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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파국 대종상,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주장] 오랜 역사가 유일한 장점이 된 대종상, 스스로 자초한 일

등록|2015.11.23 11:50 수정|2015.11.23 12:08
지난 20일 늦은 오후, 대종상 영화제가 파행을 맞았다.(관련 기사 : 대리수상 불가라더니, 대종상 영화제의 '굴욕') 남녀주연상 후보들은 전부 불참했다. 조연상, 감독상 후보들도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팬들의 투표로 수상자가 된 인기상의 주인공 김수현과 공효진 역시 불참의 뜻을 밝혔다. 놀랄 일은 아니다. 차라리 이미 예견된 사건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대종상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지는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우스운 상황이 여러 차례 펼쳐졌다. 수차례 대리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신현준, 영화제 측에 의해 수상이 강권 됐다가 취소된 김혜자, 그리고 여러 번 화면을 덮은 오타와 오기. 단지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대종상이 개최된 지 반세기가 넘었다. 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시상식이, 시청자와 한국영화의 팬들에게는 예능프로그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안타깝다. 답답하다. 이 안타까움이 내년에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영화제에 관한 논란은 벌써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대종상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란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종상은 어떻게 망하게 되었나?

'대종상' 임원들의 발걸음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최하원 집행위원장과 김구회 조직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대종상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순서겠다.

우선, 판정의 공정성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상에 오르는 후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 선정된 작품상의 다섯 후보만 봐도 그렇다. <국제시장>, <사도>, <베테랑>, <연평해전>, <암살>. 한 해 동안 관객 수가 가장 많았던 다섯 영화다.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작품에 주는 상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그렇게 본선에 오른 작품을 심사하는 것은 영화 평론가, 영화 학회인들이 아니다. 영화계 원로들이다. 그들이 심사를 맡다 보니, 젊은 감독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수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영화계의 중론이다.

지난 51회 대종상 심사에 참가했던 한 심사위원은 "최근 영화의 흐름을 잘 모르는 원로들이 단체의 지분으로 나오다 보니 폭넓은 시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작품 선정의 공정성은 보장되어도, 심사위원 선정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과의 공정성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영화인총연합회, 비리의 온상

영화제의 주최를 맞고 있는 영화인총연합회에 관한 논란도 이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누군가 돈을 훔쳤다. 무려 2억3600만 원에 달하는 돈, 대종상과 관련한 보조금이었다. 범인은 정인엽 전 연합회장과 강 전 협회 사무총장. 지난 1월 사실은 밝혀졌고, 큰 논란이 일었다.

정 회장은 대종상과 관련한 계약을 체결하며, 계약금 일부를 돌려받아 이를 개인적인 빚을 갚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창조경제다. 대종상이 소수가 이권을 챙기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이는 영화인들의 불신이 본격적으로 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 8월에는 행사대행업체가 대종상 실무를 맡은 원로 영화인들에게 총 9100만 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업체에 개막식 및 행사 주관, 총괄사의 자격을 부여하기로 하고 받은 계약금이었다.

이렇게 새는 돈이 많다 보니 돈이 없었다. 결국, 돈이다. 대종상의 최대후원사였던 일광그룹마저 손을 뗐다. 대종상 조직위원장이었던 이규태 회장이 지난 3월 구속된 이후였다. 대종상을 후원, 투자하던 10개 협찬사 중 6개가 일광그룹의 계열사였다.

주최 측은 돈이 급했다. 돈이 필요했다. 결국, 돈을 대주겠다는 이에게 운영과 집행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게 누구인지 재고 따질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영화제를 처음 맡는 이들이 제대로 된 시상식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배우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유료 투표, 시상식에 후보자가 자리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운영 미숙 등 대종상은 미흡에 미흡을 반복했다. 영화인들의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정을 잡았고, 후보들을 섭외했고, 거절당했다.

영화인 없는 영화제는 없다

고원원, '대종상' 찾은 중국 배우중국 출신의 배우 고원원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시상식을 기꺼이 찾을 이는 많지 않았다. "올해부터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배우에게 상을 주지 않겠다"는 발표로 대종상은 참가상이냐는 비웃음이 영화계에 가득했다. 대종상이 참가상이냐는 비꼼이 잇달았다. 오히려 이 발표는 참가하려던 배우들마저 등을 돌리게 하였다. 참가했기 때문에 받는 상이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사업본부장의 발언이 기름을 끼얹었다. 조근우 본부장은 "비난받아야 할 이들은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이라며 "우리나라 배우 수준이 후진국 수준이다, 스타답지 못하다, 국가적인 손해"라며 막말을 일삼았다. 소식을 접한 영화 팬들은, 대종상이 배우들에게 '갑질'을 한다며 대종상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내놓았다.

대종상이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된 데에는, 받지 않아도 되는 상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대종상은 바뀌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우선, 현재 대종상을 제대로 주최할 능력이 없는 영화인총연합회로부터 대종상을 분리하는 것이다. 비리와 진행 미숙, 준비 미비로 대종상을 망칠 뿐이라면, 새로운 주최자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두 번째. 전문성을 갖춘, 더 폭넓은 심사위원진을 갖추는 것이다. 작품성이 아니라 흥행성이 수상의 기준이 되는 영화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수상작 선정 기준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대종상은 바뀌어야 한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바란다. 나는 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대종상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찬사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가 장점의 전부인 시상식으로 남는 것은 더욱 원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대종상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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