 학교 학부모회장들을 중심으로 수임자를 모았는데 매일 어느 정도 서명을 받았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알음알이로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 보니 숫자가 확 올라갔다"고 말했다.

수임인 김원중(산청)씨는 "우리 지역은 작은 학교가 많고, 학부모들은 호응이 컸다. 10% 숫자 채운다고 정말 힘들었다"며 "지역에 조합장 선거가 있었는데 그날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거의 대부분 다 참여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경남운동본부에 따르면, 유치원 교사로 있다가 서명받기 위해 사표를 던진 수임인이 있고, 한 달 동안 직장에 휴가를 낸 수임인과 마감이 임박하자 2주 동안 휴가를 내 곳곳을 다니며 서명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강성진 집행위원장은 "다들 열정적으로 서명을 받았다"며 "지역 곳곳에서 특히 학부모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서명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치가 내 삶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과정"

학부모들은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 투표청구 서명운동을 하면서 정치에 눈을 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종권씨는 "홍 지사가 소환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행복했고, 희망을 보았다"며 "학부모들이 정치와 선거의 중요성을 느꼈다. 정치인들도 정신을 차릴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정은미씨는 "이전에는 젊은 엄마들이 투표나 정치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서명운동도 정치적이어서 하지 않겠다고 하는 분도 있었지만, 결국 엄마들이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적극 나섰던 것 같다. 서명운동 기간은 정치가 내 삶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 사천지역 학부모들이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 투표청구 서명운동을 벌여 10% 목표를 달성한 뒤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 박남희


박남희씨는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엄마들이 생겨났다. 이전에는 방송에서 하는 뉴스를 그대로만 알았는데 지금은 다른 시각으로도 보려고 한다"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엄마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들이 무상급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지만 그것을 통해 사회에 관심을 가지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나 노동법 개악도 마찬가지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다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며 "그렇다 보니 그동안 집안 일만 하던 엄마들이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상경집회에 나서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허문화씨는 "이번에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무상급식은 누구든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고, 아이들만의 고유한 권리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평가했다.

서명운동 방해도 있었다... 조만간 서명부 제출

서명운동 방해도 있었다. 수임인 박남희(사천)씨는 "서명에 못마땅해 하는 분들이 와서 서명대를 엎을 분위기를 연출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분들은 '밥 먹고 할 일 없어서 그런다'거나 '집에 가서 애들이나 잘 챙겨라', '엄마들이 무엇을 알아서'라고 하더라"며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 있어도 대응을 했다가 뒤에는 무대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그런 말을 들으면 모멸감 같은 게 느껴졌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데 다들 우리 부모 세대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홍준표 경남지사와 박종훈 교육감이 18일 오후 경남도의회 의장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회동한 뒤 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고 있다. ⓒ 윤성효


무상급식 중단사태는 홍준표 지사가 지난해 말 예산 지원을 끊으면서 시작되었다. 무상급식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져 오다, 홍준표 지사와 박종훈 교육감은 지난 18일 회동을 통해 '급식예산 협상 재개'에 합의했다.

2014년까지 경남은 경남도청과 경남도교육청, 18개 시군청이 예산을 분담해 읍면지역 초중고교, 동지역 초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이 되었다. 그러다가 홍 지사와 시장군수들이 올해부터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아 무상급식이 중단되었던 것이다.

경남도청과 경남도교육청이 '무상급식 원상회복'에 합의할 경우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 투표청구 서명부는 어떻게 될까.

강성진 집행위원장은 "'무상급식 원래대로'를 외쳤던 학부모들이 홍 지사가 얄미우니까 주민소환운동까지 벌인 것"이라며 "경남도청이 무상급식 재개를 하더라도 1년 넘게 고생한 학부모들을 쉽게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남도가 무상급식 재개를 하더라도 그것과 무관하게 홍 지사 주민소환 투표청구 서명부 제출은 하게 될 것이고, 그런 부분을 전혀 고민하거나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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