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 가기 전, 카사노바가 남긴 말
[이탈리아 미술 기행 18-1] 베네치아 4 대종루, 두칼레 궁전, 산 마르코 대성당
바다 위의 도시, 베네치아는 안개로 유명합니다. 특히 겨울의 베네치아는 아침 저녁으로 바다에서 밀려오는 짙은 안개 탓에 가까운 섬들을 잇는 바포레토 운행까지 중지할 정도죠. 그런데 나는 운이 좋았는지 이틀 동안 안개없는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부라노섬'의 원색의 향연도, '카날 그란데'의 눈부신 물빛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종탑의 오렌지빛 황홀한 노을도 만날 수 있었죠. 그리고 사흘 째인 오늘도 베네치아의 하늘은 맑고 투명합니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인근의 승강장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카날 그란데'를 통과합니다. 이른 아침의 '카날 그란데(대운하)'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직은 곤돌라도 바포레토도 거의 다니지 않고, 다리 위로 운하를 건너는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대신 아침 햇살을 머금은 물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나를 포함한 서너명 남짓 여행객들을 태운 바포레토는 바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합니다. 오늘 일정은 '산 마르코 광장'과 그 주변 건물들로만 가득 채웠습니다.
우선 '산 마르코 광장'에서, 아니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곳, '대종루(Campanile)'에 오릅니다. 어제 올랐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탑의 쌍둥이 형처럼 보이는 '대종루'는 등대가 함께 있어서 베네치아 바다를 누비는 수많은 배들의 이정표 역할까지 톡톡히 합니다. 바다에서 '산 마르코 광장' 쪽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베네치아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지요.
거의 100미터에 가까운 '대종루'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이용 요금이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대종루'에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전망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습니다. 'ㄷ'자 모양의 '산 마르코 광장'도 한 눈에 들어오고 명물인 시계탑과 '산 마르코 대성당', 바다 건너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도 햇빛 아래 반짝입니다. 저녁 노을과 함께 했던 어제의 베네치아가 온통 오렌지색이었다면, 오늘 아침의 베네치아는 하늘과 바다의 청명한 푸른빛 속에 보색 대비라도 벌이듯 더 짙어진 오렌지색을 발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대종루'에서 내려와 이제 본격적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합니다. 먼저 '대종루' 맞은편의 화려할 건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산 마르코 광장'의 바닷가 입구 쪽을 차지하고 있는 '두칼레 궁전'은 18세기 말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 '도제(Doge, 총독 혹은 대통령)'의 공식 관저 건물이었습니다. 원래는 14세기에 지어졌으나 화재로 처음 모습은 많이 사라졌고, 16세기에 재건축되어 지금같이 비잔틴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재된 모습으로 남은 것이죠.
'두칼레 궁전'의 2층과 3층의 각종 집무실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는데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대작들이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2층 회랑으로 오르는 '황금 계단'에서부터 그 화려함에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정부 기관이었기 때문에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기엔 어려운 점도 많고,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작품도 별로 없어서 그저 규모와 화려함이 놀랍기만 한 정도입니다.
그래도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들이 심혈을 기울여 꾸민 '10인 평의원실(Sala del Consiglio dei Dieci)'과 '대의원 회의실(Sala del Maggior Consiglio)'은 놓칠 수는 없습니다. 작품들의 미적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미술 작품이 국가 권력을 대표하는 장소를 얼마만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외교 및 첩보 활동, 전쟁, 기타 정책을 결정했던 비밀 기구였다가 15세기 중엽부터 공화국 정부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했던 '10인 평의원실'(실제로는 도제를 비롯한 17명으로 구성된 기구였습니다)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틴토레토와 베로네세의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그림 양식이 한눈에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베로네세의 '에우로페의 강탈'과 틴토레토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도제들의 경배'를 보면, 화려하고 귀족적인 베로네세의 양식과 좀 더 거친 묘사에 극적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는 틴토레토의 양식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가 (귀족 중심의 체제지만) 나름의 민주적 절차를 중시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의회라서 좀더 눈여겨 볼 만한 '대의원 회의실'은 일단 그 규모부터 입이 떡 벌어집니다. 12세기 말에 생긴 대의원 회의는 13세기부터 300~500명, 후에는 900~1200명의 의원들이 모여 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했던 베네치아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입니다.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천장과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그림들. 모두 틴토레토, 베로네세, 바사노, 안드레아 비센티노 등 베네치아 화파들의 작품들인데, 주목할 만한 작품은 당연히 틴토레토 부자가 완성한 '천국'입니다. 이 그림은 우선 그 크기 때문에도 유명한데 가로 폭만 해도 22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유화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 700명이 넘는 성자들과 천사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죠.
왕이라는 절대 권력이 아닌 민주적 공화정으로 당시 유럽 최고의 도시를 일구었던 베네치아인들. 그들의 승리와 영광을 오롯이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하지만 엄청난 규모 외에는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틴토레토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극적 묘사도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오바네의 '최후의 심판'과 비센티노의 '레판토 해전' 등도 눈길을 끄는 대작임에 틀림없지만, 역시 장소의 특수성 때문인지 미적 감흥 이전 단계에서 멈추는 느낌입니다. 부자연스러운 조명도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가로막습니다.
두칼레 궁전, 이 화려한 곳에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곳은 역설적이게도 '탄식의 다리'입니다. 죄수들이 칠흙 같은 감옥에 갇히기 전 마지막으로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탄식의 다리'. 말하자면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광을 떠받쳤던 어두운 측면의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전설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 1725-1798)도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하는데, 그 암흑을 탈출한 유일한 사람도 카사노바였습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좁은 철제 창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입니다. 그 햇빛을 보고 있으면 죄수가 아닌 누구라도 탄식이 나올 법 한데, 다리를 건너면 더 이상 햇빛을 볼 수 없었던 죄수들은 오죽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창틈 사이로 멀리 바다 건너,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죄수들은 "언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라고 탄식했다지만 나는 "언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 진위가 의문스럽긴 하지만 "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고 회고록에 남긴 카사노바의 말도 떠오릅니다.
(18-2. 베네치아 5편으로 이어집니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인근의 승강장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카날 그란데'를 통과합니다. 이른 아침의 '카날 그란데(대운하)'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직은 곤돌라도 바포레토도 거의 다니지 않고, 다리 위로 운하를 건너는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대신 아침 햇살을 머금은 물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 산 마르코 광장오늘은 하루 종일 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 박용은
우선 '산 마르코 광장'에서, 아니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곳, '대종루(Campanile)'에 오릅니다. 어제 올랐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탑의 쌍둥이 형처럼 보이는 '대종루'는 등대가 함께 있어서 베네치아 바다를 누비는 수많은 배들의 이정표 역할까지 톡톡히 합니다. 바다에서 '산 마르코 광장' 쪽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베네치아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지요.
▲ 베네치아 전경대종루에서 내려다 본 산 마르코 광장을 비롯한 베네치아의 전경입니다. ⓒ 박용은
거의 100미터에 가까운 '대종루'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이용 요금이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대종루'에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전망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습니다. 'ㄷ'자 모양의 '산 마르코 광장'도 한 눈에 들어오고 명물인 시계탑과 '산 마르코 대성당', 바다 건너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도 햇빛 아래 반짝입니다. 저녁 노을과 함께 했던 어제의 베네치아가 온통 오렌지색이었다면, 오늘 아침의 베네치아는 하늘과 바다의 청명한 푸른빛 속에 보색 대비라도 벌이듯 더 짙어진 오렌지색을 발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대종루에서 바라본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아침 햇빛 속에 빛나고 있습니다. ⓒ 박용은
'대종루'에서 내려와 이제 본격적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합니다. 먼저 '대종루' 맞은편의 화려할 건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산 마르코 광장'의 바닷가 입구 쪽을 차지하고 있는 '두칼레 궁전'은 18세기 말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 '도제(Doge, 총독 혹은 대통령)'의 공식 관저 건물이었습니다. 원래는 14세기에 지어졌으나 화재로 처음 모습은 많이 사라졌고, 16세기에 재건축되어 지금같이 비잔틴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재된 모습으로 남은 것이죠.
▲ 두칼레궁전바다 쪽에서 바라본 두칼레 궁전의 모습입니다. ⓒ 박용은
'두칼레 궁전'의 2층과 3층의 각종 집무실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는데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대작들이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2층 회랑으로 오르는 '황금 계단'에서부터 그 화려함에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정부 기관이었기 때문에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기엔 어려운 점도 많고,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작품도 별로 없어서 그저 규모와 화려함이 놀랍기만 한 정도입니다.
그래도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들이 심혈을 기울여 꾸민 '10인 평의원실(Sala del Consiglio dei Dieci)'과 '대의원 회의실(Sala del Maggior Consiglio)'은 놓칠 수는 없습니다. 작품들의 미적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미술 작품이 국가 권력을 대표하는 장소를 얼마만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의 죽음과 도제들의 경배틴토레토, ‘그리스도의 죽음과 도제들의 경배’,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 ⓒ 박용은
먼저, 외교 및 첩보 활동, 전쟁, 기타 정책을 결정했던 비밀 기구였다가 15세기 중엽부터 공화국 정부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했던 '10인 평의원실'(실제로는 도제를 비롯한 17명으로 구성된 기구였습니다)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틴토레토와 베로네세의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그림 양식이 한눈에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베로네세의 '에우로페의 강탈'과 틴토레토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도제들의 경배'를 보면, 화려하고 귀족적인 베로네세의 양식과 좀 더 거친 묘사에 극적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는 틴토레토의 양식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가 (귀족 중심의 체제지만) 나름의 민주적 절차를 중시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의회라서 좀더 눈여겨 볼 만한 '대의원 회의실'은 일단 그 규모부터 입이 떡 벌어집니다. 12세기 말에 생긴 대의원 회의는 13세기부터 300~500명, 후에는 900~1200명의 의원들이 모여 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했던 베네치아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입니다.
▲ 대의원 회의실민주적 절차를 중시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의 의사 결정 기관입니다. ⓒ 박용은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천장과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그림들. 모두 틴토레토, 베로네세, 바사노, 안드레아 비센티노 등 베네치아 화파들의 작품들인데, 주목할 만한 작품은 당연히 틴토레토 부자가 완성한 '천국'입니다. 이 그림은 우선 그 크기 때문에도 유명한데 가로 폭만 해도 22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유화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 700명이 넘는 성자들과 천사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죠.
▲ 천국틴토레토, ‘천국’,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 가로 폭 22미터의 세계 최대의 유화 작품입니다. ⓒ 박용은
왕이라는 절대 권력이 아닌 민주적 공화정으로 당시 유럽 최고의 도시를 일구었던 베네치아인들. 그들의 승리와 영광을 오롯이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하지만 엄청난 규모 외에는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틴토레토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극적 묘사도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오바네의 '최후의 심판'과 비센티노의 '레판토 해전' 등도 눈길을 끄는 대작임에 틀림없지만, 역시 장소의 특수성 때문인지 미적 감흥 이전 단계에서 멈추는 느낌입니다. 부자연스러운 조명도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가로막습니다.
▲ 탄식의 다리죄수들이 칠흙같은 감옥에 갇히기 전, 이 다리를 건너면서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았다고 합니다. ⓒ 박용은
두칼레 궁전, 이 화려한 곳에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곳은 역설적이게도 '탄식의 다리'입니다. 죄수들이 칠흙 같은 감옥에 갇히기 전 마지막으로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탄식의 다리'. 말하자면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광을 떠받쳤던 어두운 측면의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전설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 1725-1798)도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하는데, 그 암흑을 탈출한 유일한 사람도 카사노바였습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좁은 철제 창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입니다. 그 햇빛을 보고 있으면 죄수가 아닌 누구라도 탄식이 나올 법 한데, 다리를 건너면 더 이상 햇빛을 볼 수 없었던 죄수들은 오죽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창틈 사이로 멀리 바다 건너,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죄수들은 "언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라고 탄식했다지만 나는 "언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 진위가 의문스럽긴 하지만 "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고 회고록에 남긴 카사노바의 말도 떠오릅니다.
▲ 탄식의 다리 쇠창살탄식의 다리 쇠창살 틈으로 바다 건너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보입니다. ⓒ 박용은
(18-2. 베네치아 5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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