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뉴욕타임스의 위선을 비판하다
뉴욕타임스의 사설 <한국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 다시 읽기
▲ 지난 11월 19일 뉴욕타임즈에 실린 사설. ⓒ 뉴욕타임즈
지난 토요일인 11월 21일자 <한겨레>는 19일자 <뉴욕타임스>의 사설 '한국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를 소개하는 기사를 워싱턴 특파원발로 1면 하단에 실었다. <경향신문>도 6면 종합 톱기사로 이 사설을 소개하며 <뉴욕타임스>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한다고 소개했다. 이 외에도 여러 인터넷매체에서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비중있게 소개했다.
이후 SNS에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뉴욕타임스 기사에 환호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내언론이 현 시국에 대해 침묵하거나 왜곡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유력일간지까지 나서서 박근혜 정부의 폭정을 비난하니 이 사설에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뉴욕타임스의 박근혜 정부 비판사설을 환영하면서도 우리는 뉴욕타임스라는 매체의 보도성향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설은 미국 주류언론의 태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사설의 논지와 논거는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매우 어설프고 조잡하다.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의 다양한 의제 중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법 개악을 양대 의제로 꼽았다. 짤막한 사설이니 지면 관계상 민중총궐기대회의 다양한 요구를 이 두가지로 요약한 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사설의 요점은 박 대통령이 한국의 두가지 자랑 중 하나인 활력있는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는 것이고 주제에 맞춰 카카오 전 대표 이석우의 기소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사례로 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노동법 개악 문제에 대해서는 이후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지난 주 민중총궐기대회에는 7만의 노동자와 더불어 농민 2만명이 참가하여 전국농민대회를 치렀다. "밥쌀 수입 반대"와 "TPP 도입 반대"도 이날 핵심 의제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이날 대회의 의제 중 농업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농민대회 이후 본행사로 민중총궐기대회를 열기 위해 이동 중 평생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을 하고 운동가로서만이 아니라 농민의 한사람으로서 마을 주민과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르신 한 분이 경찰의 과잉 폭력진압의 살인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게 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이번 거리 집회의 성격과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의 퇴행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시절 한국 사회의 모순이 켜켜이 담겨있는 상징적 사건이었음에도 말이다.
민중총궐기대회를 소개하며 사설을 썼으니 카카오 전 대표 이석우의 기소보다 농민 백남기 선생의 변고가 이 사설의 논거에 더 알맞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쏙 빼버린 이유는 무얼까? 뉴욕타임스라는 "유력일간지" 논설위원이 집회와 이후 사정에 무지해서? 또 노동법 개악의 문제가 이번 대회의 양대 의제라면서도 사설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은 제외된 것도 지면의 제약에 따른 것이었을까?
뉴욕타임스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매체가 미국의 대외팽창 정책을 적극 옹호하는 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가 자국내에서는 민주주의와 반독점 경제정책을 옹호하지만 일단 시선이 외국으로 돌려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농민대회와 농민의 사경을 부각시킬 경우 한국 농민들의 주장인 미국산 밥쌀 수입반대와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TPP 반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약탈적 대외팽창 정책에 대한 저항을 노출시키는 것이니 뉴욕타임스 사설에는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사설 말미에서 "해외에서 한국의 평판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며 짐짓 한국의 "활력있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걸 걱정하는 체 하며 경제와 민주주의를 분리하며 경제와 민주주의가 다른 것처럼 말하는 상투적인 논법을 쓴다.
농민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미국산 밥쌀 수입과 한미 FTA, 이보다 더한 TPP를 한국에 강요하는 건 어느 나라인가? 앞으로는 민주주주의를 말하며 뒤로는 약소국을 수탈하는 건 또 어느 나라이던가?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미명으로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성의 논리를 만들어 전세계적인 노동 착취를 이끌어가는 건 어느 나라인가?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하지만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한 건 또 어느 나라이던가? 최근 파리 테러를 저질렀다는 IS를 만들고 키운 건 또 어느 나라이던가?
바로 그 미국은 IMF 외환위기를 이용하여 살찐 돼지 잡아먹듯 민중이 수십년 일궈온 성과를 쓸어 담았고 그것으로 모자라 지금 이 순간도 털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억울하고 한맺힌 울분을 표현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 빈민, 시민, 청년, 학생, 세월호 가족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진정 미국이 한국의 정치적 퇴행을 우려한다면 밥쌀 수입, FTA, TPP 강요를 중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몬산토와 같은 제국주의 첨병 기업들의 약탈을 먼저 막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에서 우리나라의 정계, 관료, 재계, 학계, 언론계 인사들을 불러들여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이론과 정책을 주입하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하기 전에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한 과거사부터 사죄할 일이다.
<뉴욕타임즈 사설>
한국 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
한국인들은 세계적인 산업 강국으로 일어선,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된 경제발전 만큼이나 독재로부터 활력있는 민주주의를 일궈낸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이런 이유로, 낮과 밤처럼 확연하게, 북한의 꼭두각시 체제와 한국을 구별해주던 민주주의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켜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난주 수만명의 한국인들이 두가지의 억압적인 정부 조처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하나는 한국의 교육자들이 독립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역사 교과서를 정부가 발행하는 교과서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족벌 대기업이 노동자들을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의 비판이나 반대의견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한국의 가장 인기있는 메시징 앱(카카오톡)의 공동대표였던 이석우씨가 사임했다. 그는 10대들의 음란물 사진 게시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그러나 비판적인 사람들은 정부의 감시 시도에 저항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사용자들의 의견을 제한하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처벌이 (기소의) 진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박 대통령은 식민지시대 일본 제국주의의 장교였으며, 1961년부터 1979년까지 군사독재자였던 박정희 장군의 딸이다. 박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 특히 민주주의적 자유가 산업화에 방해물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던 시기에 대해 미화된 버전을 가르치게 하려고 한다. 이러한 동기 중의 일부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복원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는 올해 메르스 호흡기 질환의 유행과 중국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 감소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의 평판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가혹한 조처들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