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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워보이는 이 여자, 거짓말로 삶을 지탱하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94] 김동명 감독의 <거짓말>

등록|2015.11.22 11:18 수정|2015.11.22 11:18

▲ 영화 <거짓말>의 티저 포스터 ⓒ (주)대명문화공장


개봉한지 20여 일. 간신히 5000명의 관객을 넘겼다. 김동명 감독이 연출하고 김꽃비가 주연을 맡은 영화 <거짓말>이다. 2013년 제작돼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처웨이브상(독립영화의 배급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지난해 신설된 상으로, <거짓말>이 제1회 수상작이다-기자 주)을 받은 이 영화는 제작에 착수한 지 2년 만에 전국 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말이 전국 극장이지 개봉 첫날 26개 스크린에서 56회 상영됐으며, 지난 20일엔 단 3개 스크린에서 4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어쩌면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지 않은 독립 영화가 극장에 걸려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는 자체가 성공일지 모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못했다면 그 기회마저 놓쳤을지 모른다. 간절한 기회를 붙잡은 끝에 5000명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만났으니 선택받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는 한 해 평균 1000여 편이 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용관은 4곳에 불과하다. 예술영화 전용극장을 더하면 그 수가 적지 않지만 독립영화 전용극장과 예술영화 전용극장은 목적과 쓰임이 엄연히 다르다. 심지어 4곳 있는 독립영화 전용극장도 경영난에 시달리기 일쑤다. 마케팅이 어렵고, 완성도와 재미의 측면에서 모두 검증된 감독과 배우가 대규모 자본으로 찍어내는 영화와는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립영화는 살아남아야 한다. 독립영화에는 상업 자본에 좌우되지 않은 작가의 자유로운 목소리가 묻어나게 마련이고, 이러한 다양성이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변방의 목소리가 중앙으로 진출할 때 문화는 한 단계 발전하지 않던가. 독립영화가 살아있다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있다는 뜻이며 이를 듣는 귀 역시 열려있다는 뜻이다. 독립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고 마침내 상영관이 멸종하게 된다면 우리는 작품으로서의 영화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영화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 없이 위태로운 아영의 삶

▲ 건드리면 파사삭 하고 부서질 것만 같은 아영(김꽃비 분). <똥파리> 이후 오랜만에 관객들과 만났다. ⓒ (주)대명문화공장


<거짓말>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것을 갈망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가 바라는 게 '남들처럼 평범한 삶'이라는 점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버티고 버티다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게 이 세상에 그녀 혼자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제법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간직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아영(김꽃비 분)은 피부과 미용클리닉에서 여드름을 짜는 피부관리사다. 아버지는 빚쟁이에게 쫓겨 행방을 모르고, 어머니는 재혼해 연락을 끊은 집에서 언니와 동생을 챙기며 꿋꿋하게 생활해왔다. 쉴 틈 없이 노력했지만 그녀를 둘러싼 상황은 이미 파국 직전이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는 건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언니와 어두운 집구석뿐. 형부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남동생은 집을 나갈 생각으로 가득하다. 벌어온 돈을 월세와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한 때는 의지를 갖고 노력했을 아영도 어느덧 푸석하게 말라 톡 치면 파사삭 부서지고 말듯 위태로워만 보인다.

아영은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다. 배의 침몰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선장은 배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영화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영이 내린 선택은 거짓으로의 도피다. 현실을 바꿀 역량도 없고 탈출할 만큼 모질지도 못한 그녀는 거짓과 허영 속에서 매일의 갈망을 메워나간다. 자신이 여드름을 짜 주는 사모님들의 삶, 행복하고 편안해 보이는 그녀들의 삶이 곧 아영이 꿈꾸는 이상이다. 그래서 아영은 아무도 몰래 사모님이 된다. 그녀는 퇴근 후에 고급 아파트를 보러 다니고 점심시간을 쪼개 가전제품을 구경하며 한껏 부유한 사모님 행세를 한다.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가진 사람처럼 고급 아파트와 가전제품을 살피다 계약을 하고 다시 취소하길 반복하는 게 그녀의 유일한 취미다.

구질구질한 삶을 그렇게나마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아영에게 거짓말은 적당히 온건하고 짜릿한 취미였을 것이다.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진절머리 나는 삶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탈출구가 아닌가. 하지만 거짓이란 진실을 좀먹게 마련. 아영의 거짓말은 구를수록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이내 그녀의 통제를 벗어나 그녀의 삶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잔혹한 설정이며 인색한 이야기다.

'정신 차리자'고 되뇌면 되뇔수록 빠져드는 늪처럼

▲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거짓으로 구매계약을 하는 아영(김꽃비 분) ⓒ (주)대명문화공장


자신의 거짓말에 목덜미가 졸려 어찌할 수 없는 상황마다 아영은 '정신 차리자'고 수차례 되뇐다. 그러나 상황은 늪과 같아 버둥대면 버둥댈수록 더 깊이 처박힌다. 그런 그녀에게 애인인 태호(전신환 분)가 도움의 손길을 뻗지만 허영에 잠식된 아영의 눈엔 그마저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침몰하는 배와 가라앉는 아영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김동명 감독은 아영의 파멸을 통해 진실을 좀먹는 거짓의 위험을 고발한다. 영화의 끝에서 아영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오로지 거짓뿐이고 그 자리는 공허로 연출된다. 아영과 태호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그들 사이에 거짓이 끼어있었기 때문이고 감독은 이들 사이에 자리한 약간의 거짓조차 용납하지 않는 엄정한 결말로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아영이 태호와 함께 그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는 장면부터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급경사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내닫는다. 끝없이 갈망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것에 절망하는 주인공의 드라마나 냉장고로 상징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등에 보다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영화는 거짓의 위험을 고발하는 정도에서 걸음을 멈췄다. 몇몇 상징은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등장하고 문제의식은 날카롭지도 깊이가 있지도 않아 제법 흥미진진하게 끌어온 영화임에도 호의적인 평가를 얻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영의 자살이라는 전형적인 결말을 용납할 수 없고, 창의적인 결말을 떠올리지도 못한 감독은 도식적 상징을 이용한 열린 결말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영이 다시 마트로 향하는 수미쌍관의 결말이나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순간에 예기치 못한 반전을 준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파국과 허망한 소멸을 선택한 건 너무도 무책임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아영에게 공감해온 관객도 태호가 돌아서던 그 순간 아영에게서 돌아서고 말 것이다. 태호의 어머니 앞에서 태호와 격투를 벌이고 그의 차를 훔쳐 떠나는 아영의 모습은 마치 배추김치로 따귀를 때리고 아메리카노를 얼굴에 들이붓기 일쑤인 아침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충분히 관객을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설정을 가진 영화가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도전적 작가 모인 영화계, 왜 여자원톱 기용하지 않을까

▲ 허영과 거짓으로 가득한 넓은 집에 쓸쓸히 앉아 있는 아영(김꽃비 분) ⓒ (주)대명문화공장


여러모로 한계가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은 적지 않다. 특히 김꽃비라는 여배우를 내세워 98분을 끌고 간 드라마라는 점이 그러했다. 생각해보니 한국영화 가운데 여배우를 원톱으로 기용한 영화가 있었던가 싶다.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나 봉준호의 <마더>, 황동혁의 <수상한 그녀> 정도가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작품인데 같은 기간 남자 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운 영화가 무려 수십 편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가장 도전적이어야 할 작가들이 모인 영화계가 여성을 내세운 영화를 찍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너무도 안타깝게 여겨진다.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내놓아도 부족한 세상인데 자본의 논리와 고정관념에 갇혀 판에 박힌 캐릭터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게 아닌가. 이 같은 상황에서 재능과 가능성을 갖춘 아까운 여배우들이 그저 조연만 하다 잊히기 마련이다. 너무도 낭비가 아닌가.

촬영 현장에서의 애교 따위로 '여배우의 덕목'을 운운하며 빈축을 산 한 배우의 발언이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거짓말>이 보인 몇 안 되는 공업은 바로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얼마든지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비록 그 수준이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았을지라도 이 작품을 발판으로 하여 우리가 이제껏 보지 못했으나 봐야 마땅한 이야기를 더욱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이 영화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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